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무형문화 순례] 사찰의 동지 팥죽 문화

시방세계 부처님께 팥죽 한 그릇

2017-01-09     김성동

시방세계 부처님께 팥죽 한 그릇

 
동지冬至. 소세小歲라고 하여 ‘작은 설’이라고도 한다. 옛 어른들은 동짓날 팥죽 한 그릇을 먹어야 나이 한 살 더 먹는다고 했고, 이웃과 서로 나누어 먹었다. 우리나라 동지 풍속은 신라시대로 거슬러 간다. 신라 선덕여왕이 황룡사에서 예불을 올리는데, 지귀志鬼라는 이가 여왕을 사모한다며 소란을 피웠다. 여왕은 예불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였는데, 이 시간을 참지 못하고 죽었다. 지귀는 남의 집과 재산을 태우는 악귀가 되었고, 이후 사람들은 동짓날이 되면 악귀를 달래기 위해 팥죽을 끓여 집과 길에 뿌렸더니 악귀가 사라졌다고 한다. 동짓날 절에서는 팥죽을 쑤어 부처님 전에 올리고, 모든 대중과 이웃들이 함께 나누어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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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 청암사. 사미니승가대학이 자리한 곳. 내일이 동지다. 공양간 외벽에 동짓날 대중의 역할을 나눈 육색방六色榜이 걸린다. 대중들이 모이고, 깨끗이 씻은 팥을 가마솥에 붓는다. 공양간은 장작불로 온기가 돈다. 물과 함께 몇 시간을 끓여야 하는지 묻자, 혜명 스님은 질문 자체가 틀렸다고 했다. 팥 알갱이가 갈라지는 때는 특정 시간이 아니라, 장작불 세기와 물, 팥의 양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팥죽을 쑤는 데에도 불교가 보인다. 세 개의 가마솥에서 하얀 김이 피어오른다. 공양간에 팥 삶는 내음이 가득하다. 벽에 걸린 조왕신의 눈이 가마솥을 보고 있는 듯했다. 
 
가마솥에서 팥을 꺼내 큰 대야에 내놓고 두 손으로 으깬다. 뜨겁다. 찬물을 옆에 두고 손을 식히며 다시 으깨길 반복한다. 밑으로 팥 앙금이 쌓이고, 위로는 팥물이 고인다. 동짓날 새벽. 대중들이 육화료六和寮에 모여 새알을 만든다. 이제 기본 재료가 다 완성됐다. 제일 중요한 일이 남았다. 가마솥에 팥물을 붓고, 쌀을 넣는다. 장작불로 불의 세기를 조절한다. 쌀이 퍼지기 시작하면 팥 앙금과 새알을 넣어 함께 끓인다. 이때가 가장 중요하다. 새알이 떠오르자, 대중들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팥죽을 제때 퍼내지 못하면 새알이 터지거나 눌어 붙고, 팥 앙금이 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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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짓날 사시 마지. 부처님 전에 대중이 정성껏 만든 팥죽 한 그릇을 올린다. 전각 곳곳의 불보살께도 팥죽을 공양한다. 경내 곳곳을 돌아다니며 팥죽을 뿌려준다. 2017년 정유년丁酉年 한 해 모든 생명들이 행복하길. 청암사 냉장창고인 양진고養眞庫에서 동치미를 꺼내 먹기 좋게 썰어낸다. 신도들이 육화료에 모여 너나없이 팥죽과 동치미를 나눠 먹고, 집으로 돌아갈 때는 두 손에 팥죽을 들고 간다. 청암사 스님들은 쑨 팥죽을 지역의 마을회관과 노인정에 공양한다. 곳곳이 부처이다. 시방세계十方世界 불보살께 팥죽 한 그릇 공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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