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견문록] 김성수 선생의 글쓰기 명상

자신과의 적나라한 그러나 반가운 만남

2017-02-08     불광출판사

자신과의 적나라한 그러나 반가운 만남

 
김성수 선생의 글쓰기 명상
 
‘나의 상처나 비밀을 자신에게라도 
100% 드러내 본 적 있는가?’
‘나는 나의 욕망을 
정확히 알고 있는가?’
‘내가 붙들고 있는 개념, 가치관, 
신념 등을 잘 알고 있는가?’
‘과거의 기억을 타인에게 
전이시키거나 
투사하지 않을 자신 있는가?’
글쓰기 명상에 앞서 자기 상담을 
위해 던져지는 질문들이다.
뭔가를 할 때는 자세부터 배우듯이,
글쓰기에 임할 때도 자세가 있다.
‘쓰레기 같은 글을 써도 좋다. 
어떤 쓰레기도 
귀하지 않았던 적은 없다.’
‘두려움이나 벌거벗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도 계속 써나가라. 
쓰면 빛이 나고, 
빛이 나면 어둠은 사라진다.’
‘글쓰기나 명상은 육체노동이다. 
앉은 자리에서 버티고 견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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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나 할 수 있되 초심자에 제격
지난 연말, 지구촌 뉴스를 들으면서 흐뭇하고도 부러운 마음이 들었던 것은 비단 나뿐일까? 스페인 어느 마을에서 성탄복권이 당첨돼 주민 모두가 5억 원씩 나눠 받게 되었다는 소식이었다. 글쓰기 명상을 함께 했던 이들이 떠올랐다. 수업 때 사람들은 ‘갖고 싶은 돈의 액수와 그 이유’, ‘내가 돈에게 한마디 할 수 있다면?’ 등에 대해 글을 써보며 뜻하지 않게 즐거워졌었다. 이번 글쓰기 명상이 진행된 곳은 서울 양천구에 있는 인드라망생명공동체. 자기를 알아가고 자비심을 일구는 공부모임인 이곳 ‘인드라망 심심尋心학교’의 초청으로, 김성수 선생(59)은 3주간 주 1회 수업을 하고 있었다. 작년 여름에 이은 두 번째 초청이다.
 
‘언어를 활용한, 언어 없애기 작업.’ 그는 글쓰기 명상을 이렇게 소개했다. 말글을 방편 삼되 언어가 끊어진 본래자리에 이르면 방편마저 놓아버린다. 뜻을 얻었으면 말은 잊으라던 장자莊子의 지혜, 강을 건넜으면 배는 버리라던 선가禪家의 자유와 통한다. 첫날 쉬는 시간에 한 참가자가 말했다. “꽁꽁 싸매고 있다가 글쓰기 명상을 만나니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핸드폰으로 쓰고 누워서 쓰고, 그러니까 굉장한 치유가 되더라고요. 그래서 아주 멀리서 왔어요.” 2주 후 마지막 시간이 끝나자 또 다른 참가자가 만면에 웃음을 머금고 얘기한다. “늘, 나를 찾아야지 했는데 이 수업에서 비로소 오롯한 나를 찾는 시간이 돼서 흥미로웠어요.”
 
글쓰기 명상을 생각해낸 계기는 김성수 선생 스스로가 명상 수행을 한 것이 토대가 되었다. “사람들이 명상을 어렵다고 느끼고 실생활에 접목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명상으로 가는 ‘계단’ 같은 과정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착안하게 됐어요. 정통 명상으로 가기에 앞서 거칠게나마 연습을 하는 셈이죠.” 그래서 본격 수행을 하기 전, 초심자들에게 사전작업으로 더욱 도움이 된다고 했다.
 
