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산시(寒山詩)

선심시심

2007-07-01     관리자
 


 시인 조지훈의 글에는 동양 불교시의 고전 한산시에 대한 언급이 여러 군데 나온다.

다음은 그 중의 하나다.

 ......가슴이 답답할 때 선시를 읽으면 가슴이 후련해진다. 시가 탈속하려면 먼저 이런 경지에 거닐어 보지 않으면 안된다. 한산시 처럼 이빨이 시린 시를 읽다가 옹졸한 유자의 시를 읽으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선시의 특징을 단적으로 지적하면서 그가 한산시에 깊이 매료되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사실 그는 평소에 한산시를 즐겨 읽었고 그의 시중에는 한산시와 같은 선시계열로 볼 수 있는 작품이 적지 않다.

 당나라 중엽 천태산 근처의 한암이란 산골짝의 굴에 기거하면서 시상이 떠오르면 벽이나 바위, 그리고 나무에 시를 써놓았다는 한산이 누구인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전설적인 은자라고도 하고 빈한하고 불우한 선비라고도 하며 기행을 일삼은 광적인 인물이라고도 한다. 또 문수보살의 현신이라고도 하여 불교적 인물임을 말하는 경우도 있으나 그가 승려인지 거사인지, 그의 정체를 정확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확실한 사실 하나는 그는 일찍이 씨끄럽고 혼탁한 세상을 등진 채, 은둔의 길을 떠나 탈속의 이상경에서 맑고 깨끗한 자연시와 그윽하고 오묘한 선시 300여편을 써서 남긴 시인이라는 사살이다.

 알뜰하여라 이 한산이여

 흰구름 항상 스스로 한가롭네

 잔나비 울음도 안에서 즐겨하고

 범의 휘파람 인간세계 벗어났네

 돌을 밟으며 혼자 거닐고

 등가지 휘어잡고 외로이 읊조리네

 솔바람은 맑아 솔솔 부는데

 새소리는 고운 대로 지저귀나니


 그가 숨어 살았던 한산은 인적이 끊어진 곳으로 인위적인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찾아볼 수 없는 곳, 둘려진 산 봉우리들은 항상 눈을 이고 한 여름에도 얼음이 녹지 않고 매양 안개가 골짝을 메워 지척을 분간 할 수 없는 곳, 태고 그대로의 원시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곳이었다.

 층층 바위 틈이 내가 사는 곳

 다만 새 드나들고 인적은 끊어졌다.

 좁은 바위 뜰가에 무엇이 있나 

 그윽히 돌을 안은 흰구름만 감돌뿐

 내 여기 깃든지 무릇 몇 번 핸고

 봄과 겨울 바뀜을 여러 차례 보았네

 그대 부자들에게 내 한 말 부치나니

 헛된 이름이란 진정 헛것뿐

 

 세속을 여의었으니 마음에 걸림이 없고, 마음에 걸림이 없으니 자연과 일체가 되어 유유자적한다. 그 초탈한 삶 속에 속세의 부귀야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 그러기에 한산의 행위는 속인의 그것과 달랐다. 그는 너덜너덜 해진 옷을 입고 나무신을 질질 끌고 다녔다. 그리고 근처 절에서 나오는 음식 찌꺼기를 얻어먹고 살았다. 때로는 큰 소리로 외치기도 하고 혼자 떠들고 말하기도 하였으며, 그리고 혼자 껄껄대고 웃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시상이 떠오르면 닥치는 대로 나무에 벽에 바위에 시를 쓰고 읊었다. 또 때로는 그의 거친 행동 때문에 사람들에게 붙잡혀 욕설을 듣고 매질도 당하였다. 그러나 그는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이 자연 그대로 본성 그대로 그다운 삶을 살다가 갔다. 이제 사람은 가고 시만 남아 후대의 뜻있는 시인의 회포를 자아내고 있거니와, 시인 조지훈이 그토록 한산시를 즐겨 읽고 그의 시 중 한산시와 맥을 같이 하는 작품이 적지 않음도 다만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