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과 이익을 구할 것이 아니라 힘 닿는 대로 주어라

선가귀감 강설 19

2007-07-30     관리자

제59장
貪世浮名, 枉功勞形, 營求世利, 業火加薪.
세상의 헛된 이름을 탐하는 것은 쓸데없이 공 들여 몸만 피로하게 만드는 것이고, 세상 이익을 구하려고 애쓰는 것은 업의 불길에 땔나무를 던지는 것이니라.

세상의 헛된 이름을 탐한다는 것을 어떤 사람의 시에서 말하였느니라.
“기러기가 하늘 끝 날아간 뒤에
발자국이 모래 위 남았음이여.
죽은 이는 저승의 황천객인데
이름 석 자 문패에 남았음이여.”
세상 이익을 구하려고 애쓴다는 것을 어떤 사람의 시에서 말하였느니라.
“천 송이 꽃 찾아서 모은 꿀 한 방울
슬프다, 채밀(採蜜) 수고를 누가 알아 주리요?”
쓸데없이 공들여 몸만 피로하게 만든다는 것은, 마치 얼음 조각품을 만든다는 말이니라. 업의 불길에 땔나무를 던진다는 것은, 추하고 거친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이 욕심의 불길을 더 치솟게 한다는 말이니라.

강설
안수정등(岸樹井藤)의 화두가 있다. 톨스토이 참회록에 같은 이야기가 나오지만 실은 불설 비유경에 나오는 불교 우화이다.
나그네가 불타는 광야를 걷고 있을 때였다. 홀연 미친 코끼리 한 마리가 나그네에게 덤벼들었다. 마침 주위에는 큰 나무 한 그루가 거인처럼 가지를 벌리고 서있고, 그 곁에 우물이 있었다. 우물 안으로는 큰 나무에 얽힌 칡덩굴이 내려뜨려져 있었다. 나그네는 급한 김에 칡덩굴을 타고 내려가 우물 안을 피신처로 삼았다.
하지만 우물 안도 살벌하였다. 우물 안 주변 벽에는 이무기 네 마리가 혀를 널름거렸고 우물 아래에는 독룡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 더욱이 나그네가 매달려 있는 칡덩굴에는 검은 쥐와 흰 쥐 두 마리가 덤벼 갉아댔다.
이때 절체절명의 이 순간, 나무 위 꿀벌 집에서 꿀이 한 방울씩 떨어졌다. 나그네는 칡덩굴에 매달린 채 꿀맛에 탐착하였다. 그 맛이 어찌나 달던지 모든 고통을 잠시 잊을 판인데 화두를 말한다. “자, 이런 죽음을 목전에 둔 당사자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전강(田岡) 스님은 말하였다. “아, 달다!”
이 우화는 오욕이란 꿀맛에 탐착한 우리 중생 이야기이다. 오욕은 재물, 여색, 음식, 명예, 수면 등 다섯 가지 욕망이다. 불타는 광야는 무명(無明)의 긴 밤이고, 코끼리는 무상(無常)이고, 우물은 생사(生死)이고, 칡덩굴은 목숨이고, 검은 쥐와 흰 쥐는 밤과 낮이고, 네 마리 이무기는 사대육신이고, 벌꿀은 오욕락(五慾樂, 재물욕·명예욕·식욕·수면욕·색욕)의 비유인 것이다.

제60장
名利衲子, 不如草衣野人.
이름과 이익을 좇는 수행 납자라는 자는 풀 옷을 걸친 야인만도 못하느니라.

왕좌(王座)에 침을 뱉고 설산으로 들어가신 것은, 일천 부처님도 바꾸지 않는 법칙이니라.
말세에 양의 몸통에 호랑이의 가죽을 쓴 무리들이 염치도 모르고 무슨 바람을 기다리며 세력에 따라 아첨하고 잘 보이려고 애쓰다니, 아, 참회하고 청정해야 할 것임이여!
마음이 세상 이익에 물든 사람은 권문세가에 아부하고 풍진을 쫓다가 결국은 세속 사람의 웃음거리가 되느니라. 이런 납자를 양의 몸통에 비유한 것은 이를 증명할 만한 고사가 여럿 있긴 하나, 여기서는 장자에 나오는 징야부(懲也夫) 석자만으로 그치느니라.

