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먹지 않을 것인가?

2017-01-09     불광출판사

무엇을 먹지 않을 것인가?


선재 스님의 달력에는 일정이 빼곡했다. 전국비구니회관, 한국사찰음식문화체험관, 봉녕사 등에서 매주 고정적으로 사찰음식을 강의하고, 각지에서 쇄도하는 요청으로 전국을 오가며 사찰음식의 정신을 가르친다. 사찰음식의 대가, 선재 스님이 사찰음식을 힘써 연구해온 지 30여 년. 사찰음식의 대중화와 발전에는 선재 스님의 노고가 있었다. 그리고 지난 2016년 11월 30일, 그 공로를 인정받아 대한불교조계종 사찰음식 명장으로 위촉되었다. 약이 되는 음식을 지어 공양을 올리는 선재 스님을 전국비구니회관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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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찰음식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다
선재 스님을 찾은 때는 전국비구니회관에서 진행되는 오전 수업과 오후 수업 사이의, 잠깐의 휴식시간이었다. 짧은 틈을 이용해 이야기를 나눌 만큼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지만 스님의 얼굴에는 지친 기색이 없다. 오히려 방금 오전 수업을 마치고 나온 스님의 얼굴에는 미소가 어려 있었고 말투는 대단히 기운차고 편안했다.

“그동안의 활동에 대해 종단으로부터 인정받은 것 같아 굉장히 기쁘고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제게 사찰음식 명장이라는 이름을 주셨지만, 진짜 명장은 산중에 계십니다. 사찰음식의 정신을 지키며 사찰음식을 드시고, 사찰음식을 통해서 수행을 이루고 계신 스님들이 진짜 명장이지요. 제게 명장이란 칭호를 주신 것은 사찰음식의 정신을 세상과 잘 소통하라고 주신 것이라 생각합니다.”

할 일 묵묵히 했을 뿐인데 주위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셔서 정말로 감사한 마음이라는 선재 스님. 스님은 1980년 화성 신흥사 성일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스물다섯, 한여름 햇볕이 뜨겁게 내리쬐던 날, 머리를 깎았다. 그 길로 스님이 되어 봉녕사승가대학을 졸업하고, 1994년 중앙승가대 사회복지과를 졸업하면서 졸업논문으로 「사찰음식문화연구」를 발표했다. 이 논문은 사찰음식에 대한 최초의 논문으로 불교계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선재사찰음식문화연구원을 설립해 사찰음식 연구·보급에 앞장섰고, 그런 노력을 인정받아 2011년 제26회 불이상 실천분야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동안 사찰음식은 산문山門에서 내려와 세간 사람들에게 힐링 푸드로서, 건강한 음식에 대한 중요성과 필요를 알리며 ‘잘 먹는 것’이라는 화두를 던졌다. 선재 스님의 사찰음식은 국내뿐만 아니라 미국, 프랑스 등 해외에도 널리 알려졌다. 지난 10월에는 한불수교 130주년을 맞아 프랑스에서 ‘1,700년 한국전통산사와 수행자의 삶’이라는 주제로 한국 사찰음식을 선보여 프랑스 각계 관계자와 교민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또한 프랑스를 대표하는 요리학교 ‘르 꼬르동 블루’와 ‘에꼴 페랑디’에서 특강을 열어 사찰음식의 우수성을 알리고, 한국불교의 세계화에 앞장섰다. 선재 스님에게 사찰음식을 배우고 가기 위해 한국으로 찾아온 해외 유명 요리사들도 다수다. 해외에서도 사찰음식을 주목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묻자 스님은 이렇게 답했다.

