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생에 확철대오를 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선가귀감 강설 9

2007-01-23     관리자

제21장
工夫 若打成一片, 則縱今生, 透不得,
眼光落地之時, 不爲惡業所牽.
공부가 만일 타성일편이 된다면, 비록 금생에 확철대오를 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임종시에 안광이 사라질 때 악업에 끄달리지 않을 것이니라.

업은 어두운 무명(無明)이요, 선(禪)은 밝은 반야 지혜니라. 명암이 서로 맞설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가 아닌가!


강설
비록 깨닫지 못한다 하여도 타성일편한 참선자는 악도(惡道)에 떨어지지 않는다. 반야 지혜의 힘이 크기 때문이다.
금강경에서 말한 성류(聖流, 수다원과)와 사다함, 아나함의 과위(果位)에 오른 삶과 같이 한 단계 높이 올라서 이제는 범속한 부류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깨달음의 목표가 굳은 의지의 수행자 모습이다.


타성일편(打成一片)
턱 하니 확실하게 조각 하나를 이루었다는 뜻. 화두 공부가 순숙(純熟)한 사람은 화두를 들면 곧 일념 삼매에 들 준비 단계에 와 있다. 예컨대, 기쁨과 즐거움으로 원심력과 구심력을 잘 타고 있으며 이대로 정진하면, 견성성불이 확실하다는 자신이 선 참선자이다.

제22장
大抵參禪者, 還知四恩, 深厚陵? 還知四大醜身, 念念衰朽陵? 還知人命, 在呼吸陵? 生來値遇佛祖陵?
及聞無上法, 生希有心陵? 不離僧堂, 守節陵? 不與隣單, 雜話陵? 切忌鼓扇是非陵?
話頭 十二時中, 明明不昧陵? 對人接話時, 無間斷陵? 見聞覺知時, 打成一片陵? 返觀自己, 捉敗佛祖陵? 今生, 決定續佛慧命陵?
起坐便宜時, 還思地獄苦陵? 此一報身, 定脫輪廻陵? 當八風境, 心不動陵?
此是參禪人, 日用中點檢底道理, 古人云;
“此身不向今生度 更待何生度此身?”

참선자는 다음과 같이 돌아보아야 하느니라.
1. 네 가지 은혜가 깊고 두터운 줄을 알고 있는가?
2. 지수화풍 사대로 된 추한 이 몸이 찰나에 쇠퇴해 썩어가고 있는 줄을 알고 있는가?
3. 사람의 목숨이 호흡 사이에 있는 줄을 알고 있는가?
4. 살아오는 동안 부처님이나 조사를 친견한 적이 있는가?
5. 또한 위없는 법문을 듣고 희유한 마음을 낸 적이 있는가?
6. 승당을 떠나지 않고 절개를 지키고 있는가?
7. 곁에 있는 사람과 쓸데없는 잡담이나 하고 있지 않는가?
8. 분주히 시비거리 일삼는 것을 멀리하고 있는가?
9. 화두가 하루 중 어느 때나 명명백백한가?
10. 남과 이야기하고 있을 때에도 화두가 중간에 끊어지지는 않는가?
11.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견문각지 시에도 타성일편이 되는가?
12. 시선을 유턴(U-turn)하여 자기의 본래면목을 돌아보고 불조(佛祖)를 붙잡을 만한가?
13. 금생에, 꼭 부처님의 혜명을 잇겠는가?
14. 앉고 서고 편할 때에 지옥의 고통을 생각하는가?
15. 이 업보의 한 몸뚱이가 윤회에서 해탈할 자신이 있는가?
16. 팔풍의 경계를 당하여 마음이 부동한가?

이것이 참선자가 일상생활 중에 때때로 점검해야 할 내용이니라.
옛 사람이 말씀하셨느니라.
“금생에 이 몸 못 건지면 다시 어느 생에 이 몸 건지기를 기약하랴!”

