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싸움

스님의 그늘/ 금오(金烏)스님

2007-07-18     관리자
 얼마 전에 젊은 부부와 함께 저녁식사를 한 적이 있었다. 이들은 결혼한 지 4년이 된 부부인데 옆에서 보기에는 매우 단란하고 행복해 보였다. 그런데 소주를 두어 잔 마신 남편이 아내에게 불쑥 하는 말이 “당신은 어째서 그렇게 바보짓만 하나, 아무 쓸모없는 것을 돈을 주고 왜 사나. 살려면 좀더 쓸모가 있는 것을 사야지.” 했다.

  아내가 볼멘소리로 “내가 바보인 것을 이제야 알았어요. 내가 무엇을 사든 내 마음 대로라구요. 내가 벌어서 내가 사는데 무슨 참견이에요. 그것보다도 당신이 나에게 사준 것이 무엇이 있어요. 돈벌이가 신통치 않아서 아무 것도 사주지 못하면서 참견은 웬 참견이에요.”

  남편 “말 말라고. 월부를 갚은 것만으로도 숨이 차다고. 당신이 잘 알지 않는가. 알면은 돈을 절약해야 하는 것 아닌가.” 

  아내 “그것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이에요. 그러는 당신은 왜 매일 밤 비싼 술을 마시지요.” 

  남편 “‥‥ ” 

  아내 “왜 말이 없지요 그것 보세요. 당신이야말로 아무 말 못하지 않아요.”

  나는 이들 부부가 장군멍군하면서 조금도 양보하지 않는 말다툼을 들으면서 예기치 않은 요즈음 젊은 부부들의 생활상을 목격한 듯했다. 신혼 때의 그 부지런하고 화목하던 모습은 어느 새 사라지고 서로 상대방의 단점을 들추어내서 다투는 모습을 보면서 문득 ‘아, 이들도 생활에 지쳤구나.’ 하는 탄식이 저절로 나왔다.

  옛말에 “부부싸움은 칼로 물베기”라고 했지만 할 말이 없었다. 이러다가 이들이 이혼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부질없는 걱정까지 했다.

  이혼이 잦은 세태 때문이겠지만, 이혼은 생각조차 하지 않으리라 믿기 때문에 나의 생각이 경망스럽다고 자책하면서 오늘, 차라리 실컷 다투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상책이다 싶었다. 그래서 실컷 장군멍군하고 나면 가슴 속 응어리가 풀려서 새롭게 사랑이 움트고 화력을 되찾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과연, 이튿날 아내와 남편이 따로따로 전화를 해서 내 앞에서 다툰 것을 사과하고 남편은 “추태를 보여서 미안합니다. 그러나 어제 밤은 유익했습니다. 우리 둘 사이의 담이 없어진 느낌입니다,” 하고 아내는 “그이가 어려움 속에서도 그렇게 너그러운 것을 처음 알았다,” 고 했다. 그리고 자기가 남편을 너무 몰랐고 또 이기적이었음을 깨달았다고도 했다. 나는 그들이 한층 더 미덥고 아름다운 부부라는 생각을 하면서 언제고 그러한 자리가 필요하면 나를 부르라고 하였다.

  그리고 오래 전에 있었던 일을 회상했다.

  나의 은사(恩師) 스님이신 금오(金烏) 스님께서 총무원장직을 내놓으시고 금산사로 가시는 길에 잠시 수원의 팔달사에 머물고 계실 때였다. 궁금해서 문안을 드리려고 찾아 간 나에게 스님께서 함께 청계사에 가자 하셔서 동행을 했다.

  그 무렵 안양에서 청계사로 오르는  산 밑 후미진 곳에서는 밀도살이 성행했다. 여름날의 해질녘, 산 밑에 다달했을 때였다. 한 농가에서 남녀의 고성이 울리고 아이들의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드렸다. 담 너머로 들여다보니 도끼를 든 남자와 남자의 허리를 안은 여자가 고성을 지르면서 싸우는 데 겁에 질린 아이들은 발을 동동거리며 울부짖고 동리 사람들은 팔짱을 끼고 구경할 뿐 아무도 말리는 사람이 없었다.

  스님께서 “월탑아, 우리도 구경을 하고 가자.” 하시고 성큼 싸리문을 체치고 마당으로 들어 서셨다. 그리고 주장를 높이 드어 사내의 어깨를 내리치셨다.

  “이놈. 소 잡는 도끼로 사람을 잡느냐.”

  놀란 사내가 도끼를 놓치고 스님을 향해 돌아섰다. 눈에 핏발이 서려 있었다. 순간 조용해졌다. 스님은 사내에게 조용히 말씀하셨다.

