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외의 도전과 바로 서기

한해를 보내며

2007-07-22     관리자

 또 한해가 저문다. 우리는 한해를 마감할 때마다 언제나 '다사다난(多事多難)'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사실 역사는 '다사다난'한 가운데 일어나고 쓰러지기 마련이어서 이 용어 만큼 딱 떨어지는 말도 없을 성 싶다. 지난 한해 이 나라에서 일어났던 크고 작은 일에서 부터 세계 도처에서 일어 났던 여러 일들을 떠올려 보면 89년도 '다사다난'한 한 해였음을 실감한다. 우리나라는 분단의 아픔을 어느 때보다도 실감하면서 지낸 한 해였다. 통일 논의가 봇물 터지듯 터지면서 우리는 다시 한 번 분단국가로서의 비애을 뼈저리게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서경원의원과 임수경양의 밀입북은 우리가 89년에 겪었던 최대의 아픔이다. 정치적으로는 아직도 유아기를 벗어나지 못한 것처럼 보이는 이른바 여소야대의 정국. 이른바 '5공청산'도 계속 계류중이어서 국민은 여전히 피곤한 눈으로 이들의 추이를 관망하고 있다. 5공은 꼭 청산해야 한다. 그런데 큰 정치는 보이지 않고 여전히 당략에만 국집하니, 국민은 피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따분한 국내정치 때문에 민생치안이 실효했다. 골목과 집안의 치안에 구멍이나, 많은 사람이 목숨과 재산 그리고 귀중한 '정신'을 잃었다. 이런 따분한 일들만 있는 가운데 우리는 동쪽으로 부터 불어온 동구 공산주의 국가들의 개방 개혁의 소식을 들었다. 그 중에도 베를린 장벽의 붕괴는 우리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됐다. 서울올림픽의 표어였던 '벽을 넘어서' 그들은 서로 삼페인을 터뜨리고 입맞춤을 나누고 있다. 같은 분단 국가로서 우리는 그들을 시샘한다.  이런 역사의 소용돌이가 바로 1989년, 80년대를 마감하는 이해에 벌어진 일들이다. 숫한 분쟁과 역경이 있었지만 세계는 새로운 기류를 만나고 있는 중이다. 하도 변화가 빠른 시절이어서 아마도 이 글이 나갈쯤에는 또 어떻게 돼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세계의 한 해를 '말타고 달리면서 산을 보듯' 하였지만, 그 속에는 또 다른 인고와 탄생의 아픔이 없지 않았을 것이다. 드러나지 않아도 실패한 일과 좋았던 일이 얼마나 많았으랴.

