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심 한없는 행복의 원천, 고통의 치료제

2017-02-08     재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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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심 
한없는 행복의 원천, 고통의 치료제
 
안녕하세요. 저는 이 글의 연재를 시작한 후, 융이 말한 ‘동시성 경험’, 불교적으로 말하면 ‘가피’를 입었습니다. 하나는 보름간 인도 성지순례 중에 샨티데바 스님께서 『입보리행론』을 설한 날란다대학 유적지에서 샨티데바 스님의 숨결을 조금이나마 느꼈던 것이고, 또 하나는 부처님께서 깨달은 성지인 보드가야 깔라차크라 법회에서 달라이 라마 존자님으로부터 『입보리행론』 구전을 받은 것입니다. 달라이 라마 존자님은 나흘 동안 이 논을 읽고 풀이해주셨는데, 스승으로부터 구전을 받은 길상한 축복을 여러분과 나누게 되어 기쁩니다. 지난달에는 변치 않는 보배인 보리심에 관해서 문사수聞思修를 했었는데요. 이번 달에는 보리심의 공덕을 듣고, 사유하고 행동하기를 수행해보고자 합니다. 
 
聞  -  듣기
모든 중생들의 행복의 원천이고, 모든 중생들의 고통을 치료하는 감로약인 이 보배로운 마음, 보리심의 공덕을 어떻게 다 헤아릴 수 있겠나이까. 
 
단지 남들을 도우려는 생각만 해도 보물을 부처님께 공양하는 것보다 수승한 공덕을 얻는다는데 모든 중생의 이익을 위해 실제로 행동한다면 당연히 더 말할 수 없는 복덕을 얻게 되나이다.(1:26~27) 
 
思  -  사유하기
우리가 이생을 떠날 때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은 오직 각자 지은 업, 선행ㆍ공덕과 악행ㆍ죄업뿐이라고 초기경전 여러 곳에서 부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붓다시대의 많은 이들이 공덕을 짓기 위해 보시를 선택하는데요. 보시를 하면 천상에 태어날 수 있다는 것이 당시 인도사회의 상식이었습니다. 그런데 보시 중에서 가장 큰 보시가 일체존재의 행복과 이익을 위해 보리심을 발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보리심과 보리행이 행복의 근원이라는 생각을 일으킬 수 있는지요? 저는 ‘발심’의 정확한 뜻이 ‘일체중생의 행복을 위해 성불을 하겠다는 마음’인 줄을 출가한지 몇 년의 시간이 흐른 후에야 알았습니다. 그만큼 우리 불교가 대승정신은 사라지고, 본질이 전도된 채, 구법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됩니다. 여러분이 만약 불자라면, 불자가 된 이유와 목적은 무엇인가요?  
 
샨티데바 스님은 중생을 직접 돕는 행동이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는 것보다 수승하다고 밝힙니다. 이는 불자들이나 종교인들이 취약하기 쉽거나, 자칫 소홀할 수 있는 이타적 실천을 부처님께 올리는 의례보다 우위에 두어 강조한 것으로 봅니다. 막연하게 말과 입으로만 일체존재를 위하기는 쉽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마음을 담아 행동으로 옮기는 수행은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탐ㆍ진ㆍ치를 없애는 수행은 익숙하지 않으니까요. 세월을 알 수 없는 시간 동안 윤회하면서 나와 내 것에 대한 집착이 다른 사람과의 분리를 넘어서 나만을 위한 아애我愛, 아만我慢으로 점철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修  -  행동하기
자신이 처한 조건과 환경에서 일체중생의 행복을 위해 실제로 타인을 돕는 행동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가장 쉬운 방법 중에 하나는 내가 가진 능력과 시간, 재능, 물질을 타인들의 행복과 이익을 위해 단순하게 대가를 바라지 않고 나누는 것입니다. 제가 아는 도반스님의 불단 서랍에는 여러 색의 보석 같은 작은 돌멩이들이 들어 있습니다. 여행지마다 독특한 돌멩이들을 구해서 모은 것인데, 매일 잠자기 전에 몸과 말과 마음으로 그날 행한 선행들을 떠올리며 돌멩이를 하나씩 불단에 공양 올립니다. 이때 무량한 불보살님들의 공덕을 함께 회향하면서 말입니다. 여러분들도 여러분들만의 방법으로 공덕을 짓고, 그 공덕을 기억할 만한 상징으로 회향해보면 어떨까요? 가장 간단하게는 다이어리에 매일 타인을 위한 선행이나 공덕을 표시하는 수행일지를 기록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익숙해져서 자연스럽게 공덕을 짓고, 순간순간 회향할 때까지 말입니다. 
 
