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게 늙는 법

결혼.가정.행복의 장

2007-07-05     관리자

 얼마전 타계한 한학자 k씨는 돌아가시기 얼마전 자신의 뜻이 보도된 한 신문기사를 읽고 또 읽으면서 '이제는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했다는 신문보도가 있었다. 겉으로 보도된 내용도 그러려니와 실제 생활도 한결 같았다고 하니 신체적인 불편에도 불구하고 정말 곱게 늙으셨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분이 신체적인 건강까지 겸해 있었다면 정말 곱게 늙는 완벽한 표본이 아니었을까도 싶다.

 인간의 욕구는 곱게 늙는데 있는 게 아니다. 사람은 나서 늙고 병들고 그래서 세상을 하직하는 만고의 진리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나 자신에게만은 닥치지 않을 타인의 이야기로만 착각하고 산다. 이런 착각은 어느땐가는 모두 예외없이 부서지는 것이지만 이 착각 속에 사는한 인간의 욕구는 곱게 늙는 게 아니라 불로장생하는 데 있다. 늙지 않으려고 발버둥도 허망한데 죽지 않으려는 망상에 매어 달리니 더 허망하지 않을 수 없다.

 불타도 깨달음에 이르기 전 첫번째로 제기된 의문이 왜 인간은 나서 병들고 늙고 죽어가는 것일까 하는 것이었다. 우리의 입에 흔히 오르내리는 진시황도 자신의 불로장생욕구를 채우기 위해 그가 이 세상에서 할수 있는 모든 발버둥을 쳐보지만 그것이 허사임을 누가 모르랴.

 사람들은 한순간 행복한 상황을 '이대로 시간이 영원히 멈추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행복한 순간을 평생 간직하고 싶어서일 게다.

 사람들은 현재의 정력적이고 생산적인 힘과 노인들의 경험적인 지혜, 어린이의 순박한 심성 이런 모든 것들을 갖추는 한순간을 영원히 갖고 싶다고도 말한다.

 사람들은 또 노인을 보면서 나는 늙으면 저렇게는 되지 말아야지... 하는 말도 더러 내뱉는다. 그렇게 될까봐 불안하다고도 말한다.

 그러나 이런 모든 말들이 우리들의 소망일 뿐 그렇게 되어지질 못하니 안타까울 뿐이다. 현대의학은 노년기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왜 사람은 늙는가'하는 명제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세포가 늙는 생물학 적기제도 아직은 모르는 입장에, 늙지 않도록 막는 방법을 찾지 못한 것은 당연하다. 어쩌면 조물주가 사람들에게 모든 지식과 지혜는 주었지만 이 점, 즉 늙지 않는 비법을 찾는 것만은 미궁속에 감추어 두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한계를 인식하는 사람들의 소망으로 현실적인 것은 불로장생이 아니라 곱게 늙는 것이다.

 늙고 병들면 사람은 추해진다. 주관적으로는 우울하고 외롭고 당혹스럽다. 이런 인간의 발달 단계를 어떻게 하면 곱게 경과 할 수 있을까 하는 소망은 한번쯤 해볼만한 생각이다. 곱게 늙는다는 게 무엇일까?

 첫째 곱게 늙는다는 것은 나이답다는 뜻일 게다. 어린이는 어린이답고, 청년은 청년다워야 하듯 노인은 노인다워야 한다. 나이답다는 말은 나이에 적합한 사고.행동.감정을 지니고 있다는 말과도 통한다. 노인답다는 말은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관조하는 능력과 이를 서서히 정리해 보는 자세가 노인답다고 하겠다.

 둘째로는 품위가 유지되어야 한다. 노인의 걸맞는 품위가 유지되도록 주관적으로나 객관적인 노력이 앞서야 한다. 자신이 자신을 아무렇게나 취급하고 주변에서 자신을 비하시킨다면 노인에 걸맞는 품위를 유지하지 못할 것이다.

 세번째로는 퇴행이 적어야 한다. 늙으면 되레 어린이가 된다잖는가. 인생, 무상, 죽음을 인식하면서 사람들은 대개 무력감에 빠진다. 무력감은 어린이처럼 스스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사람들이 취하는 반응이다. 퇴행을 통해 그나마 지니는 자기 방어가 된다.

 네번째로도 뭐니뭐니 해도 신체.정신적인 건강이 유지되어야 한다. 일생을 무병하게 장수하다 돌아가신 한 노인을 의학적으로 탐색해봤더니 여러 가지 병을 지니고 있었다는 연구도 있다. 자각증세가 없었을 뿐 병을 지니고 있었단다. 따지자면 늙는것 자체가 자연현상이긴 하지만 건강한 것도 또한 아니다.

