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寺의 향기] 월출산 도갑사

고사의 향기/도선의 숨결이 머무는 곳 월출산 도갑사

2007-07-05     관리자

월출산(月出山) 구정봉(九井峰)이 창검을 들고 허공을 찌를 듯이 늘어섰는데 千塔을 움직인다. 어인 일인고/아니나 다를세라 달이 오르네.

 노산 이은상님은 조국강산에서 달이 올라 달빛이 비칠 때면 먼저 여기를 비춘다해서 월출산이라 했던가.

  전라남도 영암에 위치한 월출산은 호남으로서는 드물게 산세가 높고 넓은 지역이다. 천황봉 (809m)을 비롯하여 구정봉, 도갑봉 등이 인근의 영암, 강진, 장충 등을 굽어보고 있으며 산형(산형) 또한 설악산, 북한산 등과 흡사한 기암괴석이 주종을 이루고 있어 과연 국립공원으로서의 면모에 손색이 없는 산이다.

  이곳 월출산에 자리한 도갑사(道岬寺)의 창건은 도선(道詵)의 탄생설화와 함께 전한다.

  도선의 어머니 최씨(崔氏)가 겨울에 골짜기에서 빨래를 하는데 참외가 떠내려와 이를 먹고 잉태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이가 바로 도선이다.

  그러나 이목(耳目)이 두려워 그를 숲속에 버렸다 한다.

  비둘기들이 날라다 주는 먹이를 먹고 자란 도선은 인근 사찰의 주지스님에 의해 문수사(도갑사의 딴이름)에서 길러졌다.

  도선은 당에 들어가 벼슬과 국사의 칭호를 받고 문수사에 돌아와 새로 도갑사를 창건(서기880)하였다. 그후 도갑사를 떠나면서「내가 떠난 후 철모쓴 이가 불을 지를 것이다」고 하였다.

  전설대로 임진왜란과 6․25동란등 두차례에 걸쳐 철모쓴 이들이 불을 질러 사찰이 거의 소실되었다.

  다소 과장되기도 한 이 이야기는 구전으로 내려왔는데 여하튼 조선조 제 7대 세조 2년(1456) 신미(信眉)와 수미(守眉)가 소실된 사찰을 중건했다. 이어 ‘86년에 부임하신 현재의 주지 진만스님께서 국사전 신축을 비롯 도선국사 ․ 수미왕사 진영 보수 및 범종주조와 범종각을 건립하였으며 보제루(누각) 신축을 계획중에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이며 좌우 한칸씩에는 금강역사상이 안치되어 있다. 주심포 양식에 가장 가까우면서도 다포집 양식 수법을 혼용한 뚜렷한 유구(遺構)로 산문(山門) 건축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경내로 들어서면 정면으로 대웅전을 비롯 명부전, 국사전 등이 자리잡고 있고 미륵전에 모셔져 있는 석가여래좌상은 보물 제89호로 한 개의 돌위에 불상을 조각하고 광배를 조각한 것으로 층 높이 3m, 불상높이 2.2m에 달한다. 특히 도갑사엔 도선 수미비가 유명하다.

  매미소리, 산새소리로 귀가 멀고 아무리 뜨거운 햇빛일지라도 녹음으로 내리 녹을 것만 같은 성하(盛夏)의 산길을 오르다 보면 국보 50호인 해탈문에 들어서게 된다.

  해탈문은 50년 중수공사 도중 발견된 상량문에 의하여 1457년 신미 ․ 수미 두 사람에 의해 중수 되었음이 밝혀졌다.

  돌기단위에 세운 소규모의 문이지만 그 구조가 기묘하여 유례없는 옛 건물이다.

  높이 4.33m의 비석엔 비문으로 「월출산하도갑사 도선국사 수미선사 비명」이라 새겨져 있다. 비석 좌우 옆면에는 운용(雲龍)이 조각되어 있다.

  특별히 불교계에 바라는 바나 불교인들에게 들려 주고픈 말씀을 묻는 탐방자에게 머쩍게 웃으시며 객(客)들 점심공양에만 신경을 쓰시는 주지스님을 뵈면서 풋풋한 고향의 마음을 읽는다.

  배웅이라도 하듯 때마침 쏟아놓고 가버린 소나기로 산사는 더없이 깊은 정적에 쌓인다.

佛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