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불교

연구실 노트

2007-08-04     관리자

  「불교는 어렵다」고 하는 말을 아주 흔히 듣는다. 물론 가끔 설법을 듣는 사람들의 말이다. 모든 중생들의 근기가 천차만별인 때문에 받아들이는 정도도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다. 어떤 사람은 쉬운 말씀도 어렵다고 할 수 있을 터이고, 또 어려운 말씀도 쉽다고 생각할 것이다.

  사실 설법만이 아니라 대학생, 대학원생까지도 교리의 이해는 어렵다고 하는 말을 가끔 듣는다. 불교 교리가 어려운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그러나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어려운 교리를 창조하신 것이 아님은 잘 알고 있다. 우리들의 현실 생활과 관련하여 단 하루도 쉼없이 45년 동안, 구체적으로 쉽게 예를 들어 설명해 주셨음은 많은 초기경전이 입증해 주고 있다.

  그런데 불교가 어려워진 것은 정통(正統)불교를 다투던 싸움 때문이다. 석가모니 입멸(入滅)하신 후의 교단(敎團)의 분열은 제각기 자기가 이해한 불교가 정통이라고 주장하며 분파가 계속되었다. 그것이 번쇄한 아비달마불교, 즉 부파불교(部派佛敎)이다. 그후 다시 대승불교가 일어나면서부터 초기에는 통합적인 운동으로 시작한 것이 학파를 형성하여 발전하면서, 어려운 형이상학적인 복잡한 철학 체계를 갖추게 된 것이 그 원인이다. 발전된 교리의 복잡한 체계가 불교의 어려움임은 사실이다.

  또 하나 어려울 수 밖에 없는 이유는 한문화권(漢文化圈)을 통하여 들어왔기 때문이다. 한문 경전의 완역이 이룩되지 못하고 있는 현상도 문제이다. 더구나 요즘의 교육의 결과는 한문화권에 있는 우리들인데도 불구하고 한글 전용화로 모든 교육이 치닫고 있다. 한문은 오랜 동안 동아시아 문화권의 기층 문화를 이룩하여 왔고, 지금도 우리 말은 한문을 완전히 무시하고서는 이해되지 않는다.

  그런데 현대의 일방적 지향은 너무나 안이한 삶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에, 몇 자의 한문 교육의 필요성도 지나쳐 버리려고 한다. 표의문자인 한문이 가진 모호성과 함축적인 의미는 간과할 수 없지만 한자로 편 고려대장경(高麗大藏經)을 가지고 있는 한국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우리는 한자와 한문을 해독해야 할 인연 속에 있는 것이다. 그 인연을 무시한 채, 서구적인 문화와 논리만을 고집하는 현대의 우리들도 반성할 필요가 있다.

  이제 또 하나의 어려운 이유를 들어본다면, 즉 어렵다는 말에 귀기울이면, 우선 설법이 우리의 생활과 직결되지 않는데 있다. 모든 불법을 알고자 하는 사람들은 생활인이다. 그런데 설법은 우리의 생활 환경과는 동떨어진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우리의 모든 현실은 연기(緣起)에 의하여 화합되어 있는 현실임에도 이를 무시하거나 간과하는 경향이 짙다고 보여진다. 인연 화합에 의한 연기의 법칙은 불법의 해석이다.

  우리의 눈, 귀, 코, 혀, 몸, 뜻이라는 뿌리에 의해 포착되는 모든 현상은 연기라는 법, 즉 신비적인 역학(力學)에 의하여 전개되어지고 존재한다. 그런데 이 핵심을 이해하지 않으려는 것 같은 인상을 받을 때가 많다. 모든 설법에서 이를 무시하는 이유가 있을 테지만, 간과할 수 없다고 생각된다.

  이제 또 하나 정말 불교가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경전이 한문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어렵다고 하지만, 번역된 것을 읽고 이해하는 것은 노력하면 누구나 가능하다. 지식(知識)은 정연한 논리 세계가 있으므로 어렵지만 불가능하지는 않다. 그러나 참으로 불교가 어렵다고 한다면, 그것은 이론적인 교리가 어렵다는 것보다 오히려 스스로의 체험에서 나오는 밝음의 지혜를 증득하기 어렵다는 뜻일 것이다.

  불교는 자기의 힘으로 노력 정진하면 부처님과 똑같이 실상(實相)을 체득하여 동일해진다고 설법한다. 이 가르침을 자력문(自力門)이라고도 한다. 모든 불법은 여기에서 출발한다. 「나」라고 하는 이 탐욕, 성냄, 어리석은 마음이 가득찬, 「일상적인 나」가 아닌 「참 나」를 깨닫기를 지향하는 것이 불교이다. 그러나 「참 나」는 「일상적인 나」를 떠나 먼 높은 다른 곳에 있지 않다는 데에 불교 이해의 어려움이 도사리고 있다. 그러나 선가(禪家)에서는 이러한 「참 나」의 발견이란 우리의 생활 속에 있음을 「세수할 때 얼굴 만지기보다 더 쉽다」고 설명한다.

  정녕 불법은 어려운 것일까. 佛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