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절과 한국인

우리 얼 우리 문화

2007-07-01     관리자
 

 어느 민족에게나 그 민족 고유의 역사와 문화가 있고 그 역사와 문화는 그들의 땅 위에서 펼쳐진다. 땅은 바로 역사와 문화를 형성하는 바탕이며 그 땅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각과 의지를 쏟아붓는 현장이다.

아랍인들이 모래바람 부는 사막 속에서 그들만의 특이한 문화를 창조하고 에스키모인들이 끝없는 눈바람과 얼음 속에서 그들만의 풍속을 가지게 된 것은 그들이 살아가는 땅의 요구이며 적응이다. 어느 민족에게 있어서나 그 민족이 살고 있는 땅은 그 민족의 기질과 문화형태를 결정짓는 요소이며 우리 민족에 있어서도 이 또한 예외가 아니다.

  우리는 한국인이다.

아무리 햄버거와 스테이크를 즐겨먹어도 김치를 먹어야만 하는 한국인이며 에어컨 바람보다는 시원한 정자나무 그늘을 더욱 그리워하는, 이 땅의 풍토와 오랜 역사가 만들어낸 한국인이다.

  백두산을 주산으로 해서 바다를 가르며 뻗어내린 한반도, 그 산자락과 들판에서 몇천년을 살아온 우리 민족은 이 땅의 자연적 변화에 의하여 그 기질과 성품에 많은 변화가 있었고 또한 이 땅에 맞는 문화를 창조하게 되었다. 만약 우리 민족의 터전이 한반도가 아니고 열대 지방이나 한대지방이었다면 우리 민족의 기질과 성품, 문화 형태는 지금과는 색다르게 전개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터전이 갖는 자연적 변화, 사계절의 순환은 우리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을까?

국민학교때부터 다 배운 것이지만 우리의 터전은 온대지방에 위치하고 사계절이 분명한 한반도이다. 그러나 바로 그 점이 우리 민족에게 뛰어난 적응력, 끈질긴 생명력, 우수한 두뇌와 다양한 문화를 부여하였다는 것을 눈여겨보는 이는 많지않다.

  이 지구상에는 사계절이 있는 국가가 많이 있지만 우리처럼 3개월에 한번씩 계절이 바뀌는 국가는 그렇게 흔치 않다. 대개는 여름이 짧거나 겨울이 길며, 또는 습기가 많거나 하여 우리의 사계절과는 사뭇 다르다. 우리는 봄날의 따뜻함과 여름의 무더위, 가을의 청명함과 겨울의 한파를 매년 겪으며 이 땅에 붙박이로 살아왔고 바로 이 점이 오늘날의 한국인들에게 세계 어느곳에나 진출하여 일할 수 있는 뛰어난 체질적 적응력을 갖게 하여 준 중요한 요인이다. 우리는 아라비아의 뜨거운 사막지대에서도, 알래스카의 혹한지대에서도 살 수 있지만 아랍인이 알래스카에서 일하거나 알래스카인이 아라비아사막에 적응하기는 쉽지 않은 것이다.

  또한 우리의 터전은 산이 많고 들이 적은 까닭에 자연히 우리 민족은 산자락에 의지하여 집을 짓고 산에서 나는 산물과 들에서 가꾼 곡식에 의지하여 생활하게 되었다. 산에서 나는 산물이라고 해봐야 동물성보다는 식물성이 훨씬 많았고 따라서 우리 민족은 채식위주의 생활을 영위하게 되었다. 사계절의 변함없는 순환속에서 이러한 채식위주의 오랜 생활은 우리 민족이 잡초와 같은 끈질긴 생명력을 갖추는데 큰 도움이 되었으며 외세의 침략에도 꿋꿋히 견뎌낼 수 있는 원천이 되었다.

  몽고족의 세계정복에 대한 기록들을 읽어보면 이 점이 더욱 명확하다. 이 세계의 어느 민족도 몽고와의 전쟁을 시작하여 우리 민족처럼 38년이라는 장기적 항쟁을 한 민족은 하나도 없다. 그 당시에는 물론 불교라는 민족의 구심점이 있기도 하였지만 왕은 강화도로 피신하고 전 국토가 몽고병의 말발굽아래 짓밟히게 되자 우리 민족은 대다수가 산속으로 피신하여 풀뿌리와 나무 껍질로 연명하며 끈질기게 몽고군에 대항하였던 것이다.