강설
옛날 충신 비간(比干)이 주(紂)왕에게 좋은 말을 간하였다가 가슴이 찢긴 엽기적인 고사가 있다. 징야부(懲也夫)의 징(懲)은 지금 사건을 증명한다는 뜻이다.
옛사람은 말한다. “임금을 섬김에 자주 간(諫)하면 욕을 보게 되고, 벗에게 선도(先導)를 자주하면 사이가 멀어지느니라.”
은나라의 삼현(三賢) 이야기이다. 은나라 주(紂)왕의 포악한 정치에, 미자(微子)는 떠나갔고 기자(箕子)는 종이 되었고, 앞서 말한 비간(比干)은 가슴이 찢긴 채 죽었다. 이들 삼현은 모두 가까운 친족이었다. 미자는 주(紂)왕의 배 다른 형이고 기자와 비간은 주왕의 숙부였다.
다음은 달기(�己)의 이야기이다. 달기는 은나라 마지막 주왕의 애첩으로 포사(褒팚), 서시(西施), 왕소군(王昭君)과 함께 고대 중국 미인 사인방에 오른 사람이다. 한편 달기는 미인 가운데서 주나라 포사와 함께 가장 평이 나쁘다.
사기(史記)에서 말한다. “주왕은 원래 현군이었으나 달기를 맞이한 이후부터 달라졌다.” 충신 비간이 주왕에게 충언하자 주왕이 그를 죽인 것도 달기의 생각에 따른 것이다.
은나라가 주나라 무왕에게 망할 때였다. 달기는 사로잡힌 몸으로 오랏줄에 묶인 채 형장으로 끌려갈 때에, 마치 봄비 맞는 배꽃처럼 아름다웠다고 한다. 처형을 할 때였다. 망나니들이 그녀의 아름다움에 정신이 팔려 칼을 든 손을 전혀 쓰지 못하였다. 그래서 90세가 된 노인 망나니로 바꿨으나 이 늙은 망나니 역시 달기를 보자 아름다움에 현기증이 나고 눈이 부셔 목표물을 바로 볼 수가 없었다. 나중에 달기의 얼굴에는 천을 씌운 뒤에야 처형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제61장
佛云: “何賊人, 假如來衣服, 稗販如來, 造種種業?”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느니라.
“어찌하여 도둑이 여래의 옷을 빌어 입었느냐? 어찌하여 여래를 팔아 업을 짓고 있느냐?”

말세의 비구들에게 좋지 않은 이름들이 있느니라. 혹은 박쥐중이고, 혹은 벙어리염소중이며, 혹은 가사를 입은 도둑이니라. 슬프다! 이 까닭은 도둑이 여래의 옷을 입은 데서 나온 것이니라.
여래를 판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인과가 없다고 말하고 죄와 복도 없다 말하며, 몸과 입과 생각의 삼업으로 펄펄 끓는 물처럼 업만 짓고, 사랑과 미움을 매번 일으키고 있는 사람이니, 참으로 불쌍한 사람이니라.
첫째, 승려도 아니고 속인도 아니게 속복으로 바꿔 입는 사람은 박쥐중이라고 하느니라.
둘째, 혀를 움직여 설법을 하지 못하는 사람은 매애애 매애 하는 벙어리 염소중이라고 하느니라.
셋째, 승려 모습을 하고 속인의 속스런 마음을 쓰는 사람은 머리 깎은 거사라고 하느니라.
넷째, 중한 죄를 지어도 참회하지 아니한 사람은 지옥 폐기물이라고 하느니라.
다섯째, 부처님을 팔아 생계를 잇는 사람은 가사 입은 도둑이라고 하느니라.
가사 입은 도둑들은 이와 같이 여러 가지 이름들이 있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