聞  -  듣기
중생은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면서도 오히려 고통의 원인들을 향해 달려가고, 행복을 바라면서도 무지하기 때문에 행복의 원인들을 원수처럼 물리치나이다.(1:28)
 
思  -  사유하기
위의 1장 28절 게송은 정말이지 우리가 가장 잘하고 익숙한 채 살면서 잘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라 상상되는 문장입니다. 제 자신과 모든 이들이 진정으로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는가를 진지하게 스스로에게 질문해봅니다. 어떤 사람은 행복하기를 바라고, 어떤 사람의 이익은 줄어들기를 바라지는 않는지 알아차려 봅니다. 또 하나는 저와 일체존재가 진정으로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지 다시 묻습니다. 어떤 사람의 고통을 고소해 하거나,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는지 알아차려봅니다. 
 
저는 부끄럽게도 몇 년 동안 대중으로 살면서 한 도반스님이 제 마음에 들지 않아 결국에는 미워하는 마음으로 자라난 것을 어쩌지 못해 절망감에 자주 빠졌던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정말 고통에서 벗어나 행복을 원하는지’ 질문을 통해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선택했습니다. 그 스님의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을 하나하나 적어보았더니, 제 자신의 성격이나 행동 중에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과 많이 닮아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스님도 저와 똑같이 행복을 바라고 고통을 싫어하는, 그리고 애쓰는 한 수행자라는 데까지 생각이 이르자 저의 아집과 아만은 더 이상 거주할 곳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 스님께 찾아가 참회를 하자, 저는 ‘미움’이라는 고통에서 해방되었습니다. 
 
모든 존재가 평등하다는 것을 아는 지혜는 모든 존재가 고통을 여의고 싶어 하며, 진정한 행복을 원한다는 것을 알아차릴 때 일어나는 마음현상입니다. 이 지혜가 더 성숙해지면 일체존재들의 행복과 이익을 위해 성불하겠다는 진정한 발심이 가슴과 온몸에서 피어오를 때가 있을 것입니다. 또는 가슴에서 뜨거운 사랑과 연민으로 일체존재가 행복해지기를 바랄 때 지혜가 생기기도 하겠지요.  
修  -  행동하기
노트에 진정으로 행복하기를 바라는 사람, 잘되기를 바라는 사람, 그의 이익이 늘어나기를 바라는 사람의 이름을 한 번 적어보세요. 몇 명이나 적을 수 있을까요? 생각이 날 때마다, 그 이름의 숫자를 늘리려고 애써보십시오. 그리고 얼마나 늘어나는지 살펴보시길 권합니다. 진정으로 다른 사람의 이익과 행복을 바라는 이름들이 늘어나고 있으면 기뻐하시고 스스로 수희찬탄하며 모든 존재에 이를 때까지 이 수행을 해보십시오.
 
聞  -  듣기
보리심은 행복을 잃어버리고 여러 가지로 고통만 받는 이들에게 한량없는 기쁨을 주고 모든 고통을 없애주나이다. 보리심은 무명까지도 없애주나니 그에 비할 선업이 어디에 있으며, 그와 같은 선지식이 어디에 있으며 그와 같은 복덕이 어디에 있겠나이까.(1:29~30)    
 
思  -  사유하기
보리심과 보리행이 어떻게 행복의 원인이 되며, 고통의 치료제가 될까요?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하고 기쁨과 이익을 주기 때문이라고 샨티데바 스님은 전합니다. 거기에다 보리심은 우리의 어리석음까지도 없앨 수 있는 지혜요 선지식이자 복덕이라고 설합니다.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이 필요로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관심이 필요하지요. 관심의 지평 위에 그 사람이 바라고 필요로 하는 것을 경청하는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야 합니다. 우리 주변에 행복을 잃어버리고 고통만 받는 이들은 누구일까요? 
 
나는 오늘 누구에게 관심이 가는가요? 나는 오늘 누구의 말과 행동에 시간을 들여 경청했나요? 그가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무엇이었나요? 나는 오늘 누구에게 이익을 주기로 의도했으며, 실제로 이익을 주었는가요?
 
修  -  행동하기
매일 아침에 일어나서 보리심을 일으키고, 낮에 보리행을 실천하고, 저녁에 모든 불보살들의 회향을 본받아 일체존재의 행복을 위해 그들에게 회향하기를 실천해볼까요? 며칠을 실천할 수 있을지 걱정하시나요? 하루나 이틀 혹은 사흘도 좋습니다. 하는 만큼 유익하고 이익이니까요. 수행은 반복해서 익숙해지는 것입니다. 저도 작심삼일作心三日을 계속 반복해보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함께 파이팅 해요. 고맙습니다.                        
                                
 
      재마 스님 
중앙승가대학교에서 불교사회과학연구소 상임연구원으로 불교의 사회참여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움직이는 법당, 춤추는 절을 꿈꾸며, 매주 소마명상여행을 이끌고 있다. 또한 종교를 초월해 ‘마음비추기’ 피정 진행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완화의료(암)병동에서 매주 환자들과 보호자들을 위한 영적 돌봄 봉사를 하고 있다. 박사논문으로 「사무량심의 가치 재발견과 체화프로그램 개발연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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