네 가지 은혜는 부모, 나라, 스승, 시주의 은혜니라.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로 이뤄진 이 추한 몸은 아버지의 정기 한 방울과 어머니의 피 한 방울로 이뤄진 것이니, 근본은 수대(水大)의 젖는 성질이며, 정수는 뼈가 되고 피는 가죽이 되는 것은 지대(地大)의 단단한 성질이며, 정기와 피의 한 덩이가 썩지 않고 녹아 버리지도 않는 것은 화대(火大)의 더운 성질이며, 콧구멍이 먼저 뚫려 숨이 통하는 것은 풍대(風大)의 움직이는 성질이니라.
아난 존자가 말씀 하셨느니라.
“욕기추탁(慾氣殖濁)하여, 성조교구(腥昔交供)라. 정욕이 거칠고 혼탁하여, 비리고 추한 것이 어울려 뭉쳤느니라.”
그리하여 추한 몸이라고 한 것이니라.
찰나에 썩어간다는 것은 세월이 잠시도 쉬지 않아 얼굴은 저절로 주름살이 잡히고 머리털도 저절로 희어감에 옛 사람이 말하였느니라.
“지금이 지난 옛날이 아니듯, 훗날도 어찌 지금과 똑같을까?”
이처럼 무상한 몸이니라.
더구나 무상(無常) 귀신은 죽이는 것으로 오락을 삼아서, 정말 (살아 있는 자체가) 찰나찰나 두려울 뿐이니라.
날숨은 내쉬는 불기운의 양의 기운이고, 들숨은 들이키는 바람의 음의 기운이라, 사람의 목숨은 오로지 들이키고 내쉬는 한 호흡에 달렸다 할 것이니라.
팔풍(八風)은 크게 나눠 순역(順逆) 이풍(二風)으로 순경계와 역경계의 둘이니라.
지옥의 고통을 환산하면, 인간 생활의 육십 겁이 지옥의 일주야(一晝夜)니라. 쇳물이 끓고 숯불이 튀고 칼산과 창숲에 끌려 다니는 지옥의 고통은 말로써 이루 다 헤아릴 수가 없느니라.
사람의 몸으로 다시 태어나기 어렵다는 말은, 마치 바다에 떨어진 바늘을 찾는 것보다도 더 어렵기에, 애석하게 여겨서 경책한 것이니라. 평하여,

上來法語, 如人飮水, 冷暖自知.
聰明, 不能敵業. 乾慧, 未免苦輪. 各須察念, 勿以自亶.
지금까지 해온 법문은, 마치 사람이 물을 마셔보고, 차고 더운 줄을 제 스스로 아는 것과 같으니라.
그리하여, 총명하다 해도 능히 업의 힘을 막지 못하고, 간혜(乾慧, 알음알이 지혜)로써는 고(苦)의 윤회를 면치 못하느니라.
각자 심사숙고하여 분명치 못한 수행으로 자신을 속이지 말지니라.

강설
스스로 경책하는 법문 열여섯 조항은 참선자의 평생 좌우명이다.

팔풍(八風)과 번뇌
팔풍을 나누면, 네 가지 순풍 사순(四順)은 이예칭락(利譽稱樂)이고, 네 가지 역풍 사위(四違)는 쇠훼기고(衰毁譏苦)이다.
다음에서 자세히 살펴본다.
① 이풍(利風)
이(利)로운 바람이다.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내 이익에 팔려서 마음이 흔들린다.
② 쇠풍(衰風)
쇠(衰)퇴, 쇠멸하는 바람이다. 내 소유에 손해가 되어 마음이 흔들린다.
③ 훼풍(毁風)
훼(毁)방하는 바람이다. 기분 나쁘게 등 뒤에서 딴 말을 여기저기 퍼뜨리며 헐뜯고 훼방하여 마음이 흔들린다.
④ 예풍(譽風)
예(譽)찬하는 바람이다. 기분 좋도록 등 뒤에서 미담을 퍼뜨려서 우쭐해지고 마음이 흔들린다.
⑤ 칭풍(稱風)
칭찬하는 바람이다. 면전에서 좋은 말로 칭찬하는 말에 마음이 흔들린다.
⑥ 기풍(譏風)
기(譏)롱하는 바람이다. 면전에서 꾸짖고 악담하는 말에 마음이 흔들린다.
⑦ 고풍(苦風)
고(苦)통의 바람이다. 핍박한다는 뜻이다. 악연악경(惡緣惡境)을 만나 심신이 핍박을 받아 마음이 흔들린다.
⑧ 낙풍(樂風)
희락(喜樂)의 바람이다. 희열의 뜻이다. 호연호경(好緣好境)을 만나 심신이 희열을 느껴 마음이 흔들린다.
대승무생방편문(大乘無生方便門)에 팔풍이 나와 있다.
불지경론(佛地經論)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신체와 수족은 침묵 속에 안정되어 부동하나니, 팔풍이 불어도 부동하느니라(身體及手足 寂然安不動 八風吹不動).”

겁(劫)
범어를 음역하여 갈랍파(珏臘波) 또는 겁파(劫波)라 하고, 다시 줄여서 겁(劫)이라고 하였다. 무한히 오랜 세월을 가리키는 말이다. 겨자 겁 반석 겁 등의 비유가 있다.

니려(泥黎, 泥梨)
범어의 음역으로 지옥을 가리킨다. 니려는 아무 것도 없다는 말이며 기쁨과 즐거움이 하나도 없다는 뜻이다. 십계(十界) 중 가장 하열한 곳으로 무간 아비지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