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광법회에 나오는 도둑고양이

테마에세이/보람에 산다

2007-07-11     관리자

내 무슨 인연인지 불교 잡지 만드는 중책을 맡게 되었다. 잡지를 잘 만들려니 아무래도 불교 공부를 재대로 하는게 좋을 것 같아서, 흰 머리가 희끗희끗한 나이에 불교 야간대학에 입학을 하였다.


낮에는 잡지 만드는 일을 하고, 밤에는 야간 대학에서 불교 강의를 듣는다. 불교 서적도 짬짬이 읽으면서 내딴에는 불교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다. 불교 공부를 하다보니, 법회를 어떻게 하는지 궁금해서 삼월 어느 일요일 오전에 나는 도둑 고양이처럼 불광법회에 가보았다.

과연 소문 듣던대로 큰 법회였다. 내가 법회에 몇번 나가는 동안 받은 인상 중에 대표적인 게 ‘편안함’이다. 마루 바닥에 앉는 훈련이 안된 나에게 두어시간 가량 앉아 견딘다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지만, 내 마음은 한없이 편안하다.

불광 법회가 나를 편안하게 해주는 것은 불상이나 법당에 번지는 향내 류가 아니라, 아무도 나를 귀찮게 하지 않는 점이다. “당신 어디서 왔소?”라고 묻는 사람도 없고, “당신 뭐하는 사람이오?”라고 하는 사람도 없고, “당신 또 왔구려 반갑구려”하는 사람도 없다.

복잡한 불경 펴놓고 교리 따지며 덤비는 사람도 없고, 다음 주에 또 나오라고 구속하는 사람도 없고, 잠자리채나 돈주머니를 앞에 들이대는 사람도 없다. 인연따라 오면 오고, 인연이 다해 가면 가게 내버려 둠이 한없이 고맙고 또 편안하다.
 
며칠 전에 빽밀러 위에 염주를 건 택시를 탔는데, 기사와 불교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내가 불광법회에 몇 달째 나갔는데, 나를 귀찮게 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어 너무너무 편안하고 좋더라고 했더니, 기사양반도 내말에 맞장구를 치는게 아닌가!

우린 마치 동지를 만난 듯이 기뻐하면서 종료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내가 내릴 곳에 차가 닿았다. 그러나 우리의 공동관심사에 대한 이야기가 끝나지 않아 차를 세워놓고 한참 동안 이야기를 계속한뒤 “인연이 닿으면 또 만납시다”라고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나는 일요일이면 불광법회에 나가 도둑고양이처럼 구석자리에 앉아서, 법문이 가슴에 와 닿으면 닿는대로 좋고, 닿지 않으면 저 법문과는 아직 인연이 닿지 않나 보다라고 내 편한대로 생각하니 좋다.

하얀 백발을 이고 앉아 있는 할머니를 보면 고향에 계신 내 어머니, 돌아가신 내 할머니 뵙는 것 같아 좋고, 그러면서도 내 불효를 생각하면 가슴이 저려오고 뭉클해지기도 한다.
 
언젠가 우란 분절에 대한 법문을 들을 때도, 부모은중경인가 뭔가를 함께 욀 때도, 그게 너무 길어 좀 지루하긴 했지만, 내 불효를 떠올리고 한없이 뉘우치며 가슴 아파했던 것도 참으로 값진 감동이었다고 생각한다.
 
전두환씨를 백담사에서 받아주었을 때, 나는 불교가 참 한심한 종교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금 나는 “불교가 참으로 놀라운 종교구나!”하는 경탄을 하고 있으니! 나의 할머니와 어머니가 사십여년 전에 일구월심으로 드린 불공의 싹이 이제 내 속에 움트는구나 생각하니 사람의 일은 참으로 알 수 없고, 세상 인연은 참으로 묘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다음 주에도 불광법회에 나가 한쪽 구석에서 도둑고양이처럼 앉아서 법문도 듣고, 백발의 할머니를 보면서 고향에 계신 어머니 생각을 하고 불효를 뉘우치고, 내 속에 싹튼 노란 새싹에 물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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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현/ 시인. 어린이 불교잡지 「굴렁쇠」주간. ‘75년 「시문학」추천으로 문단에 데뷔. ‘85년 「소년」에 동화 ‘소싸움’을 발표, 동화작가로 활동했다. 「청산의서」「판돌이 특공대」「한글기계화개론」등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