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의 친구

남지심 연작소설

2007-07-02     관리자

   “기도 안해도 괜찮죠?”
   점심식사가 다 나왔을 때 조여사가 재치있게 농을 했다
   그러자 사람들은 조용히 성호를 긋거나 눈을 감으면서 고개를 숙였다.
   강여사도 그들처럼 고개를 숙이고 마음속으로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그러면서도 미묘한 이질감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강여사는 이질감을 느끼는 자신의 감정이 잘못된 것이라는건 잘알고 있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이성적인 분별이고 감정은 그렇지가 않았다.
   사실 기도를 드림에 있어 성호를 긋거나 고개를 숙이거나 합장을 하는게 무엇이 다르겠는가?
   그런데도 다르게 느껴지고 있으니 참으로 어리석기 짝이없는 중생심이란.
   강여사는 한달에 한번정도 어떤 모임에 나가고 있었다. 그 모임은 회원이 20명 정도 되는데 그들중에 카톨릭신자가 14명 개신교신자가 3명 조여사처럼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이 2명 그리고 불교신자는 강여사 혼자였다.
   강여사는 그 모임에 나가면 언제나 묘한 외로움에 젖어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종교라는 것이 자신을 진리쪽으로 귀의시켜 가는 방편이라면 어떤 방편을 취하든 같은 목적지에 도달하기만 하면 될텐데 마음은 그렇지 않으니 이것 역시 유유상종의 어찌해 볼 수 없는 중생심일 것이다.
   아무튼 그날 강여사는 끝없는 중생심의 발동으로 혼자 외로워하고 혼자 괴로워 하다가 그들과 헤어져 거리로 나왔다.
   막상 거리로 나와도 허전한 감정은 가시지 않아 강여사는 조계사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조계사 앞에는 불교용품을 파는 가계들이 늘어서 있고 가계 안에서는 목탁소리 염불소리가 낭낭히 울려퍼지기 때문에 강여사는 시내에 나왔다가 허전해지면 늘 이 거리를 걷곤 했다. 고향마을에 들어선 것같은 친근감이 느껴져서 였다.
   제주은행 앞에 있는 건널목을 건너 온 강여사는 조계사 쪽으로 걸어가면서 혹시 ‘그 진기한 친구’가 나와 있지 않나 하고 유심히 거리를 살펴 보았다. 하지만 그녀가 찾고 있는 친구는 오늘도 눈에 띄지 않았다.
   강여사는 더욱 허전해지는 마음을 달래면서 골목도 기웃거려보고 가로수밑도 살펴보고 했지만 그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정말 어떻게 된 건가?’ 강여사는 불안한 마음으로 혼자 이렇게 중얼거렸다. 그러자 마음은 더욱 불안해졌다.
   어떻게 된건가? 하는 궁금증속엔 혹시 죽은건 아닌가? 하는 의문이 깃들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의문에 사로잡히자 강여사 머릿속엔 밤송이같은 머리로 히죽이 웃으면서 다가오는 그녀의 영상이 떠올랐다. 그러면서 그녀가 한없이 보고싶어졌다.
   이 세상에는 완벽한 자유인이 있다면 그건 아마도 거지일 것이다.
   거지는 소유로부터 자유롭고 명예로부터 자유로우며, 욕망으로부터도 자유롭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들이 소유와 명예와 욕망의 덫에 걸려 허우적이고 있는데 이런 덫에 아예 걸려들지 않았으니 그들은 얼마나 자유로우랴.
   강여사는 가끔 시내에 나갔다가 시간이 남거나 오늘처럼 마음이 허전해지면 조계사 쪽으로 발길을 돌렸고 그러면 예외없이 거기서 진기한 친구 하나를 만났다.
   그녀와의 만남은 10년을 훨씬 넘었지만 강여사는 아직도 그녀의 성도 이름도 나이도 모른다.
   이름도 몰라요, 성도 몰라요 하는 유행가 가사처럼 그녀 하고는 애시당초 이름이나 성을 알 필요가 없는 관계였기 때문이다.
