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의 길

이남덕 칼럼

2007-07-14     관리자

  제6공화국이 시작되면서부터, 즉 대통령직선제의 새 헌법에 의하여 대통령을 새로 뽑고 또 국회의원 선거를 끝내고 나서부터 한반도 남북통일의 논의가 갑자기 활기를 띄게 되었다. 그동안 누구나 입으로는 '통일'을 말하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란 노래도 불렀지만, 실상 공허한 구호나 노래 이상으로 진지하게 통일을 논한다는 것은 금기 사항 중에서도 최대 항목이었다.

  4 · 19 후에 잠깐 민주주의의 기회가 있었으나, 5 · 16 군사혁명이 이를 막았고, 군사정권의 생리로서는 상대방이 동족이건 아니건 '공산주의'라는 이름의 '적' 앞에서 용납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동족이란 혈연관계를 가지는 지구상에서 둘도 없는 존재건만,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격언도 아랑곳 없이 생명없는 '이데올로기'라는 것이 생명의 혈연공동체인 동족을 43년 동안이나 두 동강 내고도 아직도 언제 합쳐질지 모르는 현재 상황에서 군사정권이 물러나고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새로운 상황을 다시 맞게 되니 그동안 막혔던 봇물이 터진 것처럼 통일의 요구가 표면화된 것이다. 지극히 당연한 민족의 외침이라 하겠다.

  이 터져나오는 민족의 외침을 우리는 소중히 생각해야 한다. 동족을 적대시 한다는 것은 사람으로서 견디기 어려운 부자연한 일이다. 그것도 하필이면 가족제도의 오랜 전통 속에서 혈연관계의 소중함을 거의 종교적 차원에까지 높여온 우리 민족에게, 이러한 역사적 시련이 가해졌다는 사실에 대해서 그 뜻을 깊이 생각해야 한다.

  세계는 하나의 세계요, 우주는 하나의 우주다. 한 민족의 통일은 그 나라 민족에게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세계사의 문제요, 전 우주생명의 문제라고 생각되는 것이다.

  우리의 민족분단이 극복되어 평화통일이 이루어지는 날 인류는 우리 민족과 함께 그 성숙성을 증명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통일을 염원하는 민족감정의 순수성만으로 통일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은 이미 43년전 일본이 패망한 광복의 날의 감격을 회상하는 것으로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때 나는 충북 봉양(鳳陽)이라는 조그만 마을에서 8 · 15를 맞이했었다. 마을을 지나가는 열차마다 중국 · 만주 등 북쪽에서 내리밀리는 귀환동포들이 꽉꽉 차 있었다. 차 안에 타고 있는 사람이나 연도에 서 있는 사람이나 서로 손을 흔들고 깃대를 흔들고 해방의 기쁨을 나누던 광경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오랜 일제 지배하에서 태극기 구경도 못했고, 민족감정을 기르는 교육의 혜택도 받지 못한 당시의 상황에서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날마다 점심시간 맞추어 한말들이 양은 주전자 몇 개에 보리차를 준비하고 감자 · 고구마 · 주먹밥을 만들어 정거장까지 나가서 기차안 귀환동포들의 기갈을 덜어주는 일과가 계속 되었었다. 부인네들은 아침부터 금융조합집에 모여서 몇 말씩 되는 감자 · 고구마를 삶아내느라 비지땀을 흘리면서도 모두 신들린 사람들처럼 손발이 척척 맞아서 수고로움을 몰랐었다.

  삼천리 방방곡곡이 사람들 뿐 아니라 산천초목까지도 순수한 환희의 한 마음이었다.

