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꽃, 그리고 또 연꽃

함께 길을 걷는 사람들

2007-01-23     관리자

해마다 7월, 연꽃의 아름다움이 그 절정에 달할 때, 워싱턴 D.C 국립식물원 내에 있는 수생정원(Ke-nilworth Aquatic Gardens)에서 아시아 여러 나라의 불교신도들이 모여 연꽃축제를 개최한다.
연꽃은 외딴 연못이나 흙탕물 속에서 자라기 때문에 대중적이지는 않지만, 불교꽃이라 불자들에게는 친근하다. 연꽃을 감상하는 사람들에게 신비로운 미적(美的) 경험을 제공한다.
연꽃은 조용하고 은은하고 깊다. 마치 자신의 아름다움을 부정하는 듯한 연꽃은 시각보다는 정신적인 것이며, 일상생활에서 쉽게 얻을 수 없는 해탈의 기쁨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가장 높은 정신적 상태를 상징하는 심볼로 알려져 있다.

서양종교의 세계관은 창조의 시점에서 모든 존재와 사건은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의 흐름과 함께 전진한다. 그러나 불교의 세계는 시작도 끝도 없으며, 피었다 쇠하고 그리고 또다시 피어나는 연꽃처럼 끝없이 윤회(회귀)한다.
인간 역시 업보에 의하여 탄생과 죽음을 되풀이하여, 오직 깨달음(해탈)에 의한 열반을 통하여 윤회의 고리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
불교는 서양종교와는 다르다. 서양종교는 성전(聖典, 교리)을 깊이 이해하고 신(神)을 믿는다.
하지만, 불교는 인간의 욕망과 집착의 대상인 사물이 실체적 존재가 아니라, 영원한 회귀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순간적인 현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을 때, 비로소 궁극적인 실체 공(空)을 볼 수 있다고 한다. 공(空)은 허무가 아니라, 그것은 모든 생명과 형태가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의 근원, 본질의 장(場)이다.
현대물리학자들은 불교가 양자역학의 세계관과 유사점이 많다고 한다. 현대물리학은 물질의 밑바닥에 원자보다 더 작은 미립자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러나 그 미립자들은 실체를 가진 개체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물질과 에너지 즉 존재와 무(無)의 상태를 끊임없이 변환하는 현상으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어느 한 순간에 물질의 본질은 존재의 상태일 수도 있고 또한 무(無)의 상태일 수도 있으며 그 궁극적 실체는 순수한 가능성 공(空)이다.
좀더 비약해서 말한다면 물질(우라늄 원자)을 엄청난 에너지로 변화시키는 원자폭탄의 이론적 바탕을 제공한 아인슈타인의 공식 E=mc2과 불교에서 물질의 본질을 설명하는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은 놀랄 정도로 유사한 철학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 워싱턴 연꽃축제 포스터
불교는 조직적이고 일관된 교리를 주장하지도 않으며 유일신에 대한 신앙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석가모니는 생전에 창조론이나 창조주에 대해 언급한 바 없으며 관심을 표하지도 않았다.
그는 오직 인간의 존재와 고통에 대해 명상했으며 그 고통의 원인과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하려고 노력했다.
우리는 오늘날 종교가 유일신에 대한 신앙과 절대적인 교리를 강요할 때 종교 본래의 사명인 평화를 구현하고 사랑을 실천하는 대신 갈등과 증오와 폭력을 조장하는 예를 목격하고 있다. 하지만 역사상 불교의 이름으로 정복과 압박, 약탈과 살육이 자행된 적이 단 한번이라도 있었던가?
워싱턴 연꽃축제에 오면 평화의 종교 불교, 불교꽃인 연꽃을 만날 수 있다. 수생정원의 연꽃의 아름다움은 가슴 속을 평화에 대한 동경과 고요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채워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