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구리(馬鳴里)의 봄소식

이남덕 칼럼

2007-08-03     관리자

한 겨울에도 매일같이 산속을 돌아 다니는 나로서는 입춘 지나면서부터 봄을 느끼는 것이 상례인데, 올해에는 여러 번 봄눈이 내리는 통에 초봄의 신선함을 즐기는 기간이 지극히 짧았다. 눈이 녹기가 바쁘게 밭에 봄 채소 씨앗을 뿌려야 했다. 이렇게 해서 나는 또다시 대 지(大地)와의 씨름에 돌입하게 된것이다.

눈 속에서도 제일 먼저 파랗게 돋아나는 풀은 돋나물이다. 파주지방 방언으로 ‘돌바귀’라고 불리우니까 ‘돋나물’의 ‘돋 -’ 은 돌(石)이 틀림 없겠으나 그 오돌도돌한 파란 잎사귀의 느낌으로는 ‘돋아난다’의 어감과도 일치하는 맛이 있다. 바위 언저리에 자생하는 것을 돌축대앞 여기저기에 떠다가 옴겨 심었더니 몇해 동안에 나의 보호정책으로하여 온통 돋나물 천지가 되어버렸다. 겨울 동안 파란 생채에 굶주렸던 입맛에 돋나물 김치나 돋나물 풋절이의 그 풋풋함이 얼마나 우리에게 봄을 느끼게 하는지 모른다.

내가 돋나물 보호정책을 쓴 데는 그 풋풋한 맛과 그리고 그 노르스름한 꽃피는 정경을 사랑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실절적인 이유는 이 풀의 번식력은 다른 잡초를 아주 원천적으로 나지 못하게 봉쇄해 버리는데 있다. 잡초와의 싸움은 참으로 필설로 다 못할만큼 내게는 심각한 문제다. ‘대지와의 씨름’중에서 잡초와의 싸움이 그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채소를 가꾸는 텃밭의 면적은 그리 넓지 않지만, 내손이 가야 할 주변의 앞 뒷뜰 상태는 힘에 벅찰만큼 넓다. 마을 일손도 해마다 얻기 어렵고 일손을 구한대도 품값이 너무 비싸서 될 수 있으면 품을 덜 얻는 방향으로 경영해야 한다. 그런데다가 내 주의는 땅을 오염시키지 않겠다는 원칙이니 제초제나 화학비료를 안쓰고 버티자는 것이다. 집에서 먹는 푸성귀 정도만 가꾸는데는 이런 정도의 영농으로 할 수 있다는 것도 몇해 동안의 경험에서 얻은 결론이다.

며칠 전에는 남새밭에 쑥갓․상추․아욱 등 봄채소 씨를 뿌렸다. 얼부풀었던 흙에, 지난 해부터 부엌찌꺼기로 썩힌 퇴비를 비벼넣고 마른 풀을 태운 재를 뿌린다. 그리고 작년에 쓰다 남은 지렁이똥 썩은 거름을 보태주었다. 거름탐을 별로 안하는 봄나물 가꾸는데는 이만하면 족하다. 내 농사일기를 보니 춘분날(3월21일)부터 오늘까지 거의 보름 동안을 나는 흙을 만지며 지칠줄 모르고 밭에서 살고 있다. 그렇게 봄흙 만지기가 좋은 것이다. ‘지극함이여, 대지는 만물을 살리고 순하게 하늘을 받들도다(易․ 坤卦).

오늘 오후는 개울건너 호박밭에서 살았다. 마른 넝쿨과 나뭇가지. 풀을 거두어서 불을 놓고 돌들은 군데군데 무더기로 모으고, 새싹으로 돋아나온 잡초들을 뽑아서 말끔하게 땅을 다듬은 다음에 호박씨를 모종 낼만큼의 땅을 일구고 곱게 흙을 부순다. 호박구덩이 전부를 다 손볼 시간이 없기 때문에 우선 이렇게 ‘모판’을 만들어서 씨를 뿌린다음, 새싹이 자라는 동안에 구덩이마다 거름을 주어서 나중에 옭겨심자는 것이다. 다음주에는 산나물밭 일이 기다리고 있다. 더덕과 도라지에 흙을 더 덮어주고 풀도 매주어야 한다.그리고 취나물밭을 새로 만드는 일은 나혼자로는 못하는 일이라 품을 얻기로 부탁을 해놨다. 산에 다녀 올 때는 산밭 옆을 지나기 때문에 오며 가며 돌봐주는 것으로 큰 힘은 안들 것 같다. 특히 아무 비료도 안주고 산에 있는 부식토나 줄 생각이다.

