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는 무엇이며 어떻게 성취되는가

불교 신행인을 위하여/기도

2007-07-02     관리자


Q  저는 매일 아침 부처님전에 기도하면서도 기도에 대한 확신을 갖고 있지 못한 불자입니다. 스님, 기도란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리고 기도를 하면 과연 소원이 성취되는지요. 더불어 불교의 궁극목적인 깨달음과 기도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기도는 현세 이익적인 소망성취의 좁은 의미의 기도와 청정자성의 실현 즉 깨달음성취의 넓은 의미의 기도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흔히들 현세 이익적인 소망성취의 좁은 의미의 기도만을 생각하고 기도를 소원성취의 기복적인 방법으로만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 그런 의미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기도는 참다운 삶의 실현의 길이며 나의 영원한 참생명ㅡ 부처님무량공덕생명과 하나 되는 길입니다. 다시 말하면 기도는 나의 참마음ㅡ 청정자성의 본자구족(本自俱足)한 대지혜와 자비, 무량한 공덕과 복덕의 문을 여는 창조적인 행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을 기도라는 신앙적인 뉘앙스를 통해 표현하면 이런 내용이 되겠습니다.
   부처님은 언제 어디에나 영원히 항상 계시며, 모든 중생에게 끝없는 지혜로, 은덕으로, 무한한 힘으로, 복으로, 불가사의한 위덕으로 끊임없이 베풀어주시며 우리들 중생을 성숙시켜 주시고 계십니다.
   그런데 중생들은 이와같은 부처님ㅡ청정자성의 깨달음을 등지고 육체를 자기 몸으로 삼고 육체에 붙어있는 인식기관의 분별작용을 자기 마음으로 삼아 이러한 몸과 마음을 자기라고 고집하는 어리석음이 뿌리깊게 응어리져 있으므로하여 이 미망의 자기를 중심으로 온갖 탐욕과 애착과 집착을 일으킵니다. 이것을 탐심(貪心)이라 합니다. 그리고는 자기뜻에 거슬리고 반(反)하는 대상과 상태에 대해서 불평불만, 짜증, 분노, 미움, 원망, 증오, 대립감정 등을 일으킵니다. 이것을 진심(瞋心)이라 합니다. 그리고 자아에 대한 착각을 치심(癡心)이라 합니다. 우리들 중생은 이 탐심 진심 치심의 삼독으로 너무 깊게 물들어 있어 몸과 말과 생각을 통해 잘못된 행위를 끊임없이 행하고 있습니다. 그 까닭으로 큰 지혜도 자비도 큰 복덕도 없이, 큰 능력도 발휘하지 못하고 가지가지 고통과 재난을 겪으며 부자유와 속박속에서 괴롭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도를 통해 부처님의 세계ㅡ 청정자성과 나의 의식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탐진치 삼독의 구름을 녹이고, 집착과 애착의 응어리를 없애고, 자기중심적인 장벽을 무너뜨려 부처님의 한량없는 지혜와 자비, 무한위덕, 한없는 복덕이 충만되도록 하여 지혜롭고 자비롭게, 자유롭고 평화롭게, 아름답고 복되게 살아갈수 있는 것입니다.

   소망성취의 원리와 올바른 기도
   그러면 기도를하면 왜 그렇게 일체가 성취되고 소망이 이루어지는것이며 어떻게 해야 올바른 기도가 되는것인지 생각해보기로 합시다.
   위에서도 소망성취의 원리가 간접적으로 시사된 바 있지만 요점을 간추려 말하자면 이렇습니다. 모든 존재의 실질은 형상이나 물질이 아니라 일심(一心)입니다. 이 일심은 진리이며 부처님의 무량공덕생명입니다. 만법을 성취시키는 근원이고 걸림없는 위덕인 마하반야바라밀입니다. 그런데 이 일심을 쓰는 자는 누구입니까? 다름아닌 바로 나자신입니다. 문제는 내가 이 일심ㅡ부처님 마음(佛性)을 올바로 쓰고 있느냐, 다시말해 부처님 마음에 맞추어 내 마음을 잘쓰고 있느냐 그렇지 못하고 있느냐가 관건입니다.
