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생의 눈물

보리수 그늘

2007-07-17     관리자

 눈물 많은 세상을 사는 것보다는 눈물없는 세상을 누리는게 복일런지 모르겠다. 그러나 요즈음 세태는 너무도 눈물이 메말랐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팍팍하고 모질다. 사람들의 생각이 한사코 쫀쫀하고 영독스러워 가는 탓인지, 아니면 반만년 누fl쳐 온 물긋한 잔정들이 웃음 헤픈 서양문화에 먹힌 탓인지는 가늠하기 어렵다.

철딱서니 없게 밤새 울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생각나는 한 사람이 있다. 함경북도 경성 태생인 박 선생은 그 적 (61년도)춘추가 예순 넷이었다. 세월의 연차가 무려 30여년이 되던 나는 매사에 부접 못하며 꽤나 설설 기었었던가 싶다. 「공능리」에서「지금리」그의 우거까지 행보하여 세배도 다녔었다.

「에구 이런 짓은 왜 하능가? 내 무시기 어른이라구 당시잉 절으 받구…….」 번번히 사양하다가 마지못해 절을 받으며 「새해에는 복으받구 다 남자 하라궁 」 하는데 , 그 적마다 등 돌아앉아 눈물을 훔치곤 하던 것이다. 이 좋은 새해 아침에 우시긴 왜 우십니까 하며 사뭇 앙달머리 떨어보는 나에게 「‥‥‥고향생각 나서리 이러누만‥‥‥막내노무 셰끼르 못 데리구 나왔었거덩 밥으줍소 하면서레 나르 달과체던 모습이 떠오르쟁가?‥‥‥」박 선생의 눈물은 생존의 마디에서보다 낚시터에서 더 처량했었었다. 예사스러운 생각에서는 궁상스럽다 여김하고도 남을 그의 감루(感淚)――― 그의 우니는 뜻이 대저 이렇던 것이었다.

 오색영롱한 살치 한마리를 잡았다 치자. 그는 손바닥 우에다 살치를 올려 놓고는 울먹거리던 것이다.
「무시기 이리 고운가 에구우――색동옷으 입구 어드메 가서리 놀겠다구 했넨? ‥‥‥어째 이리 고운가‥‥‥젖으 빠는 아아 주둥이같은 입으루 피르 흘리구!‥‥‥.」하아 ―― 하는 한숨이 겉마른다 싶을 때 살펴보면 그는 어김없이 줄줄 눈물줄을 달고 있었다. 또 어떤 때는 「맑은 하늘」놓고도 울었다.

『이거 봅소. 좋은 하늘으 지붕으 삼고 사는 사램드르 팔째가 어째 이리 다릉가 ?』
『예에 ?』
『‥‥‥하늘말이 !‥‥‥ 기상으 들어보니깐 남북 전국이 다 맑겠다 했거덩. ‥‥‥보자구 약조했으문 어드메서 못보관데 !』
『‥‥‥그렇겠습니다.』
『후움―――양이곱구 데럽아서 !‥‥‥ 울음으 않울구 살제두 살 쉬가 없궁. 이노무 눈물은 끝도 없구 어째 이리 한새쿠 지랄으 떠냔말이 ‥‥‥.』

 논길을 걸어온 아낙네가 밥 함지박을 내려놓고는 구슬땀을 송알지며 앉는다 . 「보오다. 이 물으 좀 마시
지비. 약수라잉가 약수 ! 새벽같이 일어나서리 신다리 저리게 길러 온 거라궁 .」 아낙네의 벌컥거리는 소갈증을 눈여김하며 말없이 밥을 비웠다. 아낙네가 빈 함지박을 머리 위에 얹고 사물사물 사라져 간다. 우묵주발처럼 멍청히 선 채 한동안 아낙네를 살피던 그가 코맹맹한 소리로 중얼거렷다 .
『숫똥개노무 셰끼드르 !』
『‥‥‥ 누구말입니까 ?』
『뉘긴 뉘기야 ? 저 아주망이 사나셰끼 말입지.‥‥‥무시기 . 짓으 못해서리 제 안깐보구 밥채반으 나르라구 하능가 ? ‥‥‥에구 저거 불쌍해서리 어쩰까 !‥‥‥ .』
『‥‥‥ 북에 계신 아주머니 생각 나신 게로군요 .』
『무시기 그런 말으 ! 앙이야 ! ‥‥ 따루 따루 갈라져 살 팔째들 아잉가 ?이 좋은 낚시터에서 그런 말으‥‥』

짐짓 장성세게 부인하지만, 그는 영락없이 손등으로 눈두덩을 훔쳤었다 . 그의 눈물은 참으로 유별났다 . 이를테면 ―――「낚시터 물김으는 어쩨 이리 좋은가」하며 뾰요스럼 눅진거리는 물김이 좋다고 울고, 「바램 한 줄이 어쩨 이리 고마웅가 ! 무지 무지하게 더웠었거덩」하며 열탕 식혀주는 일진청풍이 고맙다고 울었던 것이다 .

65년 한 여름. 인후암에 걸린 그가 수술실로 들어갈 즈음 . 나는 그의 곁을 따르며 간곡히 원청했었다.    『맘 편히 잡숫고 그만 우세요 !‥‥ 질리시지도 않습니까 !‥‥‥ 편한 맘 으로 가셔야지요 ‥‥‥ .』
『내 무시기 다른 게 섦구해서리 울음으 우능게 앙이야 ‥‥‥ 고영이 좋은 사램드르하구 살았던 그 좋은 생각나서리 ‥‥‥ 당시잉같은 사램드를 여엉 못 볼 생각하잉가 ‥‥‥ .』 박선생은 저승문턱 두르리면서도 이렇게 울었었다.

눈물 한 방울 만들 짬 없는 이 사막스러운 세상을 이렇게 살다가 나 역시 귀숙 (歸宿) 하는날 , 저승의 박선생 앞에서 흘릴 눈물을 어떻게 장만해야 할 지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