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 명법문] 기도하는 것에 대해 / 향적 스님

2017-02-08     향적 스님
 기도하는 것에 대해
 
우리 불자들은 기도로 시작해서 기도로 끝을 맺습니다. 그래서 많은 좋은 이야기 중에 기도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참선하는 것도 기도라고 할 수 있고, 스님들이 승가대학에서 공부하는 것도 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기도 아닌 것이 없습니다. 
 
기도라는 뜻이 무엇인가 보면 인간보다 능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어떠한 절대적 존재에게 빌거나, 그런 의식을 말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기도를 하면서 오해하는 것이 자기 기도가 이뤄지지 않으면 ‘이 집이 영험하지 않네.’ ‘스님이 기도력이 부족하네.’ 이렇게 생각합니다. 기도祈禱를 한문으로 써보면 보일 시示 자 옆에 살필 근斤 자를 써서 기라고 하고, 보일 시示 자 옆에 목숨 수壽 자를 써서 도라고 합니다. 그 말은 정말 목숨을 다하면서 다가가는 것입니다. 자신의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염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를 기원祈願이라고도 하고, 기념祈念이라고도 하고, 기망祈望이라고도 합니다.
 
이렇게 서원을 세우는 것을 보고 불교를 모르거나 종교가 없는 사람들은 기복적이라고만 봅니다. 하지만 기도가 없는 사람은 희망이 없고, 꿈이 없는 사람입니다. 기도를 하는 사람들은 간절한 바람이 있고, 꿈이 있고, 삶에 의미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기에 기도를 하는 것이죠.
 
우리 불자들은 3일, 7일, 100일 등 기도를 합니다. 그런 기간을 설정해서 기도를 올리면서 바라는 것이 남보다 잘되기 위한 목적이 대부분입니다. 인간의 경쟁사회에서 남보다 내가 잘되기를 바라려면 더 열심히 해야 됩니다. 가만히 앉아있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정신일도하사불성精神一到何事不成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처럼 정말 온 마음을 가지고 모든 면에서 노력해야 합니다. 기도와 함께 노력을 해야 합니다. 『화엄경』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우보익생만허공雨寶益生滿虛空 중생수기득이익衆生受器得利益.’ 하늘에는 보배의 비가 한가득 내리지만, 중생의 그릇에 맞게 담긴다는 말이죠. 
 
기도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니까 너무 어렵다고 생각하는 면이 있어서, ‘기도라는 것을 과연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하실 겁니다. 그래서 제가 시를 한 편 준비했습니다. 여러분께 도움이 될 것 같아서요. 이문재 시인의 ‘오래된 기도’라는 시입니다.
 
가만히 눈을 감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왼손으로 오른손을 감싸기만 해도 
맞잡은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기만 해도 
말없이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기만 해도 
노을이 질 때 걸음을 멈추기만 해도 
꽃 진 자리에서 지난 봄날을 떠올리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음식을 오래 씹기만 해도 
촛불 한 자루 밝혀놓기만 해도 
솔숲 지나는 바람소리에 귀 기울이기만 해도 
갓난아기와 눈을 맞추기만 해도 
자동차를 타지 않고 걷기만 해도 
섬과 섬 사이를 두 눈으로 이어주기만 해도 
그믐달의 어두운 부분을 바라보기만 해도 
우리는 기도하는 것이다 
바다에 다 와 가는 저문 강의 발원지를 
상상하기만 해도 
별똥별의 앞쪽을 조금 더 주시하기만 해도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만 해도 
나의 죽음은 언제나 나의 삶과 동행하고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인정하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고개 들어 하늘을 우러르며 
숨을 천천히 들이마시기만 해도
 
이문재 시인의 말처럼 정말 기도 아닌 게 없습니다. “평범한 진리를 인정하기만 해도.”라는 말처럼 정말 기도가 아닌 것이 없지요. 쉬우면서도 어렵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혹은 죽어가는 이 모든 순간들이 기도입니다. 기도를 통해 원하는 것을 성취하고 이루려면 큰 노력이 필요합니다. 원효 스님께서 「발심수행장」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절하는 무릎이 얼음장 같아도 불을 생각하지 말고, 창자가 배고파서 끊어질 것 같아도 음식을 생각하지 마라.” 이렇게 기도를 해야 합니다. 
 
제 이야기를 조금 해보면, 출가한 스님들도 그렇게 기도를 하는 순간이 많이 없는 것 같아요. 제가 20대 초반에 군대 영장이 나오면서 고민이 많았어요. 그때 은사스님께 “석굴암에 가서 기도를 하면 효험이 있을까요?” 여쭤보니, 은사스님께서 자식 보내는 마음으로 편지도 써주시고 음식도 싸주시고 하셔서 석굴암으로 갔습니다. 원래 석굴암 안에 들어가서 계속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근데 석굴암 주지스님께 은사스님 편지를 보여드리니까 들어가서 기도를 하라고 하셨어요. 석굴암 안에서 기도를 하면서 속으로 바라길 ‘전방으로 안 보내주시고, 후방으로 가서 고생 안 하고, 좋은 보직 받았으면.’ 이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 마지막 날이 되었습니다. 새벽 기도를 하다가 졸았어요. 근데 석굴암 부처님 뒤에서 흰 동자가 나와서 기도하다가 존다고 목탁으로 머리를 때리는 겁니다. 그래서 깜짝 놀라서 잠이 확 깼습니다. 회향을 하는데 갑자기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게 ‘아. 내가 부처님 제자답지 못한 기도를 했구나. 내가 좋은 곳 가면 다른 누군가는 힘든 데 가고 내가 고생 안 하면 다른 이가 고생하겠구나. 남을 제치고 가면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부끄럽더라고요. 머리를 한 대 얻어맞고, 고속버스를 타고 올라가는중이었어요. 그전에는 유행가 노래 들으면 싫었는데 싫은 게 없더라고요. 모든 게 긍정적이고 기분이 좋았습니다. 기도를 열심히 하니까 세상의 모든 것을 긍정하면서 보고, 기분도 아주 좋았습니다. 
 
여러분, 기도는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또 쉬운 것도 아니에요. 기도를 하기 전에 정말 자기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자기가 어느 위치에 서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기도를 하면서 정말 망상 없이 전념해야 합니다. 자기를 도와주는 관세음보살이 자기 안에 있다고 믿어야 합니다.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와 관계된 모든 주변을 생각하고, 이타적으로 넓혀야 합니다. 그래서 자신을 바꿔야 합니다. 자기중심적 사고를 바꾸는 것이 기도 안에 속해야 합니다. 
 
여러분 항상 부처님 믿으시고, 자기 스스로 믿으시고, 기도하며 사시길 바랍니다.                
             
       
 
향적 스님
가야산 해인사에 출가하여 교敎를 배우고 선禪을 참구했다. 언론매체를 통한 포교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월간지 『해인海印』을 창간하고, 초대 편집장을 지낸 후 프랑스로 건너가 가톨릭 수도원 삐에르-끼-비에서 불교와의 수행 방법을 비교하고 돌아왔다. 그 뒤, 조계종 교육원 초대 교육부장직을 수행하면서 승가 교육을 체계화했다. 해인사 성보박물관 초대 관장, 불교신문 사장, 조계종 중앙종회 의장 등의 소임을 맡았고, 현재 해인사 주지로 있다. 
 
ⓒ월간 불광 -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