   이 부처님 마음에 맞추어 내 마음을 움직이면 모든 것이 그에 맞게 응하게 됩니다. 이와같이 부처님 마음의 위덕이 나의 의식, 나의 현실위로 온전하게 나타나게 하는 기도를 통하여 일체가 성취되고 우리들의 현실적인 소망을 포함한 바른소원이 모두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다만 거기에는 기도하는 자의 마음상태에 따라 크게 이루어지기도 하고 적게 이루어지기도 하고 빨리 또는 늦게 이루어지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기도하여 성취한다고 하는 것은 밖으로 기구하여 얻는 것이 아니라 나의 참마음과 하나이신 부처님께서 이미 주신ㅡ우리의 청정자성에 본래부터 원만구족한 무한공능, 무량공덕, 진리본성의 힘을 믿고 발견하여 내어쓰는데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몸으로 하는 행위, 입으로 하는 행위, 마음으로 하는 행위[身口意 三業]를 맑고 바르게 하며 올바른 기도를 통하여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부처님께서 이미 주신 본래의 것을 유감없이 발휘하도록 하여야 하겠습니다.
   이상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기도는 내생명에 깃든 대지혜와 자비, 진정한 자유와 평화, 청정과 환희, 무량공덕의 부처님 광명을 실현하는 온전한 삶의 길이며 이와같은 목적을 이루는 삶의 종합예술(The art of Living)이라 할 수 있고 여래의 한량없는 공덕의 문을 여는 열쇠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도의 7요소
   이러한 기도를 바르고 온전하게 성취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7요소를 갖추어야 합니다.
   첫째, 믿는 마음(信心)입니다.
   부처님에 대한 깊은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부처님은 영원하시고 청정하시고 무한하십니다. 부처님은 대지혜와 무량한 공덕과 걸림없는 위신력과 무한 창조위덕을 원만하게 구족하셨습니다. 이 신묘하고 불가사의한 부처님 광명ㆍ부처님공덕은 미래세가 다하도록 계속해서 말한다해도 다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들 생명속에 본래부터 이와같은 부처님의 공덕이 갖추어져 있습니다. 이렇듯 부처님은 진리인채로 계시며 일체세계 일체중생을 여의지 않으십니다. 부처님은 끝없이 대자비심을 일으키시어 중생을 깨우치고 인도하고 성숙시키십니다. 중생을 벌한다거나 싫어하시는 바없이 중생의 사정을 자비로써 살피시고 한없이 너그러우시면서 중생의 안락과 진리성 회복만을 도모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부처님을 믿고 기도하면 반드시 성취된다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둘째, 부처님께 귀의하고 예경하고 찬탄하는 자기바침이 있어야 합니다.
   부처님은 내 생명의 근원이므로 부처님께 귀의하고 부처님이 나의 삶의 중심점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부처님을 예배하고 공경하는 예경행을 해야합니다. 예경이라는 것은 마음을 비우고 자기를 낮추고 상대방을 존경하고 공경하는 행입니다. 부처님을 예경하고 일체 성현을 예경하고 나아가 부모형제, 부부, 이웃 일체중생을 존중하고 예경해야 합니다. 일체중생은 실로 중생이 아니라 그 본면목은 불성이기 때문에 ‘부처님 예경은 중생예경, 중생예경은 부처님 예경’입니다.
   또한 찬탄행을 해야합니다. 부처님께서 한량없는 공덕을 갖추고 일체중생을 자비로 건지시니 부처님 공덕을 찬탄하는 것입니다. 일체 중생 또한 불성공덕을 갖추었으므로 부처님의 한량없는 공덕을 찬탄하듯이 부모형제, 부부, 이웃 등 일체중생이 지닌바 공덕을 찬탄해야 합니다.
   셋째, 감사한 마음입니다.
   부처님께서 지극하신 자비로 나를 감싸주시고 키워주고 계시며 부처님의 무량공덕이 나에게 갖추어 있음을 믿고 긍정하며 다행스런 마음을 가져 감사해야 합니다. 이 감사한 마음은 내 마음에 한없는 평화와 조화를 갖게 하고 부처님의 무량공덕을 내앞에 현출시키는 신묘한 힘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감사에는 한량없는 공덕이 따르게 되고 부처님의 은혜를 수용하게 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 감사하듯 일체중생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 세상은 원래 일심 하나의 부처님 대 생명이므로 진정 부처님의 은혜는 나를 둘러싸고 있는 가족 이웃등 모든 사람과 환경을 통해 나에게 흘러오는 것입니다. 나를 기쁘게 하고 나를 진리위에 키워주고 단련해주는 사람들이 바로 이분들입니다. 나에게 베풀어주기 때문에 감사하고, 나를 욕하고 꾸짖고 거슬려 나를 단련시켜 주므로 감사한분들입니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그 모든 사람과 환경에서 진정 감사 할 줄 안다는 것이 나의 참 생명에 눈뜨고 참 생명의 빛으로 살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감사한 마음일때 대립할 수 없고 미워할 수 없습니다. 감사한 마음을 갖지 못하고 대립하고 화목하지 못한다면 부처님 은혜를 등지고 마는 것이어서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넷째, 널리 공양하고 보시를 행해야 합니다.