게다가 특별한 도구가 필요하지 않다. “명상과 마찬가지로, 넓은 공간도 필요 없어요. 볼펜 하나만 있으면 되죠.” 그에게, 노트북이나 스마트폰에 글을 쓰는 것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문제되지 않으며, 스마트폰은 현대인이 늘 가지고 다니는 것이기에 오히려 적극 활용을 권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글쓰기 명상은 일종의 응용명상이다. 글쓰기의 치유 효과에서 더 나아가 명상의 요소를 발견한 김성수 선생은 이를 체계화하기 위해 오랫동안 고민해왔다. 그 과정에서 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 정준영 교수의 지도 아래, 명상학 박사논문을 썼다. 「가정폭력 쉼터여성을 위한 글쓰기명상 프로그램 개발 및 효과성 연구」라는 주제였다. 그는 현재 마음과학연구소 대표로 있으며, 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에서 ‘명상 프로그램 연구’ 등을 강의하고 있다. 특히 사회복지관이나 알코올(의존 치료)센터, 가정폭력 쉼터 등에서 행위자 또는 피해자 집단을 대상으로 마음공부를 안내해왔다. 1993년, 단편소설로 등단한 작가이기도 하다. 명상안내서 『잡념이 보배다』, 장편소설 『너의 날개가 수상하다』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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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러낼수록 깊고 흥미로운 자기
글쓰기 명상에서는 글을 쓰기 전 짧게라도 명상을 한다. “어려운 문제에 대해 명상을 하고 쓸 때와 하지 않고 쓸 때 느낌이 어떤지 학생들로부터 피드백을 받아요. 그러면, 10분 정도만 호흡을 관찰하고 써도 이상하게 잘 써진다는 대답이 많아요. 복잡하게 느껴졌던 문제가 명상 후에는 별것 아니게 느껴진다는 거예요.” 수업은 ‘워밍업-글쓰기 명상의 실제–트레이닝’의 단계로 구성된다. ‘워밍업’이 그동안 대면하지 않았던 질문들에 단답형으로 답하는, 몸 풀기 같은 것이라면 ‘실제’는 보다 긴 내용, ‘트레이닝’은 산문을 쓰는 식이다.
 
첫 시간에 알게 된 뜻밖의 사실은 이 수업의 전제조건에 관한 것이다. 쓴 것을 선생을 비롯한 그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는다! (단, 나누기를 원하는 부분에 한해서는 이야기할 수 있다.) 미련 없이 없애버리거나 완벽하게 감추는 것을 전제로 한다. 완성하고 나서 흩어버리는 만다라와 다르지 않다. 그러므로 필자만이 유일한 독자다. 남들의 시선이나 평가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으니 온전히 솔직할 수 있다. 김성수 선생은 이를 ‘흐르는 강물에 글쓰기’에 비유한다. 명상을 할 때 떠오르는 생각을 붙잡지 않듯, 글 또한 흘려보낸다. 다른 누구도 이 글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은 우리를 몸에 밴 긴장으로부터 놓여나 자유롭게 한다.
 
글 쓰는 방법에 있어서는 가급적 설명하기보다 묘사하기를 권한다. “개입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쓰는 묘사하기는 마음공부와 메커니즘이 같아요.” 영화를 보듯이 관찰만 함으로써 ‘나에 대한 제3자 되기’가 이루어진다. 묘사는 구체적일수록 좋다. 수업시간에 예로 든 장면은 이러하다. ‘그는 나를 사랑하나 보다. 그의 눈빛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해석에 가까운 이 서술을 묘사로 바꾸면 이렇게도 쓸 수 있다. ‘나를 돌려세운 그는 내 눈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 시선 때문인지 내 몸은 곧 얼어붙은 듯 굳었다. 동대문시장 입구, 시끄러운 차 소리와 사람들 소리가 조금도 들리지 않았다.’ 고백자는 곧 내레이터가 된다.
 
그리고 그는 명상이 자존감을 높여준다는 데 주목한다. 내면을 드러낸다는 것 자체가 이미 수용하는 쪽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래서 글쓰기 명상 또한 자신을 긍정하는 작업이다. 『긍정심리학』을 쓴 마틴 셀리그만은 긍정이란 ‘나의 감정, 기억, 생각, 행동 등을 온전히 수용하고 공감해주는 상태’라고 풀이한다. 우리 안에 잠재해 있는 탐ㆍ진ㆍ치, 슬픔과 좌절감, 불건전한 욕구나 비윤리적인 생각까지도 받아들이고 공감하는 상태가 진정한 긍정이라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선생이 강조한 또 한 가지는 감각에 깨어있기이다. “오감을 알아차리라고 하셔서 해봤는데 흥미로운 경험이었어요. 평소에는 몰랐던, 머리카락이 두피에서 쭈뼛하는 느낌, 손톱 위의 촉감까지 느낄 수 있었어요.” 수업과 수업 사이, 일주일 동안 일상에서 감각을 지켜보고 온 참가자의 소감이다.
 
