다시 게으름을 꾸짖고 경계를 그치고 미혹을 쉬게함

선의 고전/선종결의집

2007-08-05     관리자

 그러나 나는 이렇게 거절했다.  "고래의 존숙이나 선지식들이 대중을 경책한 법어가 매우 많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오히려 믿음이 미지치못하고 있습니다.  나는 늦은 나이로 출가하여 수행이나 이해가 황무한 상태입니다. 한갓 공문(空門)에 들어오기만 했지 가르침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비록 법문 중에 마음을 머문지 이젠 꽤 오랜 세월이 흐르긴 했으나 지극한 이치에는 아직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나 자신 말이 경박하고 덕이 부족한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있습니다. 이 일을 어찌 감히 받아 들일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수좌는 또한  "요즘 학인들은 많이 듣기를 좋아하는 자도 있고,  근성이 더디고 둔한 자도 있습니다. 선배 존숙들의 경책이나 법어를 보면 거의 예전 선지식들의 반야의 힘은 뿌리도 깊고 열매도 단단하여 법문에 들어오자 마자 공부를 그다지 한 적도 없이 하나를 듣고 천을 깨달았다는 투의 이야기입니다.

이런 일은 우리들처럼 얕은 근기로서는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들은 우선 금생에 이러한 반야의 종자나 뿌려두고 내세를 기다릴 수밖에 없습니다.   재간 있는 자가 이러한 말씀을 보고 들은자는 많으나 결국 스스로 퇴굴하고 마는 경우를 보게 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만약 화상께서 지난 날 공부하신 비밀스런 곳을 처음부터 한번만 들려주시면 보거나 듣는 자가 반드시 큰 신심을 일으킬 수 있으리라고 생각됩니다. 반드시 그 말씀에 의지하여 공부하고, 그 말씀에 의지하여 정진하고, 그 말씀에 의지하여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후래의 사중 가운데 제각기 큰 발명이 있어 생사를 벗어난다면 그 은혜는 무엇에 비할 수 있겠습니까?"하였다.

그러나 수좌가 비록 학인을 위하는 간절한 마음에서 나에게 이런 부탁을 한 것이었으나, 나는 감히 그의 말을 따를 수가 없었다.

다음날 아침 공양을 마치고 방장인 고도(古道)화상의 처소에 올라가 문안을 여쭙게 되었다. 화상은 나와 17년 간의 도우(道友)였다. 여러가지 대화를 나누던 중, 둔기 수좌가 말한 일을 꺼내게 되었다. 화상도 역시 "불법이 이젠 바로 위태한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 일은 반드시 처음으로 입도 한 자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될 것입니다." 하였다.

나는 "나 자신도 아직 구제하지 못했습니다. 어찌 능히 다른 사람을 위할 수 있겠습니까. 경에도 '자신이 정진하지 않고서 남에게 정진하기를 권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하였습니다."  하고 거절했으나, 화상이 또 "경에 이렇게도 말씀했습니다. '자신은 아직 깨닫지 못했으면서도 먼저 다른 이를 깨닫게 하는 것이 보살의 마음이다.'라고요 또한 어느 옛 선비는 '위태한 것을 보고도 붙들어 주지 않고, 자빠지려 하는 것을 보고도 부축해 주지 않고 그대로 앉아서 결과만을 살피는 짓을 어찌 차마 할 수 있으랴.' 하기도 했습니다."하였다.

내가 사양하지 못하고 일어나 산방으로 돌아왔다.

육호(六戶:六根)를 환히 열고 정문(頂門)을 번쩍 들어 멋대로 소요하니 구애될 것이 없다. 심원(心猿)의 굴레를 끊어버리고 의마(意馬)의 빗장을 열어 제치고 가고 오는 데 맡겨 두어도 아무런 방해 될 것이 없다. 이로부터는 한결같이 쾌활할 뿐이다. 그리하여 편안하고 한가한 일을 마다하고 마침내 예전의 행리를 가지고 갈등을 펼쳐 이렇게 한 번 들어보이게 된 것이다.

우선 학인들을 한바탕 어지럽혀 놓았으니 정안으로 곁에서 구경하는 자는 도리어 평지에 풍파를 일으킨 격이리라. 학인의 손과 발을 마구 뒤흔들어 놓았으니 아무 데도 이를 둘 곳이 없으리라.  여기에 이르러서는 그들에게 온몸을 정돈하게 하지 않을 수 없으니, 마땅한 곳을 다시 마땅하게 하리라.