  “이 사람아. 부부싸움은 안방에서 하는 거여. 더 싸울 일이 남아 있는가.”

  그제서야 동리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나서서 “아주머니가 참으시오.” “자네가 참게.” 하고 말렸다. 아내는 방으로 들어가 꺼이꺼이 울면서 넋두리를 늘어놓고 남편은 툇돌에 앉아 담배를 물고서 핏발 선 눈을 허공으로 보냈다.

  스님은 아무 일 없었던 양 돌아서 산을 올랐다. 그런데 그 다음날 아침, 사람소리가 웅성거려 밖으로 나가 보니 어제의 그 싸우던 부부가 아이들과 함께 절에 와서 스님을 찾았다. 그리고 불공을 드리겠다고 한다.

  두 부부는 도끼를 들고 싸운 부부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을 만큼 단란하고 화목했다. 사시에 불공을 드리기 위해서 아내가 하는 일을 남편은 어떻게든 돕고 싶어서 옆을  않았다. 나물을 다듬는 아내 옆에 함께 나물을 다듬으며 아내를 바라보는 남편의 눈길이 깊었다.

  그러는 남편을 귀찮은 듯 핀잔을 주는 아내의 누에 믿음과 사랑이 넘쳤다. 찰떡을 찧는 남편, 추스르는 아내. 두 사람을 보면서 나는 인간사란 알 수 없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지를 올리고 축원를 한 다음 스님께서는 이들을 위해서 법상에 올라 법문을 하셨다. 법문은 육방예경(六房禮經)이 주제였다.

  “부처님 당시에도 부부간에 싸움이 끊이지 않았다.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부부의 화목을 위해서는 남편은 아내를 존경하고 예절을 지켜야 한다. 남편은 또 아내에게 집안일을 맡기고 힘이 닿으면 폐물도 사주고록 하라. 그리고 안내는 집안일을 열심히 성의껏 하고 일하는 사람을 적절하게 부리며 정조를 지키고 남편의 수입을 낭비하지 않고 재산을 저축해야 한다고 가르치셨다.”

  기억하건데 육방예경의 이러한 요지를 말씀하셨다. 그리고 아내에 대해서도 설하신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옥야경(玉耶經)의 일곱 가지 아내에 대해서도 설하신 것으로 기억한다. 그 대강을 간추리기로 한다.

  “수자타, 세상에는 일곱 가지 아내가 있다. 첫째는 살인자와 같은 아내로서 더러운 마음을 갖고 남편을 존경하지 않으며 다른 남자를 넘보는 아내이다. 둘째는 도둑과 같은 아내로서 남편이 하는 일을 이해하지 않고 자기의 허영만을 좇고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남편의 수입을 낭비하고 남편의 재물을 훔치는 아내이다. 셋째는 주인과 같은 아내로서 집안일을 돌아보지 않고 게으르며 제 욕심 채우기에 바쁘고 항상 남편에게 사나운 말을 하는 아내이다. 넷째는 어머니와 같은 아내로서 남편에게 자상한 애정을 갖고 어머니가 자식을 대하듯이 남편을 지키고 남편의 수입을 귀중하게 여기는 아내이다. 다섯째는 누이와 같은 아내로서 성의를 가지고 남편에게 봉사하며 자매와 같은 애정과 수줍은 마음을 가진 아내이다. 여섯째는 벗과 같은 아내로서 항상 남편을 대하면 기뻐하고 마치 오랜만에 만난 친구를 대하듯이 남편을 대하며 정숙하며 남편을 존경하는 아내이다. 일곱 번째는 하인과 같은 안내로서 성의껏 남편에게 봉사하고 남편을 공경하고 남편에 대해서 인욕하여 성내거나 한을 품지 않으며 남편을 소중히 대하는 아내이다.

  수자타, 그대는 이 중에서 어떤 종류의 아내가 되고자 하는가.”

  요즈음의 아내들에게는 귀에 거슬리고 넌센스라는 비난을 받을지 모르나, 스님은 옥야경을 설하신 다음 “ 부처님의 이 가르침은 뒤집으면 남편에게도 그대로 해당된다.”고 하셨다. 오늘날에 있어서도 충분히 음미해 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불공을 마치고 그들이 돌아간 다음. 나는 스님에게 궁금한 그들 부부의 변화에 대해서 물었다. “스님 어제 그렇게 싸운 저부부가 어떻게 해서 오늘은 저렇게 다릅니까?”

  스님께서는 “네가 그것을 알면 중노릇을 못한다. 그러니 안 일러준다.” 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