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법구] 피차일반 (彼此一般)

2007-01-23     관리자

얼마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이 바뀌었다.

새 관장은 60년 국립중앙박물관 최초의 여성관장, 외부에서 영입한 최초의 인사 등 여러 수식어를 동반한 김홍남 관장이다. 그러한 연유로 인해 김 관장의 취임은 문화계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들에게도 큰 관심사가 아닐 수 없었다. 더군다나 박물관 내부에서 볼 때, 국립민속박물관장 재직 시 일부언론에서 독단적 업무스타일을 가졌다는 평가를 들어왔던 그녀인지라 이러한 관심의 집중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김 관장은 취임식에서 “사람들은 내게 독단이니 독선적이라고 말한다. 또는 밀어붙이기식 스타일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좀 더 긍정적인 시각에서 봐주길 바란다. 독선과 독단을 ‘소신’으로, 밀어붙이기를 ‘추진력’으로 생각해 주면 안 되겠는가.”라고 말했다고 한다. 

추후, 취임식에 참석한 인사를 통해 위와 같은 취임사를 전해 듣고 순간 나는, ‘과연 내가 알고 있는 김 관장다운 자기 고백적 표현이구나’ 하는 생각에 그녀의 지도자적 자질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이를 통해 조직의 리더로서 자신을 스스로 인정하면서 구성원들에게 이해를 구하는 이런 모습은 오늘날 우리 지도자들이 가져야 할 가장 큰 덕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던 것이다. 

부처님의 말씀 중 피안(彼岸)과 차안(此岸)이 있다. 다름 아닌 바로 이것이구나 하는 생각에 불현듯 나도 모르게 작금의 세태를 오버랩하게 되었다. 

최근 우리 사회는 서로간의 이해를 통하면 잘 해결될 수 있는 문제를 극단적 대립, 반목이라는 양상으로 끌어내어 불필요한 소모전을 벌이는 경우가 많아 보인다. 국가적 이슈가 되고 있는 ‘군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문제’나 ‘한미 FTA 협상’, ‘교육·법무장관과 문광부차관 등 일련의 인사 파문’이 그렇고 ‘건설노동자의 포스코 본사 점거’가 그렇다. 극과 극만 있을 뿐 피차가 없어 보인다. 나만 옳고 너는 틀리다는 식이다. 이러한 사안들이 크게 보면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님을 이미 우리는 알고 있으며, 그러하기에 이를 바라보는 우리의 심경은 착잡하다. 

‘피안(彼岸)!’ 문자 그대로 하면 ‘저쪽 기슭’이라는 뜻이다. 사전에 따르면, ‘불교에서, 이승의 번뇌를 해탈하여 열반의 세계에 도달하는 일, 또는 그 경지, 반대말은 차안’이다. 요컨대 불교에서 말하는 피안은 결코 이 세상과 동떨어져 있는 그 어떤 다른 세상이 결코 아니다. ‘존재론적으로’ 현상계 바깥 어느 곳에 실재하는 그런 곳이 아니다. 때문에 피안을 기독교의 ‘천국’이나 플라톤이 말하는 ‘이데아계’와 혼동해서는 곤란하다. 

‘피안의 세계로 간다’는 등의 표현에도 그와 비슷한 오해의 소지가 없지 않다. 피안의 본래 의미에 충실하고자 한다면, ‘피안의 세계로 간다’는 것은 현재의 장소와는 다른 장소로 이동한다는 뜻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 변화한다는 뜻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나의 마음, 아니 지금의 나 자신이야말로 그 어느 곳에 있든지 차안에 거할 수도 피안에 거할 수도 있다. 기독교에도 ‘네 마음 안에 천국이 있다’는 가르침이 있는 것을 보면, 종교를 불문하고 어떤 이상향은 의외로 우리 가까이, 아니 우리 자신 안에 있는 것 같다. 지금 우리는 피차일반(彼此一般)이라는 부처님의 말씀을 편안한 마음으로 생각해 보아야 하는 순간에 놓여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