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두 마음을 사르는 칼] 선禪과 칼

2017-02-08     박재현

 
선禪과 
 
소설 『칼의 노래』의 주인공은 이순신처럼 보인다. 하지만 어쩌면 이순신이 아니라 칼이 주인공인지도 모른다. 이순신의 칼만이 아니다. 전장의 장수를 불러들여 매를 치는 군왕의 칼, 셋째 아들 면葂을 살해한 왜적의 칼, 아끼는 부하를 참斬하는 장군의 칼이 모두 주인공이다. 소설은 무참히 베어내는 칼들과 그 칼에 베어져 나가는 수많은 것들을 담담하게 보여주고 있다. 
 
가장 섬뜩한 칼은 피붙이를 벤 칼이 아닐까 싶다. 아들의 부고를 전해들은 1597년 10월 14일자 『난중일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저녁에 천안에서 온 사람이 집에서 보낸 편지를 전하는데, 봉함을 뜯기도 전에 온몸이 먼저 떨리고 정신이 어지러웠다. 거칠게 겉면을 뜯고 열이 쓴 편지를 보니 겉면에 ‘통곡痛哭’ 두 글자가 쓰여 있었다.”
 
칼은 너무 공평해서 섬뜩하다. 마음은 멀거나 가까운 것을 구분하지만, 그런 구분은 칼날 아래서 죄다 허망해진다. 칼은 가깝거나 먼 것을 가리지 않는다. 피아를 가리는 것은 마음이지 칼이 아니다. 칼은 가깝다고 덜 베고 멀다고 해서 더 베지 않는다. 칼이 마음을 닮으면 더는 칼이 아니다. 마음이 칼을 닮아야지, 칼이 마음을 닮으면 안 된다.
 
 
선문禪門에서 마음을 칼에 견주어 말한지는 꽤 오래되었다. 간화선看話禪의 역사와 거의 같다. 대표적인 용어가 ‘살인도殺人刀’와 ‘활인검活人劍’이다. 종문제일서宗門第一書로 불리는 『벽암록碧巖錄』에서는 살인도와 활인검이 선문에서 예로부터 내려오는 도리일 뿐만 아니라 핵심이라고 적고 있다. 이렇게 중요시되는 용어지만 그 의미는 별로 선명하지 못하다.
 
도刀와 검劍부터 생각해 본다. 명쾌하게 양분되지는 않지만, 도와 검은 어쨌든 나뉘는 것 같다. 검은 대개 쌍날칼이다. 송곳마냥 일자형의 삐죽한 모양을 하고 있다. 베기보다는 찌르기를 위주로 하는 칼이다. 이에 비해 도는 외날 칼이다. 초승달 모양을 하고 있는데, 외날이니 당연히 칼날 쪽이 가볍고 칼등 쪽이 무겁다. 
 
도는 찌르기보다는 베기를 염두에 두고 만든 칼이다. 검은 찌를 수 있지만 베기는 어렵다. 베어지는 것은 베어지는 순간 칼에도 작지 않은 충격을 남긴다. 작용과 반작용 때문이다. 칼이 가벼우면 칼 쥔 손이 그 충격을 오롯이 다 받아내야 한다. 잘못하면 손목이 나간다. 그래서 베는 칼은 등부분에 날을 세우지 않고 무겁게 남겨둔다. 도끼나 작두의 등 부분이 망치 모양인 것도 같은 이치다. 
 
도든 검이든 어쨌든 둘 다 칼이다. 선문에서 살인殺人을 도와 연결 짓고 활인活人을 검과 연결 지은 이유는 분명치 않다. 살인도와 활인검이 집중적으로 논의된 가장 가까운 사례는 조선말에 있었던 선 논쟁이다. 논쟁이라는 것이 대개 그렇듯이 세부적으로 따지고 판단해 보려면 많은 공력이 든다. 더구나 등장하는 용어 자체가 매우 생소하고 난해해서 웬만해서는 내용 파악도 되지 않는다. 
 
일단 논쟁의 당사자로 두 사람, 백파긍선(白波亘禪, 1762~1852)과 초의의순(艸衣意洵, 1786~1852)이 있다. 논쟁의 뼈대는 이렇다. 백파 선사가 선에는 3종류, 즉 조사선祖師禪, 여래선如來禪, 의리선義理禪이 있다고 하자, 초의 선사가 말도 안 된다고 반박했다. 선문에서는 자고로 선을 2종류, 즉 여래선과 조사선으로 나눠보거나 혹은 격외선과 의리선으로 나눠봤을 뿐이라는 것이 초의 선사의 입장이다.
 
어쨌든 이렇게 시작된 논쟁이 그 뒤로 근 100년을 이어갔다. 이른바 ‘이종선 삼종선 논쟁’이다. 이 논쟁에서 선의 종류별로 그 특징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등장하는 용어가 바로 ‘살인도’와 ‘활인검’이다. 백파의 저술인 『선문수경禪文手鏡』에는 「살활변殺活辨」 항목까지 따로 있다. 
 