 앞 글이 너무 길었지만, 우리 불교계의 한해를 돌아보는데는 큰 교훈이 있을 것이라는 나름의 생각이 없지도 않다. 역사는 언제나 변화속에 일어난다. 그것이 느리든 빠르든, 싫든 좋든, 어떤 흐름속에서 일어나고 쓰러진다. 한국 불교계도 싫든 좋든 변화의 불길을 이해에도 만났다. 아마도 올해만큼 크고 작은 일들이 있었을 것 같지 않다. 금년도의 불교계를 가늠해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내외의 도전과 바로서기의 한해가 아니었나 하는 것이다. 새해 벽두를 장식한 뉴스는 정부의 '10.27법난' 공식 사과였다. 그 동안 불교계는 이 10.27 법남으로 자존심을 상해 왔다. 그 전말이 확실히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불교박해였던 것만은 증명된 셈이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한번 10.27법난의 의미를 해석해 보는 계기를 맞았다. 정권유지 차원에서 군인들은 종교를 제물로 삼았던 것이 확실하다. 그런데 일부 스님들은 이 사건을 자성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꼬리를 달지 않아도  심장함이 들어 있음직 하다.  어쨋든 불교계로서는 다소나마 자존심을 되찾을 수 있었으니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이 자존심은 우리 내부로부터 심한 상처를 받는다. 이른바 봉은사 사태가 그것이다. 아무리 상황을 설명하고 변명해도 결국은 '절 뺏기 싸움' 이라는 세인의 평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마치 6.25때 ㅇㅇㅇ고지를 뺏기고 되찾고 하는 식이었으니 이들의 혹평에 무슨 변명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다행히(?) 이제는 해결이 됐다. 그러나 그 상처는 오래도록 남아 있을 것이 분명하다. 교계 전체로 눈을 돌릴 때 우리는 또다른 큰 변화에 놀란다. 불교재산관리법이 지난해 폐지되고 대체 입법된 전통사찰 보존법이 나오자, 새로운 종단들이 비온 뒤 죽순 돋아나듯 나타났다.  탈종과 분종으로 스님들이 이합집산을 했다. 가히 종단 춘추전국시대를 방불케 했다. 불교 종가격인 조계종에는 몇스님이 종단을 떠났을 뿐 여전히 거목의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군소종단에 이르면 만신창이가 됐다. 전사법에 따라 종단이 '임의단체'로 전략되자 주도권 싸움이 벌어졌다.  꼴보기 싫어서 나가고 밀어내고, 그리고 이합집산이 나타났다. 불교사로 보 때 이해처럼 만화방창했던 때가 있을까. 뒷날 겸연쩍은 일들이 너무 많았다고 회고할 때가 없기를 바랄 뿐이다. 이런 중에도 우리는 희망적인 소식을 들었다. 불교방송국의 설립과 승가대의 인가가 그것이다. 불교방송국의 설립은 교계의 30년 숙원이었다.  회고하면 조계종의 역대 총무원장치고 이 불교방송설립을 취임일성으로 하지 않은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성도일 시험방송에, 늦어도 내년 5월에는 방송이 될 예정이므로 불교사에 쾌거가 아닐 수 없다. 현대는 매스컴의 시대가 아니가.  그런 탓에서 작년부터 발행되기 시작한 [법보신문]이나 [해동불교]가 제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한 것도 기록됨이 아닐 수 없다. 승가대 설립도 불교계의 숙원이었다. 아직 대하 골격인 법인 허가만 나온 상태지만 금년내로 설립 인가가 예상돼 낭보에 첨가된다.  사실 우리 승가는 여전히 전통적 강원 교육이 고작이다. 그러나 세상은 너무 많이 달라졌다. 시대에 맞는 교육이 없고서는 이 풍진세상을 구제할 수 없다. 좋은 결과가 기다려 진다. 올해에도 여전히 '횃불'사건이 끊이질 않았다. 우리는 그것을 종교간의 대결로 보려고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사태는 자칫 다종교사회에서 분쟁을 일으킬 소지로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이러한 도전은 간과 할 수 없다. 민족전체를 생각할 때 더욱 그러하다.  이런 의미에서 두번째로 여린 '한강연등제'는 뜻깊은 행사로 남는다.  이 법회는 여러가지 미숙함이 드러났지만 불교도의 응집된 마음을 읽을 수가 있었던 기회로 귀중한 시간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해에 기록될 중요한 것이 단 하나 있다.  통일분위기와 함께 북한의 불교 실체를 우리가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신법타 기대운스님의 방북과 그들이 전해준 북한의 불교는, 우리들의 낭패감을 어느정도 풀어주었다. 그곳에도 불교는 살아 있다는 즐거움도 있지만, 우리 민족의 통일사상이 불교에서 찾아져야 한다는 당위를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해 우리들에게 즐거움을 준 사람이 있었다. '달라이 라마'가 그 주인공이다.

 이상 89 년의 불교계를  '말타고...'보듯  하였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역사는 역사로만 기록되는 것이 아니라는 교훈이다. 불교식으로 말한다면 그 역사속에 있는 '인'이 결국 '과'를 가져다 준다는 사실이다. 휘몰아치는 동구의 개혁은 결국 유럽, 그리고 세계의 역사를 다시쓰는 계기를 만들 것이 분명하다. 이와 같은 논리로 우리 불교계가 89년에 겪었던 '역사'는 결국 뒷날에 나타난다. 빠르면 90년이 될 지도 모른다. 80년대를 마감하면서 우리가 보다 소중히 생각해야 하는 것은 80년의 우리의 시련이 결코 헛되지 않으리라는 희망이다. 우리에게는 지난 시절 내외의 도전에도 이를 슬기롭게 극복한 예가 얼마든지 있지 않았던가. 새 역사는 새롭게 쓰여져야 한다. 옛날 역사와 결코 같아서는 아니된다.  우리들 모두 임계의 할(喝)과 덕산의 30방(棒)을 준비하자. 佛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