   강여사는 거리에서 그녀를 만나면 눈인사로 아는체를 했고 별일이 없으면 다방에 가서 커피 한잔과 담배 한갑을 사주고 얘기를 나눴다.
   커피와 담배를 사주는 쪽은 언제나 강여사였고 그쪽은 그것을 받기만 하면 됐다. 이 일은 불문율 이상의 불문율이었기 때문에 두사람은 어느쪽도 그 사실을 이상하게 생각지 않았다.
   십수년전 강여사는 처음으로 불교에 관심을 가지고 조계사 주위를 서성이고 있을 때 그녀도 강여사만큼 할 일 없는 얼굴로 조계사 주위를 서성이고 있었다.
   그녀는 때가 꾀죄죄한 몸에 몸만큼이나 때가 꽤죄죄한 옷을 걸치고 밤송이 같이 헝클어진 머리로 조계사 앞길을 오락가락하고 있었다.
   뒷짐을 지고 꾸부정한 모습으로 100m 정도의 거리를 하루종일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그녀가 하도 진기하게 느껴져서 강여사는 그녀 앞으로 다가가 이야기를 하자고 제안을 했다.
   “저하고 얘기를 하실래요.”
   강여사가 이렇게 청을 하자,
   “시간이 없어서 안되겠는데요.”
   그녀는 일언지하에 거절을 했다.
   하는 일 없이 하루종일 오락가락 하면서 시간이 없다니.....
   강여사는 기가 막혔지만 거절을 하는데야 어쩌겠는가.
   그날 강여사는 보기좋게 딱지를 맞고 조계사로 들어갔고, 보기좋게 딱지를 놓은 그녀는 100m 거리를 일정한 걸음걸이로 오락가락 하면서 바쁜 시간을 보냈다.
   이러기를 서너번.
   어느날 그녀는 선심쓰듯 강여사의 청을 들어주었고 강여사는 그녀와 기상천외의 대화를 나눌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부풀어 다방으로 갔다.
   “무슨 차를 드시겠어요?”
   강여사가 정중하게 묻자.
   “커피주세요. 그리고 담배도 한갑요.”
   그녀는 마치 프로그램에 있는 식순을 진행시키듯 커피와 함께 담배도 공양 받아야 한다는 얼굴로 말했다.
   “커피 두잔하고 담배 한갑 갖다 주세요.”
   강여사가 쟁반을 들고 서있는 종업원을 쳐다보며 주문하자 종업원은 묘한 표정을 지으며 돌아섰다.
   정상으로 보이는 여자와 비정상으로 보이는 여자가 다방에 온 것도 이상한데 거기에다 비정상으로 보이는 여자의 태도가 너무도 당당하니 그녀의 눈에는 이상하게 보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상하게 보는 것은 종업원만이 아니었다. 다방에 있던 손님들도 희한한 구경거리를 바라보듯 두사람을 힐끔 힐끔 쳐다 봤다.
   남이야 이상하게 보던 말던 강여사는 ‘진기한 친구’한테 커피 한잔과 담배 한갑을 공양올리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기상천외의 이야기를 들려줄거라고 믿었던 강여사의 기대와는 달리 그녀는 지극히 상식적이고 정확한 단어들만을 골라가며 천천히 느릿느릿 대화를 이끌어갔다.
   그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강여사는 속으로 몹시 실망하고 있었다. 그녀는 강여사 보다도 더 상식적이고 보편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날 그 친구와 나눈 대화 가운데 강여사 기억속에 남아 있는 말은, 사람은 자신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는지는 예측할 수 없다는 것, 자기가 가장 귀하게 여기는 것은 자유이기 때문에 자기는 자유로운 삶을 택했다는 것, 자기는 자신이 택한 삶을 지키기 위해 주위의 모든 압력과 투쟁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결혼한 오빠한테 얹혀 있는데 자기가 집안 일을 도와주지 않기 때문에 올케한테 미안하다는 것,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그러면서 헤어질 때는 듬성 듬성 빠진 누런 이로 환하게 웃으며
   “제 얘기가 싱겁지는 않으셨어요?” 하고 물었다.
