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법(敎法), 행법(行法), 증법(證法)

초대설법|아짠 마하 부와의 수행법문-여섯 번째 법회(3)

2007-01-23     관리자

이 글은 태국을 대표하는 위빠사나 대선사, 아짠 마하 부와가 영국을 초청방문하여(1974년 6월) 설한 법문과 질의 응답들을 수록한 수행법문집, 『The Dhamma Teaching of Acariya Maha Boowa in London』 중, 여섯 번째 법회의 법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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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관찰은 지혜의 ‘숫돌’
붓다께서는 불법(佛法)을 3가지 방면으로 설하셨습니다.
첫째, 교법(敎法)은 수행법을 이해하고 습득하기 위한 (이론적) 가르침이며,
둘째, 행법(行法)은 붓다의 가르침에 의거한 수행,
셋째, 증법(證法)은 수행의 결실인, 명확한 통찰을 통한 앎(knowledge)입니다.
붓다 당대(當代)에 직접 가르침을 받은 선택된 제자들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오늘날처럼 빨리어 시험 같은 것을 치르지는 않았지만 수행을 위해 공부하여 대다수가 삼장(三藏: 經·律·論)에 밝았으며, 자부심을 북돋아주는 자격증은 없어도 오로지 수행의 향상만을 위해 용맹정진했습니다.
붓다께서는 제자들에게 자신의 몸의 각 부분들(머리카락, 몸의 털, 이빨, 손발톱, 피부)을 명상주제로 삼아 세밀히 관찰하도록 가르치셨습니다. 그것들은 비록 자신의 몸에 귀속되어 있기는 하지만 제 속성에 따라 끊임없이 일어났다 사라지면서 변화하며, 그 같은 속성을 자기 스스로 알아차리기는 불가능하므로 그것들 스스로가 제 속성을 드러내게 해 알아차릴 수 있도록 끊임없이 관찰해야 한다고 설하셨습니다 - 일례로 머리카락을 명상주제로 선택한다면 마음속으로 ‘머리카락’을 반복해 되뇌면서 동시에 주의를 머리카락에 고정시켜야 하며, 이때 머리카락에 대한 ‘알아차림’을 유지하도록.
그리하여 몸의 각 부분들이 불쾌한 속성을 스스로 드러내게 되면 환멸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것들을 부여안은 채 보물처럼 장식하고 애지중지합니다!)
▲ 사진 자인운
어떤 경우에는 몸의 부분들이 마치 눈으로 보듯 마음에 선명하게 떠오를 수도 있는데, 그때는 그것들이 마음에 고정될 때까지 명확하게 주시해야 하며 몸의 속성인 불쾌하고 역겨운 면을 바르게 관해야 합니다. 일례로 몸이 부패하는 것을 관함으로써, 몸이 지·수·화·풍의 기본원소로 분해되는 것을 관찰해도 좋습니다.
이런 식의 수행은 몸의 속성과 연관된 착각을 줄이고 제거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므로, 마음은 점점 더 고요하고 섬세해져 지혜가 성장하게 됩니다.
이처럼 붓다의 가르침은 몸의 각 부분들이 기이하게 작용하며 잘못되기 시작할 때 근심과 불안에 빠지지 않도록 잘 이끌어줍니다.
마음이 지혜로써 몸의 각 부분들을 관찰하게 되면, 몸의 3가지 속성인 무상(無常)·고(苦)·무아(無我)와 4가지 속성인 지(地)·수(水)·화(火)·풍(風)을 상세하게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레 몸에 대한 환멸을 느끼게 되므로 감각적 흥분도 감소되며 몸에 대한 집착도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존재와 현상에 대한 착각이나 집착은 다름 아닌 몸에 대한 착각이나 집착임을 알게 됩니다.
생명체가 본성을 깨우치지 못한 채 윤회 속에 떠돌게 되는 원인이 바로 몸인 것이며, 세상사의 모든 문제들은 이 몸에서 비롯되게 마련입니다.
몸을 있는 그대로 명확히 볼 수 있는 이는 세상과 모든 존재의 영역 또한 제대로 알게 됩니다. 몸의 본성인 무상·고·무아를 보게 되면 마음은 평온해지며, 이 같은 몸과 마음에 대한 깊은 관찰은 초연함과 궁극적 평온과 선정을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3법과 5가지 몸관찰
탄생과 늙음, 변화와 불확실성은 우리 마음속의 고(苦)와 마찬가지로 고통이며 결핍입니다. 때문에 붓다께서는 제자스님들에게 5가지 명상주제(머리칼, 몸의 털, 손발톱, 이빨, 피부)로 수련하는 법 - 그것들을 하나씩 차례로 순관(順觀)한 다음에 다시 되돌려 역관(逆觀)하는 - 을 가르치신 다음, 그 수행에만 집중하도록 숲속수행을 권장하셨습니다.
제자스님들은 언덕바지나 골짜기, 동굴 등에서 홀로 은거하며 수행에만 전념했습니다. 그런 고요하고 외진 곳들이 5가지(혹은 또 다른) 명상주제들(몸과 마음에 대한 명징한 앎으로 이끄는 수행의 근간이 되는)을 집중수련하기에 가장 적합했기 때문입니다.
교법(敎法)은 자신의 몸에 지니고 있는 것들을 주시하여 집착과 어리석음에서 벗어나게 하는 붓다의 가르침이며, 행법(行法)은 좌선수행과 경행, (앞서 언급한) 5가지 명상주제들을 탐구하는 수행 등의 실수행을 이릅니다
몸의 5가지 부분들을 관찰하는 수행은, 만물의 본성을 알게 하고 마음을 향상시키는 기술과 현명함을 체득케 하며, 마음을 평온하게 조성해 선정(禪定)조차도 계발할 수 있도록, 지혜(智慧)를 예리하고 강하게 단련시키는 ‘숫돌’과도 같습니다.
증법(證法)은 완벽한 해탈에 도달할 때까지 모든 성스러운 법들(sacca Dhammas)을 통찰하는 명확한 앎입니다.
이 3가지 법들은 상호 연관되어 있으며, 시종일관 도(道)와 분리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법의 결실을 얻고자 하는 이들은 이 3가지 법들 중 어느 하나에도 부족함이 없도록 적절히 수행해야 하며, 그렇게 거둔 성과들은 (예나 지금이나) 늘 확고부동하고 만족스럽게 마련입니다.
붓다의 가르침들은 붓다 당대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변함이 없습니다. 불법을 공부하고 수행하는 이들은 이 가르침이 혐오나 욕망, 분노, 미혹 따위가 야기될 때 몸과 마음을 어떻게 주시해야 하는지, 그 대응책을 제시해준다는 점을 유념해야 합니다. 그 같은 해로운 감정들은 우리의 삶 속에서 고통과 위험을 양산하며 끊임없이 발생하지만, 정작 우리는 마음속의 생각과 상(想)들에 신중하고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런저런 행위들이 해로움이나 이로움을 야기하는 것을 늘 알아차릴 수 있도록, 그 방법을 배워 익혀야만 합니다.
불법수행은 삶의 온갖 위험들로부터 자신을 지켜낼 수 있는 능력을 배양시켜주며, 이 같은 수행에 적합한 이들에게는 보다 많은 이로움을 안겨줘 마음의 평정을 계발하는 길로 이끌어주는, 다름 아닌 우리 자신에 대한 수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