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가는 물에 두 번 다시 손을 씻을 수 없다

나의 인연 이야기

2007-07-30     관리자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보내며 부모님을 원망하기도 하고 우여곡절도 많았다. 신문배달, 신문팔이를 거쳐 공장에서 기술을 습득하였다. 1979년 전국 공예품 경진대회 본선에 입상한 것이 계기가 되어, 수출이라는 큰 꿈과 희망에 부풀었다. 그러나 자금이 문제였다. 무일푼의 시작은 겹겹산중 많은 난관에 부딪치고 뼈아픈 시련은 닥쳐왔다. 때마침 은도금 제품이 사양길로 접어들면서, 짊어지고 가야 할 짐이 너무 무거워 그 언덕을 넘지 못하였다.
다시 인연이 닿은 것은 녹두비누 유통업이었다. 1982년 한창 체인유통본부 활성화시대를 맞아 납품처를 많이 확보해 놓고 물건만 공급되면 되는데, 공장이 부도나버렸다. 어떡하라는 말인가? 힘은 쇠진되고 좌절감에 몸도 마음도 상처투성이가 되었다.

역경의 세월을 넘어 부처님과 맺어진 인연
가방 하나 짊어 메고 해인사 원당암으로 발길을 옮겼다. 바로 그 원당암이 부처님과의 인연을 맺게 된 곳이다. 하루이틀 지나자 새벽 도량석 소리를 들으면 저절로 눈이 떠져 법당에 앉았다. 은은한 목탁소리에 마음이 편안해지고 복잡한 뇌리도 식어 내리는 것 같았다.
산내 암자며 가야산 정상까지 두루 다녀본다. 모든 것을 잊고 있었다. 늦은 가을 가야산은 온통 내 것이었다. 김장철인 그때 스님들과 밭으로 배추를 뽑으러 가기 전 편지를 썼다. 많은 이들에게 죄송스럽다는 말과 함께, 아직은 부채를 해결할 힘도 없지만 시간이 걸리더라도 반드시 변제할 것을 약속드린다는 구절도 넣었다.
다시 발길은 한 달여 묵은 원당암을 뒤로하고 대흥사로 향한다. 산에 오르고 오르니 조그만 암자가 나온다. 절 마당에 앉아있으니 측은한 모습이었을까 노스님이 방으로 들어오라신다. 손수 과일까지 깎아주시는 인자하신 모습에, 언제 내가 이렇게 따뜻한 손길을 받아 보았나싶어 눈물이 핑 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