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 야구가 좋아?”

지혜의 향기/나의 열정은 당신의 여름보다 뜨겁다

2007-07-30     관리자

조막만한 손으로 동네친구들과 야구를 했던 어린 시절을 떠올려본다. 아침이면 일어나기 싫어 투정을 하던 잠꾸러기 어린애였지만, 매주 일요일 아침이 되면 담 너머로 나의 이름을 불러주던 친구의 목소리에 벌떡 일어났다. 방망이에 야구글러브를 끼운 채 어깨에 메고 학교운동장으로 향했던 기억이 새롭다.
어느덧 성인이 되어 가정을 갖고 사회생활에 힘들어하며 30대 중반을 지나고 있던, 2000년 어느 날이었다. 일요일 아침마다 나의 이름을 불러주던 어린 시절 친구 놈한테 전화가 왔다. 다짜고짜 “야구할래?” 묻는다. 야구? 뚱딴지같은 물음에 나도 모르게 불쑥 대답이 튀어나왔다. 하자!
그래서 초등학교 시절 같이 야구를 했던 동네친구들이 다시 모였다. 어디서 구했는지 글러브와 방망이가 놓여있고 한 덩치하는 친구들이 추리닝에 운동화를 신고 그렇게 야구를 시작했다.
어린시절에는 야구를 곧 잘했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살이 찌고 몸이 둔해진 성인이 된 나의 야구실력은 형편이 없었다. 그런데 어린시절 야구보다 재미있었다. 실수를 하는 모습도 재미있었고, 아주 가끔 나오는 멋진 플레이 역시 재미를 증가시켰다.
유니폼을 맞추고 야구장비들도 조금은 고급스럽게 갖추면서 제대로 된 팀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맘 놓고 야구를 할 수 있는 야구장이 없었다. 한강변 공터, 말이 공터지 자갈밭에서 야구를 했다. 아무 것도 없는 공터에서조차 야구를 하는 사람들로 자리싸움이 심했다. 새벽에 누가 먼저 자리를 잡고 있느냐에 따라 자리임자가 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야구를 하고 싶은데 야구할 운동장이 없다는 것에 한숨만 나올 뿐이었다.
2003년 그 공터에 야구장을 만들기 시작했다. 흙을 뿌리고 다지고 바닥은 어느 정도 운동장 모양이 나왔는데, 야구장의 필수요건인 펜스가 없었다. 새벽에 나가 외야에 말뚝을 박고 그물을 쳤다. 지금 생각하면 참 촌스러운 구장이었다. 그렇게 만든 구장에서 여러 야구팀과 리그를 결성해 야구를 시작했다.
좋은 구장에서 하는 기존 리그보다 많은 시합시간을 가지면서 모두가 만족하는 야구를 하기 위해 노력했다. 2007년 아직도 만족되지 않는 구장, 꿈의 구장을 만들기 위해 더 많은 열정이 필요하다.
누군가 나에게 야구에 대한 열정이 있다고 한다면 난 그것을 부정한다. 그러나 누군가 나에게 야구에 미친 사람이라고 하면 난 그렇다고 한다. 미쳐야 재미가 있다. 야구에 미쳐있는 나를 아는 아내는 야구에 대해서만큼은 포기한 상태다. 집안 가족들 역시 야구에 미친 나를 알기에 집안행사를 일요일에 잡는 경우가 없다.
어느 날 아내와 필요한 물건을 사러 백화점에 가는 길이었다. 야구에 대해서는 포기한 아내였지만 이날은 야구로 차 안에서 작은 다툼이 있었다. 아내는 화가 나서 이런 말을 내게 던졌다. “내가 좋아, 야구가 좋아. 뭘 선택할거야?”
순간 운전을 하던 내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아내를 쳐다보며 말을 하려는 순간, “알았어, 미안해. 내가 괜한 걸 물어봤다.” 하는 것이다. 아내는 나의 답변이 뭐가 나올지 알았다. 그 말이 나오면 자신이 너무 큰 실망을 할까봐 미리 막았던 것이다.
아내에게 어찌 미안하지 않겠는가. 그래도 돌이 안 된 아들이 던지는 야구공을 받으며 좋아하는 나의 모습을 아내는 미소를 띠며 쳐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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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식|위탁급식회사인 ㈜이씨엠디 위생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현재 사회인야구에서는 드물게 9회 3시간(보통 7회 2시간)으로 펼쳐지는 파워풀리그의 회장으로 활동하며 강력한 카리스마를 뿜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