   아무리 예경 찬탄 감사한다 하더라도 마음에 있을 뿐, 실천적 행동이 따르지 않으면 그것은 관념적인 것이 되고 맙니다. 기도는 관념이 아니라 실천입니다. 그러므로 부처님께 감사하고 부처님의 무한공덕을 받고자 한다면 보시공양은 필수적입니다. 보시공양으로 탐착과 이기적 응어리를 녹여 부처님 공덕세계와 하나가 되어가는 것입니다. 말로는 감사 찬탄하고 보시공양은 아까워서 못한다면 그것은 탐착 애착 이기적인 마음으로 복덕의 문을 닫게 합니다. 그 결과로 가난과 부자유의 제한이 따릅니다. 항상 탐심을 버리고 공양하고 보시하여 복덕의 문을 열고 공덕의 물줄기를 틔어야합니다. 특히 부처님 법이 널리 퍼지도록 법공양에 힘써야 합니다.
   다섯째 참회하며 맑고 밝은 마음을 갖는 일입니다.
   재난, 고통, 불행의 삶을 살게 되는 것은 자기의 마음을 모르는 무지의 탓으로 죄를 짓고 잘못을 저지르고 악한 짓을 행한 결과입니다. 그러므로 참회하여 죄업을 소멸시켜야 합니다. 나의 가슴을 열고 진실하고 절실하게 부처님께 참회할 때 밝은 빛앞에 어둠이 사라지듯이 나의 죄업이 소멸됩니다. 다시 범하지 않고 맑고 바른 신구의(身口意) 삼업을 가질 때 그 마음은 본래대로 깨끗하여 청정공덕이 넘쳐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회하고 항상 맑고 밝은 마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여섯째, 일심정근입니다.
   진실하고 간절하게 일심으로 정근해야 합니다. 일체 잡념, 일체 현상에 머무름이 없이 일심으로 정근하므로써 미혹의 구름ㆍ사념의 구름이 사라지고 청정본성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일심으로 정근하여 망념이 사라지면, 구름이 걷힐 때 푸른 하늘 빛나는 태양이 드러나듯이 부처님께서 이미 주신, 본래부터 청정자성에 원만구족되어있는 무량공덕이 훤출히 드러나 일체를 성취하게 되는 것입니다. 정근할때는 오직 일심으로 정근할 뿐, 일체의 생각, 일체의 현상에 머무름이 없이 오직 무념이 되도록 해야합니다. 핵심은 무념이 되도록 하는데 있는 것인데 진실하고도 간절하게 그리고 용맹스럽게 정근하는 것이 요긴합니다.
   일곱째, 원을 발하는 일입니다.
   원에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수 있는데 하나는 그때 그때의 소망ㆍ소원이고, 또 하나는 일체중생이 모두 불도를 이루고 불국토성취를 발원하는 큰 원입니다. 설사 일상의 작은 소망를 기원할 때도 궁극적 목표로 일체 중생이 불도를 이루고 불국토가 성취되기를 기원하는 큰원을 발해야 합니다. 자기자성을 밝히고 중생을 성숙시키며 사회와 국토에 진리의 질서를 심기 위하여 원을 세우고 부처님 법을 지키는 호법의 원을 세우고 맹세를 거듭하는데서 내마음은 무한히 확대되어 일심(一心)에 환귀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고 천수경 독경을 하고, 정근을 하고, 축원을 하는 의식을 갖게 되는데 천수경의 내용구성과 기도의식을 분석해 보면 이상의 기도 7요소가 그 안에 들어있음을 발견 할 수 있습니다.
   지면관계로 우선 이상으로 개괄적으로 말씀드리고 차후에 세부적으로 좀 더 상세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佛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