 또한 임진왜란의 7년 전쟁속에서 전라도지역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토가 왜병에 유린되었지만 이를 견뎌낸 것은 거친 음식도 먹고 살아갈 수 있는 생명력 때문이었다.

  우리들 어버이의 세대, 지금 60세를 넘기신 분들을 산이나 들에 모시고 가보면 우리가 먹을 수 있는 너무나 많은 식물류를 찾아내시는 것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이는 우리가 어려었던 시절에 먹었던 음식으로 우리 민족의 질긴 생명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증이다. 우리 민족의 3개월에 한번씩 바뀌는 계절의 변화에 쉴 사이 없이 적응하여야만 하였다. 봄에는 씨를 뿌려야 했고 가을에는 거둬야 했으며 겨울에는 추위를 이기기 위하여 땔감을 마련해야만 하였다. 피할 수 없는 계절의 변화에 맞부딪치면서 자연스럽게 육체는 단련되고 지능은 발달하였다.

  사실 열대지방처럼 주어진 환경이 너무 편하여 의식주의 걱정이 적으면 게으름과 함께 지능의 발달이 늦고 반대로 북극지방처럼 주어진 환경이 너무 나쁘면 의식주를 해결하기에도 너무 바빠 문화의 발달이 늦어진다.

  이는 세계사를 이끌어 왔던 국가들이 대부분 온대지방에 위치하였다는 점만으로도 그 추정이 가능하다.

사계절이 뚜렷함으로 해서 갖게 된 또 하나의 장점은 문화의 다양성이다. 모두가 기억하겠지만 88서울 올림픽 개막식과 폐막식에서 보여준 우리 민족의 다양한 춤과 노래는 계절의 변화만큼이나 화려하고 변화무쌍하였다.

  여름철 관중들의 환호속에서 펼쳐지는 모래판 위의 박력 넘치는 씨름, 겨울철 막걸리 사발을 돌려 마시며 흥을 더해가는 윷놀이는 바로 계절속에 정착된 우리의 정겨운 민속놀이이다. 아마도 씨름을 겨울에 하고 윷놀이를 여름에 한다면,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정서는 어떠한 뒤바뀜을 발견해낼 것이다.

  그렇다면 사계절이 우리에게 부정적 기질을 심어준 것은 무엇일까?

 첫째는 쉽게 변화하는 것이다.

 둘째는 기다리지 못함이다.

  한국인이 어떠한 목표를 정해놓고 장기적으로 꾸준히 밀고 나가지 못하는 것은 사계절의 변화만큼이나 빠르다. 옛날의 중국인들이 ‘고려공사 삼일’ 이라고 하여 우리를 비웃은 것도 고려국의 정책은 너무 쉽게 바뀐다고 하여 붙여준 것이다.

  사실 신라와 고려에서 국교로 삼았던 불교를 하루아침에 버리고 유교를 정치의 이념으로 삼은 조선왕조의 정책을 보아도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단 우리 민족의 것으로 수용하였으면 나쁜 점은 고치고 개선하면 될 터인데 너무도 쉽게 새것을 받아들이고 헌 것을 버리는 점은 우리 민족의 단점이다.

  두 번째로 우리는 너무나 기다릴 줄을 모른다.

음식점에서 주문한 음식을 빨리 달라고 소리치는 사람은 우리 민족뿐 이라고 하지 않던가. 고속도로를 속성으로 완공해 놓고 그 고속도로를 다시 보수공사 하는 성급함이 없어지지 않으면 민족의 새로운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이 땅의 풍토와 문화는 바로 우리 자신이다. 이 땅의 풍토와 문화를 저급한 것인 양 판단하고 남의 것만을 최고선이라고 한다면 그는 이미 한국인이 아니다. 얼빠진 한국인을 어떻게 한국인이라고 부를 수 있을것인가!

  다시 말해서 우리 민족은 새로운 것을 빨리 받아들이되 옛 것을 버리지 않고 새 시대에 맞게 고쳐 쓰는 지혜와 장기적 안목으로 세월을 기다릴 줄 아는 느긋함만 함께 갖추게 된다면 세계사의 앞날을 열어가는 우수한 민족으로서 역사에 기록될 것이며 그렇게 하여야만 우리의 얼과 문화를 지켜가는 새로운 한국인의 모습을 정립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