  이러한 민족 최대의 감격에도 불구하고 국토분단은 우리의 힘밖에서 이루어졌고, 6 · 25전쟁으로 하여 그 분단은 굳혀져서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우리네 백성의 마음이 불순했던 것도 아니고 정성이 부족했던 것도 아니다. 백성의 힘은 너무나 약했고, 우리의 운명은 우리 아닌 타인의 손에 의해서 좌우되어졌던 것이다. 당시의 전승국인 미 · 소의 입장에서는 패전국인 일본에서 빼앗은 전리품 대접밖에 우리는 받지 못했던 것이다. 그것이 당시의 국제현실이었고, 우리는 '무얼 모르는' 힘없는 백성들이었던 것이다. 민족지도자라는 사람들도 큰 이익에는 어둡고 작은 이익에만 밝았던 탓으로, 민족이 하나로 뭉치는 일보다 이미 현실적으로 형성된 외부세력에 붙어 버려서 동족상잔의 비극을 만들고 또 그것으로 하여 남북의분단벽을 더욱 굳은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긴 안목으로 역사를 보면 1945년 8월, 하늘은 우리에게 자주독립의 천운(天運)을 주었건만 우리는 그천운을 받을만한 준비를 못했었다. 그것은 우리만 자격부족이었던 것이 아니라, 약육강식의 원칙밖에 모르는 강대국을 위시한 인류전체의 차원이 우리의 자주독립을 허락할 만큼 높은 것이 못 되었던 것으로 풀이할 수밖에 없다.

  동양철학의 '천운'이란 표현은 요즘 쓰는 '기회'라는 말보다 몇 백 배의 무게를 느끼는 말이다. 개인에 있어서나 민족에 있어서나 우주 생명체로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자연법칙의 리듬 속에서 그 영고성쇠를 전개해 나간다는 우주관에서 볼 때, 비색(丕塞) 불운한 경지에서 낙심하지 말고 운수 형통(亨通)하는 경지에서 교만방심하지 말라는 인생관이 나오는 것이다. 운(運)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이것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성운이 된다.

  우리는 그동안 분단의 상처를 받아가면서도 우리 스스로의 힘을 키웠던 것이다. 전쟁의 잿더미 위에서 다시 일어나 오늘날 이만한 재건을 이룩한 국민의 힘에 대해서 스스로 대견하게 생각해도 어색하지 않을만하다. 이러한 힘의 터전이 없었던들 지난해 6월의 민주운동이 성공했을 리도 없고 이렇게 민족통일을 자유롭게 말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민족통일은 몇 사람의 정치가의 손에 달린 것이 아니라 그 밑바닥에 민족전체의 민주적 역량에 달렸다는 것은 두 말할 것도 없다. 만일 민주주의가 성공하지 못하면 통일은 뿌리를 잃기 때문에 이루어질 수 없고, 무슨 요행으로 통일이 이루어진다 해도 그것을 지탱할 내부의 힘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우리는 긍정적 역사관을 가져야 한다. 어떤 이는 그동안의 분단의 상처가 깊은 것을 통일의 장애요소로 보는 이도 있으나 상처란 치유될 수 있다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다. 또 어떤 이는 상대가 신봉하는 이데올로기를 혐오한다. 인간은 이념에 집착하는 존재이나 또 아무리 몹쓸 생각이라고 해도 그 가운데 이해할 여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결국 남을 대립적으로 적대시한다는 옹졸한 입장만 넘어선다면 개인이나 국가나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최첨단 과학의 어마어마한 무기 앞에서 그것이 세계 종말의 징조라고 함부로 입에 담는 그러한 부정적 역사관은 우리에게 아무 이익도 주지 못한다. 역사는 객관적 사실의 연속이 아니다. 역사는 기원(祈願)이요 진실이다. 우주 대자연은 인간의 성숙을 촉진시키기 위해 우리 민족에게 큰 시련을 준 것이라고 받아 들인다면 민족통일의 과업을 훌륭히 해낸다는 것은 곧 세계평화를 위한 우리 사명의 완수가 될 것이다. 우리 불자들이 조석으로 기원하는 자타일시성불도(自他一時成佛道)는 바로 이러한 긍정적 역사관의 목표가 아니겠는가. 佛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