“서양의 음식은 자연을 배려하지는 않아요. 그런 그들에게 자연의 이치를 따르는 사찰음식은 현대인들의 건강에 대한 대안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지요. 또한 불교가 가지고 있는 음식관은 단순한 음식의 개념이 아닙니다. 사찰음식에는 철학이 있습니다. 이런 점이 해외에서도 사찰음식에 주목하게 되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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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식은 생명!
선재 스님은 자신의 건강이 나빠져 시한부를 선고 받았을 때도 사찰음식으로 몸을 다스렸다. “어떤 사찰음식을 먹으면 건강을 되찾고 스님처럼 활기차게 일할 수 있느냐?”고 비법을 묻자, 스님은 “좋은 것을 먹기 전에 가장 먼저 나쁜 것을 버려야 한다.”며 운을 떼었다.

“부처님께서는 집안에 어려운 일이 있거나 몸이 아파서, 수행이 안 돼서 상담을 하러 온 이들에게 먼저 이렇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무엇을 먹고 사십니까?’ 음식은 생명입니다. 나와 우리의 생명과 정신의 원천이 되지요. 음식이 우리에게 좋은 생명 에너지를 주려면 좋은 재료로 만들어야 합니다. 이 음식이 어디에서 왔는가를 살펴야 해요. 땅의 생명, 물의 생명, 땅 위에서 자라는 식물의 생명, 동물의 생명. 그런 생명들이 맑고 건강할 때 우리도 맑고 건강할 수 있어요. 

음식에는 나의 생명과 자연의 생명, 모든 생명이 함께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음식의 유통과정도 길고, 첨가물을 넣어 만들기도 합니다. 음식은 만들어놓은 순간부터 계속해서 본질을 잃어 가는데, 가공된 음식을 많이 섭취함으로써 우리의 본질을 잃어가는 것이 아닌가 걱정됩니다. 무엇을 먹기 전에 무엇을 먹지 않을 것인지를 먼저 생각해야 해요.”

스님의 사찰음식에 대한 철학은 몸과 마음이 둘이 아니듯 인간과 자연이 둘이 아니라는 깨달음에서 시작된다. 자연이 준 식재료에 감사하고, 식재료의 불성佛性을 살려 요리하고, 이 음식이 내게 오기까지 수많은 인연에 감사하며 먹을 때 음식은 가장 좋은 약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스님은 식食은 바로 삶이고, 무엇을 먹고 살고 있는지만 살펴도 고민의 해결점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몸소 겪어보았기에 누구보다 더욱 바르게 먹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음식이 넘쳐나는 시대. 그럼에도 몸이 아프고 마음이 병든 사람들이 늘어가는 지금, 음식에 대해 바르게 생각하고, 바르게 먹고, 바르게 만든다면 많은 문제들이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라는 말이다. 

“음식은 입으로 눈으로 손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으로 해야 해요. 우리가 부처님께 정성껏 공양 올리는 그 마음. 세상 사람들을 부처님처럼 생각하고 부처님께 공양 올리는 마음으로 음식을 지을 때 가장 훌륭한 요리사가 된다고 가르칩니다.”

선재 스님은 앞으로 사찰음식 전문가를 키울 수 있는 학교를 마련해 대중들에게 사찰음식과 사찰음식의 정신을 가르칠 수 있는 사찰음식 포교사를 배출하고 싶다는 원을 세웠다. 또한 3년 전부터 진행하고 있는 어린이 식습관 개선 뮤지컬 <그거 알아요? 음식은 생명!>을 지속적으로 무대에 올리고, 사찰음식 정신에 기초한 찬불가도 만들고 싶다고 했다. 

스님의 삶과 사찰음식에 대한 철학이 고스란히 담긴 에세이 『당신은 무엇을 먹고 사십니까』(불광출판사)도 곧 출간한다고 전했다.

“음식은 맛으로만 먹는 것이 아닙니다. 생각이 바뀌면 입맛이 바뀌어요. 반대로 말하면 생각이 바뀌지 않으면 입맛이 바뀌지 않습니다. 이번에 나올 책은 사람들에게 맛에 대한 개념을 바르게 세울 수 있도록 돕고자 했습니다. 음식에 대한 개념을 바로 잡아서 몸과 마음을 맑고 바르게 세울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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