우리마을 말구리(馬鳴里)는 50여호밖에 안되는 조그만 산촌이지만 내 혼자 짐작으로는 아주 오래된 마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 근거는 이렇다. 우리나라 지명이 본디는 우리말로 되어있던 것을 신라 경덕왕(景德王) 12년(753년)에 한자(漢字)식 지명으로 고쳤는데, 옛 이름(固有地名)과 새로 지은 지명을 보여주는 기록이 『三國史記』지리지(地理志37)에 나와 있다. 포천(抱川)의 경우는 ‘抱川 馬忽’로 나와 있어서 ‘抱川’ 은 한자식 새 지명이고‘馬忽’이 옛 지명이다. ‘忽’자는 지금은 ‘忽’로 읽혀지지만 우리말에 h-음이 고대어 때에야 나타났으므로 그 이전 원시한국어 시대에는 *k-로 소급된다. (*kul〉*xul〉*hol의 발달경로). 현재 마명(馬鳴)리의 이름은 ‘말(馬)이 울다(鳴)‘의 어원풀이(말+울이〉말구리)로 지어진 한자 지명인데 아직도 ‘말구리’라는 옛 이름이 그대로 쓰이고 있고 그것은 바로 앞의 ‘馬忽’과 일치하는 것이다.

뒷 산(竹葉山)에 올라가 동구 앞을 바라보면 단정한 안산 앞을 왕숙천(王宿川)상류인 맑은 시내물이 안아 흐르고 있다. 포천(抱川)이란 지명은 바로 이러한 광경에서 나오지 않았을까. 나의 억지 추측인지는 몰라도 포천 그 넓은 땅에서 왜 ‘馬忽‘이 그 대표격 지명으로 기록되었을까. 아마도 원삼국시대부터 이 마을은 사람이 살고 있던 곳이라고 생각되는 것이다.

이 산자수명(山紫水明)의 전형적인 산마을 말구리에 이변이 일어난 것은 근자의 일이다 바로 앞산 유원지 옆에 공장이 하나 둘 들어서더니 이제는 아주 공장단지가 되어버렸다. 바로 언덕 하나 넘으면 남양주군(南陽州郡)이라 서울이 가깝다고 공장허락을 안해주고, 먼저부터 있던 공장도 다른 곳으로 이전하도록 되어 있어서 이러한 공장들이 가장 가까운 이 마을을 찾아들게 된 때문이다.

포천군은 농공병행(農工並行)지구라 한다. 유리공장, 솜공장, 주물(쇠)공장), 그리고 반도체(半導體)공장들이 들어왔다고한다. 마을 어구의 논들은 흙으로 메꾸어 밭을 만들고 용도 변경해서 비싼 값으로 팔릴 날을 기다리고 있다. 나라에서도 경자유전(耕者有田)의 원칙을 허물어뜨리고 농사짓는 사람 아니라도 아무나 이런 땅을 소유할 수 있게 된다니 말구리 마을의 운명은 평화로운 농촌에서 산업화 개발의 물결을 탄 공장마을로 변모하게 된 것이다.

근자에 두산재벌의 대구 반도체공장에서 흘러나온 페놀 방출사건으로 대구지역 수돗물이 오염되어 전국민의 분노를 샀다. 오염시킨 주범으로 공장책임자들이 구속되고 감독 소홀의 책임으로 관리들이 몇 사람 처벌되고, 그 회사 물건을 안산다는 시민운동이 벌어지고 그 회사는 피해받은 시민들에게 피해를 보상하는 일들이 지금도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수돗물 오염이 금호강에만 국한될 문제가 아니다.

4대 강물이 각종 공장페수,가두리 양식 등 축산물 폐수, 세제를 남용하는 가정용수, 농약사용. 쓰레기폐기 등으로 썩어가고 있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여기 말구리 공장단지만 해도 광능내쪽으로 흘러내리는 강물이 왕숙천으로 들어가고, 왕숙천은 북한강의 상류이니 한강물 썩는데 일조를 하고 있음은 명백한 사실이다. 퇴계원 지나 왕숙천 냇가에는 ‘상수원보호지역’이라고 커다랗게 한 자씩 푯말을 써서 나란히 세워놓은 말뚝이 버스 창밖으로도 보인다. 그러나 이보다 상류인 산골마을 말구리에 공장단지가 눈에 안보이게 있는 것은 아무도 모르고, 또 문제삼지도 않는다. 물은 아래로 아래로 흐르는데 말이다.

삼천리 금수강산은 이제 옛날 말이지 삼천리 오염강산이다. 70년대 이후의 정부의 산업화 정책과 전국토의 개발계획은 이제 근본적으로 재검토되지 않으면 이제 우리는 물도 못먹고 공기도 못마시는 황폐의 땅에 살게 될 형편이다. 공장폐수가 한 재벌공장의 문제만에 그치는가. 일과성 태풍처럼 책임자 추궁 재벌타도나 외친다고 근본적 해결이 될 것인가. 한강 하류에서 강물이 썩었다고 아우성치기전에 그 상류에서 오염의 근원을 막아야 하듯이 공해추방운동의 방향도 원천적인데 중점을 두고 일과성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전개해 나가야 할 것 이다.

강산 오염의 근원에는 우리들 마음의 오염이 있다. 어떻게 하면 흙을 오염시키지 않을까, 먹는 물을 깨끗이 보전할까. 이 마음이 앞서지 않으면 이 강산을 지키기 어렵다고 본다. 이제는 도적이 밖에서 들어와서 삼천리 강산을 빼앗아가는것이 아니라, 우리들 마음이 이 강산을 숨막히게 하고 죽이고 있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