그는 조사선에는 활인검과 살활이 함께하는 면모가 보이고, 여래선에는 살인도의 면모만 보인다고 했다. 이른바 삼처전심三處傳心 이야기도 살활과 연계해서 설명한다. 부처가 가섭에게 자리를 내어주어 함께 앉은 사건, 즉 분반좌分半座는 살인도에 해당한다고 봤다. 그리고 여기에는 살만 있고 활은 없으므로 마음을 온전히 전하지 못한 것으로 평가했다. 이에 비해, 염화미소는 활인검에 해당하고, 곽시쌍부槨示雙趺는 살과 활을 동시에 보여준 것이라고 봤다. 
 
살과 활이 다 쓸데없는 소리라는 의견도 없지 않았다. 당시의 추사 김정희가 그랬다. 그는 초의 선사에게 보낸 편지에서, “삼세제불과 역대 조사의 담연원묘湛然圓妙함이 모두 빠짐없이 살활 속에 들어가 이리저리 엉겨 붙은 것인가[膠葛滾轉耶].”하고 비웃었다. 살과 활 두 가지로 불교를 모두 꿰려고 하는 것은 너무 억지스럽다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추사는 「백파망증십오조白坡妄證十五條」라는 혹독한 글도 남겼다. 백파의 선 이론을 15조목에 걸쳐 성토한 내용이다. 그가 제주도에 유배되어 있던 1843년 4월에 당시 영구산靈龜山에 주석하고 있던 76세의 백파에게 보낸 글이다. 백파는 “어찌 반딧불로 수미산을 태우려 드십니까?”라고 하면서 추사의 몰이해를 완곡히 반박했다. 
 
공교롭게도 지금 선운사 부도밭에 세워져 있는 「화엄종주 백파대율사 대기대용지비華嚴宗主 白坡大律師 大機大用之碑」의 글을 짓고 쓴 사람도 다름 아닌 바로 추사다. 그는 비문을 쓰면서, “혹자는 기용機用과 살활殺活을 지루하고 억지스럽다고 하지만 이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적었다. 그의 마음의 변곡점은 잘 종잡기가 어렵다. 세월이 지나서, 혹은 유배에서 풀려나서 선의 이치를 알아봤던 것일까? 
칼의 역사를 보면, 검에서 도로 발전해왔다고 한다. 똑같은 칼이지만 도의 길과 검의 길은 다르다. 도가 선線을 노리는 칼이라면, 검은 점點을 노리는 칼이다. 칼끝에 노출되는 점은 많지만, 선은 드물다. 그래서 검은 자꾸 찌를 것을 염두에 두지만, 도는 한칼에 끝내려고 휘두른다.
 
‘일도양단一刀兩斷’은 도刀의 특징을 명확히 보여주는 말이다. 일검양단一劍兩斷이라는 말은 없다. 베는 것은 단칼에 해야 하기 때문이다. 단칼에 베지 못하면, 잘 베어지지 않고 베는 자가 도리어 위태로워진다. 마음도 그와 같아서 그렇게 베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살인이 도와 연결되는 지점도 얼핏 보이는 듯싶다.
 
선 수행이란 어쩌면 마음이 칼을 닮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속된 마음을 죽이니 살인도가 되는 것이고, 그렇게 해서 속됨에서 벗어나니 활인검이 되는 것이다. 선문의 칼은 스승이 제자를 다루는 기법인 동시에, 수행자가 자신의 마음을 칼 다루듯 해야 한다는 것을 상징한다. 『벽암록』에도 쓰여 있듯이 칼로 상징되는 살활의 이치 속에 선 수행의 이치와 마음의 이치가 있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선 수행은 마음의 칼을 벼리는 일이다.  
 
왜적에 살해되었을 때 장군의 셋째 아들 면은 겨우 스물한 살이었다. 아직 장가들지 않았다. 비통한 소식을 들은 장군의 모습을 작가는 이렇게 적고 있다. “면의 부고를 받던 날, 나는 국무를 폐하고 하루 종일 혼자 앉아 있었다. … 바람이 잠들어 바다는 고요했다. … 저녁때 나는 숙소를 나와 갯가 염전으로 갔다. 종사관과 당번 군관을 물리치고 나는 혼자서 갔다. 낡은 소금 창고들이 노을에 잠겨 있었다. 나는 소금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가마니에 엎드려 나는 겨우 숨죽여 울었다. 적들은 오지 않았다.” 
 
어린 피붙이는 적의 칼에 난도질 되었다. 그런 적을 장군의 칼은 또 난도질할 것이다. 그렇게 칼날 아래서 모든 것이 공평해진다. 모든 것을 공평하게 만드는 것이 칼의 길일 것이다. 가깝거나 먼 것은 마음의 길이지 칼의 길이 아니다. 다시 새해다. 평안하고 무탈하시냐고 사람들에게 묻지 못하겠다. 칼이 마음을 닮으면 어찌 되는지 우리는 지금 몇 달째 똑똑히 목격하고 있다. 아니 겪어내고 있다. 마음을 닮은 칼은 남을 베고 또 스스로 베어진다. 그래서 다시 적는다. 마음이 칼을 닮아야지 칼이 마음을 닮아서는 안 된다.         
 
 
박재현
서울대학교 철학박사. 저술로 한국 근대불교의 타자들』, 깨달음의 신화』, 만해, 그날들』 등이 있고, 「한국불교의 간화선 전통과 정통성 형성에 관한 연구」 외에 다수의 논문이 있다. 현재 부산 동명대학교 불교문화콘텐츠학과에서 겨우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