참가자들은 글쓰기 과제로 ‘내 몸과의 대화’, ‘내 안의 악마(또는 아기) 드러내기’, ‘그 일이 화나는 20가지 이유’ 등의 글을 써보며, 자신도 몰랐던 자기와 직면한다. 맞춤법이나 논리 같은 것은 중요하지 않다. 말하듯이, 악쓰듯이, 뒹굴며 소리 지르듯이 쓰도록 스스로를 허용한다. 한 참가자가 의아해하며 그렇게 하는 것이 가능한지 물었다. 선생은 가면을 벗어버리고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라고 답했다. 글 속에서. “풀 수 있는 사람은 세상천지에 자기뿐이잖아요. 주위의 누군가가 어떤 일로 많이 힘들어하면, 이 방법을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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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템플스테이 등에 다양한 접목 가능
수업 초반, 참가자 중에는 글쓰기에 대한 부담감을 토로하는 이도 있었다. 그에게 있어서 글을 쓴다는 것은 일단, 앉을 시간을 내야 하고 아무나 할 수 없을 것 같은 고급스러운 느낌이 든다고 했다. 수긍 가는 대목이다. 다행히 실제로 경험해본 글쓰기 명상은 그리 무겁지 않았다. 워밍업을 하면서 ‘나에게 _______이 완벽하게 허용된다면?’과 같은 질문에 간략히 답해본다. 어렵게만 느껴지던 글쓰기가 수다 떨듯 편안한 이야기로 이어진다. 세상과 나에 대한 작은 발견이 오랜 아픔을 어루만진다. 먼지를 털어내듯 조금씩 가벼워진다.
 
사람마다 글감에 따라 마음에 와 닿는 것이 다르다. 답답했던 곳이 건드려지면 깊이 들어가기도 한다. 이때 치유와 해방의 징후가 시작된다. 김성수 선생은 우리 안의 상처나 억눌려 있었던 것들을 세세하게 드러내는 작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글쓰기가 명상을 보완해줄 수 있는 지점이다. “명상을 할 때는 드러내기가 제대로 이루어졌는지가 상당히 막연해요. 상대가 있는 상태에서 입 밖에 낼 때는 아무래도 방어기제가 있을 수밖에 없죠. 그에 비해 글쓰기는 자기한테 쓴다는 점에서 굉장히 유익한 도구예요.” 글을 쓰는 자는 안에 있던 것을 보다 뚜렷하게 꺼내 놓게 되고, 볼 수 있게 된다.
 
수업은 총 6시간 과정(2시간*3회)부터 24시간 과정(8시간*2박3일), 30시간 과정(3시간*10회) 등 다채로운 적용이 가능하다. 여러 단체나 대학에서 수업을 진행해본 경험으로는 총 10회 정도가 가장 효과가 있다고 한다. 대상에 따라 프로그램을 좀 더 세분화할 예정이다. 글쓰기 명상의 다양한 활용가능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는 예컨대, 치유하는 프로그램의 일환으로서 템플스테이에 접목하는 방안도 언급했다. 올해 1~2월에는 한국연극인복지재단에서 연극인들에게 글쓰기 명상을 진행한다.
 
글쓰기 명상을 할 때 우리는 다음과 같은 마음들이 있는지를 살펴본다. ‘나는 사회적 정직과 실질적 정직 사이에서 갈등하곤 한다.’ ‘나의 내면을 정직하게 드러냈을 때 올 혼돈과, 감당해야 할 뒷일이 두렵다.’ 상처와 괴로운 기억을 외면하고 회피하려 하는 자기방어의 벽은 마치 베를린장벽만큼이나 단단하다. 그러나 베를린장벽도 정으로 쪼고 망치질을 반복하자 작은 구멍이 나고 마침내는 무너지지 않았던가(마이클 무어 감독의 영화 <다음 침공은 어디>를 보면 잘 나온다). 방어벽을 뚫고, 차마 드러낼 수 없었던 그것을 직시하는 사람이 글을 잘 쓰더라고 김성수 선생은 말한다. 오직 스스로에게만은,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을까. 마주할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문현선
이화여자대학교에서 공부하고 문화예술 기획자로 활동했다. 지금은 더디게 수행을 이어가고 있으며 느리게 해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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