   싱겁다고 하면 마치 짠 간이라도 더 쳐줄 것처럼.
   이렇게 해서 안면을 튼 사이이기 때문에 강여사는 그후로도 가끔 그녀와 같이 다방에 가서 얘기를 나눴다.
   이야기의 내용은 지극히 논리정연한 상식적인 것이었는데 이따금씩은 엉뚱한 말도 해서 강여사를 놀라게도 해주고 즐겁게도 해줬다.
   어느날 그녀는 강여사를 만나자 자기는 처음에는 부처님만 사랑했는데 이제는 예수와도 사랑하게 돼서 고민이라고 하면서 듬성듬성 빠진 이로 씩 웃었다. 고민이라고는 했지만 그녀는 사랑하는 애인을 양쪽에 거느리고 있는 여자같이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또 어떤날은 핸섬보이가 자꾸 맥주를 마시자고 해서 어젯밤은 그 핸섬보이와 맥주를 마셨다고 하면서 까만 때로 절은 얼굴을 빨갛게 물들였다. 핸섬보이와 술을 마셨는지는 모르지만 실제로 그녀의 입에선 전날에 마신 술냄새가 확확 풍겨왔다.
   그리고 또 어떤때는 자기는 지금 원고를 쓰고 있는데 글이 너무너무 잘써져서 고민이라고 했다. 처음에는 생각했던 것도 못쓸줄 알았는데 막상 써보니 생각하지 않았던 것까지 너무 너무 이쁘게 잘 써진다는 것이었다.
   그녀가 부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사랑하는 동안, 그리고 핸섬보이와 맥주를 마시고 생각했던 글을 이쁘게 잘쓰는 동안 세월은 흘러서 10년이 훨씬 지났고, 그녀의 모습은 세월과 더불어 더욱 남루해지고 그로테스크해져 갔다.
   다리와 팔에는 부스름이 더덕더덕 나고, 옷과 몸은 꾀죄죄한 때로 절어 있었고 듬성듬성 남아있던 이빨마저 다 빠져서 그녀가,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불교학생운동을 했던 인텔리여성이라고는 아무도 믿지 않게 되었다.
   강여사가 가끔 조계사 쪽으로 나가면 거의 예외없이 골목입구나 가로수밑에 앉아 있던 그녀가 잇몸만 남은 입으로 활짝 웃으며 다가와서는 담배한갑을 사게 천원만 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처음에는 주는 것만 받았는데 나중에는 달라고 먼저 손을 내밀게 되었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두사람의 관계가 그만큼 친숙해진 때문인지 아니면 남으로부터 얻는 일에 그녀가 익숙해진 때문인지 그건 강여사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지난 가을 강여사가 조계사로 갔을 때 그녀는 가계앞에 앉아 있다가 히죽이 웃으며 일어났다. 그날도 강여사는 왠지 마음이 허전했기 때문에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담배 한갑을 사주고 그녀와 함께 조계사로 갔다.
   그날 그녀는 사는게 너무 힘이 들어 철학을 할 수 없다고 하면서 이제는 고향으로 돌아가 편히 쉬고 싶다고 했다. 강여사는 그녀에게서 죽음의 그림자를 보았고 헤어질 때는 더욱 마음이 허전해져서 3천원을 그녀 손에 쥐어주고 돌아섰다. 그것이 그녀와의 마지막 상봉이었다.
   강여사는 조계사쪽으로 걸어가면서 꾸부정한 어깨로 뒷짐을 지고 오락가락하던 그녀의 모습을 떠올리고 있었다.
   가끔은 성가시기도 하고 가끔은 귀찮기도 했는데 오늘은 그녀가 한없이 그리워졌다. 그녀는 강여사가 알고 있는 사람중에서 가장 자유인이었고 강여사는 지금 그 자유인을 그리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佛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