말하라 ! 지금 마땅한 곳을 어떻게 학인들에게 분부할까 ? 정신차려라 ! 마땅한 곳이 바로 여기에 있다. 각각 노력하여 반드시 기억하라.

'만법일귀, 일귀하처'를 기억하여 지금부터 온 종일 포단 위에 앉거나 내려 오거나 문을 들어가거나 나오거나 동·정에서나 한가한 때나 바쁜 때나 반드시 화두를 면밀히 의심하여 틈이 없이 하라. 말을 하든 하지 않든 뜻대로 하라. 만약 부처님 앞에 예불할 경우에는 화두를 놓고 지심으로 발원하고 참회하여, 발원이 끝나고 '바라밀' 한 곳에 이르려면 즉시 화두를 도로 챙겨 서로 접속하게 하라.

혹은 경을 읽을 경우에도 경이 끝나고 '바라밀' 한 곳에 이르려면 전과 같이 하라. 세세한 사무를 접할 경우에는 스스로 알아서 점검하라. 또한 좌선하는 도중에 일어나는 경계는 한 두 가지가 아니어서 필설로 다 말하지 못한다. 대략이나마 말하도록 하겠다.

만약 경계가 일어나는 곳에 대해 논한다면 모두 마음이 일어난 곳에서 나온다. 마음이 만약 일어나지 않으면 경계가 어디로부터 있겠는가. 그러므로 경에 '모든 업장의 바다는 모두 망상에서 생긴 것이다.' 하고, 또한 '무릇 모양이 있는 것은 모두 허망한 것이다.' 했으며, 또한 '모든 경계는 마침내 취할 수가 없다.' 하였다.

그런데 학인들은 경계가 있다는 말을 들으면 마음 속에 기뻐하고, 만약 경계는 허망하여 진실한 것이 아니라는 말을 하면 금방 언짢은 기색을 짓는 경우를 흔히 보게 된다. 이 아래에서는 다시 경계라는 것은 모두 혼침이나 산란으로부터 일어나는 것임을 말하려 한다.

혼침이란 게으른 마음으로 인하여 있는 것이요, 산란은 방종한 마음을 인하여 있는 것이다. 따라서 게으른 마음은 혼침의 근본이요, 방종한 마음을 산란의 근본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혼침하면 경계가 달라지고, 산란하면 바탕이 변한다. 모두 망상심을 따라 경각에 온갖 형태로 변하는 것이다. 마음이 만약 일어나지 않으면 저가 어찌할래야 어찌할 수 있겠는가.

학인이 만약 이 이종(二種)의 마음이 일어날 경우에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정신을 차리고 몸과 마음을 화창하게 한 후에 다시 화두를 들어 크게 의정을 일으켜라. 그러면 이러한 생각이 즉시 사라질 것이다. 혹시 이 말이 믿어지지 않는 이가 있다면, [능엄경] 가운데 50종의 마(魔)에 대한 말씀을 살펴보면 사실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듣지 못했는가 ? 세존이 아란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50종의 마는 모두 색·수·상·행·식 다섯 가지의 망상이 객진번뇌(客塵煩惱)에 덮여 이루어진 것이다. 주인이 만약 미혹하면 객이 그 틈을 얻게 되는 것이다.'하셨다. 이 아래의 문장은 너무 번잡하므로 우선 그만 인용하기로 한다.

여기에 이르러서 범부나 성인의 길을 끊어버리고 학인에게 아예 자취조차 소멸하게 하리라.  말해보라 ! 어떤 것이 주인인가 ? '만법귀일, 일귀하처' 니라. 어떤 것이 객인가 ? 너희들이 잠시 마음을 내어 번뇌를 일으켜 보아라. 여기에 이르러서는 마음이 두 가지 작용이 없으나 구경에는 하나가 아니다. 어떤 이는 무자(無字)를 참구하는이도 있고, 혹은 본래면목(本來面目)을 참구하는 이도 있으며, 혹은 염불을 참구하는 이도 있다. 이렇게 공안은 비록 다르나 의심하여 궁구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경에 '근원에 들어가면 성품이 둘이 없으나, 방편으로 여러 가지 문이 있다.'하신 것이다. 이렇게 학인들은 각각 본참화두를 가지고 자중자보(自重自保)하며 용맹스럽게 밀고 나아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