 다섯번째로도 타인의 도움이 없어야 한다. 상호의존적 관계에 부담을 줄 만큼 타인에의 의존도가 높다면 그것은 곱게 늙는게 못될 것이다. 의존은 심리적인 것도 있겠지만 건강이 여의치 못하다면 부득이 신세를 질수밖에 없다.

 여섯번째로는 노인 개인의 생각이 다소 미래지향적이고 낙천적이며 생산적인 관심이 있어야 한다. 노인단계가 물론 이런 관심들이 줄어드는 시기이지만 근본적으로 그런 자세를 지니는 사람이 그렇지 ㅇ낳은 사람에 비해 곱게 늙었다는 판단을 받게 된다. 노익장이란 말이 있지 않은가.

 일곱번째로는 희노애락을 스스로 통제 조절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내 마음을 내가 주인이 되어 어루만지는 능력이 있다면 그는 이미 곱게 늙는 사람이다.

 여덟번째로는 이타적인 생각과 자세를 지녀야 한다. 늙으면 되레 어린이가 된다는 말은 나이들수록 이기적인 생각과 행동에 빠진다는 말로도 바꿀 수 있다. 어릴 때 이기적인 것을 젊었을 때 성장 발달하면서 차차 이타적으로 되었다가 늙으면서 다시 이기적으로 변한다.

 이타적이고 봉사적인 사고와 행동체계를 유지할 수 있다면 정말 곱게 늙는 것이다.

 아홉번째로는 한계인식이다. 자연의 순리처럼 인생의 성장발달단계의 특성을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자세가 곱게 늙는 거다. 인간으로서도 어떻게 해 볼 수없는 것도 있구나 하는 인식이다.

 흔히 이런 한계에 다다르면 사람들은 극단적으로 퇴행하거나 반대로 성인 군자처럼 깨달음에 이르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퇴행하면 자신의 추한 면모가, 깨달으면 곱게 늙는 성숙함이 나타난다.

 마지막으로는 현실적응능력을 지녀야 한다. 물론 젊었을 때 같지 않은 적응능력이긴 하지만 새로운 환경에 부단히 접해 나가는 자세가 필요하다. 현실적응능력이 모자라니까 노인들은 뒷전으로 물러 앉는다.

 곱게 늙는 것이 어떤 것일까 하고 그냥 정리해 보았다. 반드시 그래야 된다는 논리보다 상대적인 개념으로 그렇지 못한 노인에 비해 그런 노인이 보다 곱게 늙은 것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라 상대적인 기준이 된다는 뜻이고 이런 기준에 한 가지 더하여 종교적인 심성이 성숙한다면 금상첨화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생각하면 이 또한 우리의 소망일뿐 대개의 노인은 곱게 늙지 못해 고통을 받게 된다. 나만 고통을 받을 뿐 아니라 장차 고통을 받을 다른 사람에게도 고통을 주게 된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런 것을 어떻게 하랴.

 우선 생물학적인 변화는 병이 아니더라도 노화 때문에 생기는 결과적인 현상을 곱게 늙도록두지 않는다. 노화에 더하여 신체적인 질병은 상대적으로 곱게 늙는 기준에 미달하게 만든다. 심리적인 변화도 아주 순수한 심리적인 변화가 아니라 노화라는 신체변화에 수반한 변화이기 때문에 더욱 복잡하다.

 "너희들도 내 나이만큼 늙어봐라."

 노인이 상황에 몰리면 한마디로 압축해서 표현하는 말이다. 옳은 말씀이다. 곱게 늙는 것은 확실히 복이다. 타고나는 복이다. 타고난 복을 일찍 잘 가꾼 사람은 그 복의 열매를 딸 것이다.

 지금 늙음의 문턱에 든 사람이 갑자기 곱게 늙고 싶다고 발버둥친데도 곱게 늙는 것이 아니고 보면 이 또한 어릴 때부터의 생활습관과 연관이 크다고 보겠다. 곱게 늙고 싶은 젊은 분을 위해 충고할 말이 있다면 지금부터 곱게 늙는 기준에 가까운 생활습관이 몸에 배도록 생활화해 보라는 말이다.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 그말을 당신도 당당히 할 수 있다면 당신은 무어래도 곱게 늙은거다.

             이 근후 / 이화여대 신경정신과 주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