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믿고 섬길 수 있는 이유

지혜의 향기/고마운 사람

2007-01-23     관리자

고마운 사람들이 너무 많다. 가깝게는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부터 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언니와 오빠, 진솔하게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들, 끌어주시고 밀어주시는 직장 동료들, 소중한 가르침을 주셨던 은사님들, 매일매일 삶과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환자와 보호자들….
지금껏 나에게 고마움을 주신 너무나 많은 사람들 중 꼭 누군가를 꼽아서 이 지면에 소개하자면, 이렇게밖에는 감사 인사를 전할 수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는 건 어떨까 싶다. 다른 사람들은 앞으로 내가 살아가는 동안 조금이나마 은혜를 갚을 수 있겠지만, 이제 소개하려는 사람들은 연락이 닿을 길이 전혀 없어 추억으로만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2002년 겨울, 인도 캘커타에서 만났던 이름 모를 아주머니와 언니들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방학을 맞아 떠난 인도 배낭여행 중 나는 자원봉사를 하기 위해 일행과 떨어져 혼자서 캘커타로 갔다가 크게 아팠었다. 여행의 피로가 쌓인 데다 바짝 긴장한 채 15시간 가까운 장거리 이동을 해서 그런지, 숙소를 잡고 짐을 풀자마자 열이 오르고 기운이 없어 꼼짝할 수가 없었다. 낯선 여행지에서 일행도 없이 혼자서 아프니까 서러운 마음에 눈물만 나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할 용기가 나질 않아, 꼬박 하루를 낡은 침대만 의지한 채 누워 있었다.
그러자 같은 방에 있던 분들께서 인사조차 하지 못해 누구인지도 모르는 나를 정성껏 돌보아 주셨다. 옆 침대를 쓰시던 아주머니께서는 미리 도움을 좀 청하지 혼자서 앓았냐고 안타까워하시며 비상식량으로 아껴두셨던 누룽지를 꺼내어 죽을 끓여 주셨다. 또 건너편 침대를 썼던 언니들은 근처 상점에서 꿀을 사와 꿀물을 타주고 약을 나누어 주었다. 자기 자신만 챙기기에도 힘든 여행 중에 낯모르는 나를 위해 베풀어주신 그 분들의 호의와 정성에 나는 가슴 깊이 감동했고, 덕분에 빨리 기운을 차릴 수 있었다.
아쉽게도 그 분들은 내가 아프던 중에 다음 일정을 위해 떠나셔서 통성명은 물론 감사의 말도 전하지 못한 채 헤어졌다. 그래서 그 분들의 얼굴과 옷차림에 대한 어렴풋한 인상밖에는 기억이 나질 않지만, 그 따뜻했던 온기만은 아직도 너무나 생생하고 아련하다. 그리고 이 짧은 만남은 내가 사회복지사라는 길을 선택하게 된 계기 중의 하나가 되기도 했다.
사회복지사는 항상 사람을 만나야 하는 일이기에 사람에 대한 신뢰와 사랑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그 분들은 나에게 바로 그것을 가르쳐주셨기 때문이다. 또 지금까지도 그리운 추억으로 남아 일로 인해 지치고 힘든 순간마다 다시금 용기를 낼 수 있게 해주며, 사람을 믿고 섬길 수 있는 이유가 되어준다.
아마도 그 분들은 그 때의 나를 기억하지 못하실 테고 다시 만나기도 어렵겠지만, 이 글을 통해서라도 그 분들께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그리고 나 또한 누군가의 가슴에 따뜻함으로 남을 수 있도록 노력하는 삶을 살겠다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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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정|이화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한림대학교성심병원 사회사업과에서 의료사회복지사로 근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