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되네요, 죽어도 안 되네요”

자비의 손길

2007-01-23     관리자

해가 갈수록 더워도 너무 덥다. 특히 도심 폭염의 주 원인은 도로와 대형건물에 흡수된 열, 자동차와 에어컨 실외기에서 배출되는 인공적인 열원 때문이라고 한다. 대기오염과 인공열의 영향으로 온실효과가 나타나, 뜨거운 공기 덩어리가 열대야를 만든 뒤 다시 폭염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그래도 계절의 흐름은 막을 수 없나 보다. 하룻밤에도 수차례 샤워를 하게 만들던 가마솥더위도 가을을 부르는 선선한 바람에게 그 자리를 넘겨주고 있다. 만약 가을이 오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지금 이 순간에도 시원한 가을바람을 전혀 기대하지 못한 채, 평생을 여름 한낮 땡볕을 머리에 이고 살 듯 고통스럽게 겨우 지탱하는 삶이 있다.
이숙자(72세) 할머니 댁을 찾아 인사를 드리니, 얼른 초콜릿 하나를 손에 쥐어준다.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는 아들 이승환(51세) 씨에게 선물로 주라는 것이다. 낯선 사람이 집에 오면 화를 내며 소리를 지르나, 좋아하는 초콜릿을 주면 얌전해진다고 한다. 할머니가 시키는 대로 초콜릿을 주며 사진 찍어주러 왔다고 하니,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고 자리에 쭈그리고 앉아 초콜릿 먹는 데 여념이 없다.
이승환 씨가 정신이상 증세를 보이기 시작한 것은 3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렸을 때는 온순하고 총명하여 공부도 잘했습니다. 원하던 대학에 떨어지고 재수를 하게 되었는데, 어느 날 옆집 아이가 떠든다고 유리창을 깨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때부터 조금씩 이상했던 것 같아요. 당시에는 공부하느라 힘들어서 그렇겠거니, 조금 지나면 괜찮아지려니 했는데, 이렇게까지 증세가 악화될 줄은 몰랐습니다. 초기에만 제대로 치료를 해줬어도 괜찮았을 텐데, 제가 무식해서 아들을 저 지경으로 만들어놨습니다.”
이승환 씨는 점점 밤잠도 못 자고 행동이 과격해지더니, 차츰 바깥세상을 두려워하고 사람들을 피했다. 알게 모르게 병세가 심해지는 가운데, 대학입시 재수에 실패하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 시험 결과는 합격이었다. 동사무소에 발령되어 출근을 하게 되었는데, 문제가 생겼다.
동사무소로부터 아들이 이상하다는 연락을 받고 가보니, 멍하니 의자에 앉아 일은 하지 않고 딴 짓만 하고 있었다. 몇 번 주의를 줬더니 다음에는 출근을 하지 않으려고 했다. 억지로 동사무소로 들여보냈지만 소용이 없었다. 안절부절 못하다가 근처 공원으로 도망을 가곤 했다. 결국 한 달만에 퇴직하게 되었다. 이후부터 병의 심각성을 알고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았지만, 치료시기를 놓친 것일까, 병세는 전혀 호전되지 않았다.
할머니는 이승환 씨를 사생아로 낳았다. 이후 첩으로 들어가 남매를 낳았으나 곧 버림받고, 삼남매를 혼자 힘으로 키웠다. 행상이며, 파출부, 식당일 등 갖은 고생을 다했다. 억척스럽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가 없었다. 옷감 장사를 하면서는 돈도 조금씩 벌기 시작했다. 그러나 밤낮으로 바쁘게 일하느라 아이들에게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고맙게도 큰아들이 두 동생을 잘 돌보고 공부도 잘해 늘 든든했다. 그러던 큰아들이 정신을 놓아버렸으니, 억장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어떻게든 이 놈의 병을 고쳐보려고 무진장 애를 썼습니다. 있는 돈을 다 끌어모아 몇 개월씩 수차례 정신병원에 입원도 시켜봤는데, 어찌된 게 차도는커녕 더 나빠지는 것 같더라구요. 지금은 정신뿐 아니라 온몸이 성하질 않아요. 치매가 와서 조금 전에 밥을 먹었어도 먹은 줄 모르고, 다리에 힘이 없어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데다, 심지어 대소변도 못 가려 기저귀를 차고 있습니다. 30여 년을 한시도 안 떨어지고 열심히 고쳐줬는데, 안 되네요, 죽어도 안 되네요.”
차분히 말씀을 하시던 할머니께서, 설움을 이기지 못하고 갑자기 참았던 울음을 목 놓아 토해내신다. 할머니 옆에선 아무 것도 모르는 이승환 씨가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로 쉴새없이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을 뿐이다. 어디 눈을 둘 데 없어 창 밖을 보니, 여름 한낮 세상은 그저 말없이 눈부시게 평화로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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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이승환 씨는 폐에 고름이 차는 폐농양으로 20일간 병원에 입원하여 수술 및 치료를 받았습니다. 의료보호 1종이라 기본적인 의료혜택은 받을 수 있지만, 정신질환자라는 특수 상황으로 인해 1인실을 써야 하는 등 부대비용이 많이 들어 280만원을 부담해야 합니다. 정부보조금 40여 만원으로 한 달을 빠듯하게 나야 하는 처지에 병원비를 갚아나갈 일이 막막합니다.
이숙자 할머니의 딸(47세)은 남편의 계속되는 사업실패로 현재 채권자들에게 쫓긴 채 경기도 안산에서 소작농으로 일하고 있으며, 10여 년 전 돈을 벌겠다며 미국으로 출국한 작은아들(42세)은 소식이 끊긴 지 오래입니다.
“하루가 다르게 아들을 보살피는 것이 힘에 부칩니다. 이대로 내가 먼저 세상을 떠난다면, 누가 저 불쌍한 생명을 거둬먹이겠습니까. 솔직히 해서는 안 될 말이지만 아들의 자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목을 조르고 함께 저 세상으로 가고 싶은 생각뿐입니다.”
할머니 모자에게 어떤 희망도 없어 보입니다. 한 가닥이나마 할머니께서 의지할 수 있는 희망의 싹을 틔울 수 있도록, 불자 여러분께서 희망의 씨앗이 되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