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정도 경영] 기업의 목적은 행복이다

2017-01-09     이언오

기업의 목적은 행복이다

윤창의 사장

얼마 전 한 기업가의 회고록이 발간되었다. 광림기계 윤창의 사장의 『기업을 화두로 품다』이다.

얼마나 가슴에 사무치는 사연이기에 기업을 화두로 삼았을까. 대학 1학년 경제원론 첫 시간. 그는 담당 교수의 ‘기업은 이윤을 추구하는 경제단위’라는 말에 거부감을 느껴 강의실을 뛰쳐나갔다. 돈을 목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잘못이라 여겼던 탓이다.

40세 되던 해에, 다니던 대기업에서 나와 창업을 했다. 20년 사업을 하되 전반은 영리, 후반은 공익을 추구하기로 다짐했다. 그와 부인은 1개월간 단식과 명상을 하는 것으로 각오를 다졌다. 특장차라는 좋은 아이템에 기술력·영업력이 뒷받침되어 매출이 매년 2배씩 늘어났다. 창업 10년이 지나 산림경영을 위한 공익법인을 세우고는 본인 소유 주식을 전부 기부했다. 그때까지 업무를 도와주었던 부인은 퇴직금을 받아 천안의 한 사찰에 보시를 했다. 호사好事 뒤에 다마多魔인지, 경쟁사 음해와 권력기관의 감사에 시달리다가 부도를 냈다. 공익의 의도는 좋았으나 기업이 적자를 내서 좌초했다. 이후 그는 시골로 내려가 두문불출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사는 요즘이 오히려 행복하다고 말한다. 광림은 다른 회사에 인수되어 되살아났으며 여전히 건재하다.

기업은 이익을 내야 존속하고 세상 행복에 기여해야 의미를 갖는다. 이익과 행복을 함께 추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이익과 행복 중 하나를 택해야만 한다면 무엇이 우선인가. 기업은 이익을 내고 자금을 순환시켜서 살아간다. 사람으로 치면 이익은 영양분, 자금은 피에 해당한다. 영양분이 혈관을 타고 흘러 생명이 유지된다. 그래서 다들 먹는 것에 집착한다. 하지만 영양분이 쌓여 병들고 흐름이 막혀 죽는다. 생각의 탐욕처럼 몸의 식탐이 고통의 원인이 된다. 기업도 이익에 집착해서 고통을 자초한다.

사람은 어릴 때부터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고 배운다. 도덕교과서는 행복을 누릴 권리와 나눌 의무를 강조한다. 그런데 사람이 만든 기업은 행복이 아닌 이익을 목적으로 삼는다. 온전히 행복을 지향하더라도 고통이 필연적으로 따라온다. 기업이 고통을 주는 이익을 쫓고 있으니 당연히 행복하지 않다. 생각 없이 그러니 어리석고 알면서도 빠져 나오지 못하니 애처롭다.

톨스토이 소설 『안나 카레리나』의 첫 부분. “행복한 가정은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각자의 이유가 있다.”고 나온다. 수많은 조건이 충족되어야 행복하며 하나라도 빠지면 고통스럽다는 뜻이다. ‘제악막작 중선봉행 諸惡莫作 衆善奉行, 악은 개별로 여럿이며 선은 무리를 이룬다.’와 통한다. 기업은 이익을 포함해서 다양한 조건을 고르게 갖추어야 자신과 세상이 행복해진다. 이익은 최우선해야 할 목적이 결코 아니다. 행복 목적을 위해 충족시켜야 할 수단들 중 하나이다.

 

| 바로 보고 제대로 행할 때 이익은 행복의 수레

고통 중에서 생사 문제가 가장 절실하다. 불교는 죽은 사람은 살리지 못하지만 산 사람을 진정으로 살아 있게 한다. 죽지 않으려 들거나 죽지 못해 사는 것은 고통이다. 매 순간 육신은 죽어가지만 마음이 깨어 있으면 행복하다. 사람은 100년을 사는데 기업은 10년은 고사하고 몇 달 만에 사라지기도 한다. 창업이 어렵고 유지는 더 힘들며 부도는 큰 아픔을 준다. 하지만 사람 생사에 비해 기업 생멸은 훨씬 덜 심각한 사안이다. 탐욕과 집착 때문에 이익으로 인한 고통이 커 보일 뿐이다.

부처님은 힘들게 수행해서 깨달으셨고 이후 전법과 승가운영에 평생을 바치셨다. 고통·행복의 중도를 주창했지만, 정작 본인의 삶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고통 속에서 행복을 찾는 중도적 삶에 솔선하셨던 것이다. 고통과 행복은 공존하며 고통을 극복하는 과정이 바로 행복이다. 기업은 이익이 너무 많거나 적으면 그리고 창출·배분 방식이 잘못되면 고통이 된다. 동시에 이익을 내야 생존하면서 유익한 기여를 할 수 있다. 이익은 고통의 원인이지만 행복의 씨앗이기도 하다.

수행자는 계율로 생각·행동의 틀을 삼는다. 큰 도덕으로 방향을 통일하고, 구체적 약속으로 기강을 유지한다. 기업도 도덕을 공유해야 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약속을 지켜야 질서가 잡힌다. 예를 들어 이익에 따른 보상은 약속, 하위직·연장자 배려는 도덕이다. 약속을 지키고 도덕이 통해야 이익 창출이 효율적이고 배분이 공정해진다. 이익은 효율성·공정성을 가능케 하는 일종의 계율이다.

불경에는 보살이 중생 고통을 치유하는 장면들이 반복해서 나온다. 그중 압권은 『법화경』 「관세음보살보문품」. 신통력을 발휘해서 맹인을 눈뜨게 하고 청인의 귀를 열어준다. 지금은 의료기술로 해결할 수 있는 고통들이다. 기업이 이익을 내려고 개발하는 기술이 고통 치유에 기여한다. 이익감소를 각오하면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술을 베풀 수 있다. 접근만 달리하면 이익은 훌륭한 치유의 방편이 된다. 중독되거나 배척하지 말고 지혜롭게 쓰는 것이 관건이다.

불교의 이상은 아귀다툼에서 벗어나 불국토를 실현하는 것이다. 무아·무상을 깨닫고 자비심으로 보시를 행하면 지금 여기가 불국토이다. 기업의 이익극대화는 아귀의 행태이다. 무절제한 탐욕으로 경쟁사를 밀어내고 종업원을 쥐어짠다. 불국토를 꿈꾸는 기업은 자신이 고통 받으면서 주위에 행복을 전파한다. 종업원, 거래선, 자연과 상생하며 정당한 비용을 지불한다. 고객은 기업 덕분에 행복하다면서 기꺼이 대가를 치른다. 그 결과 적정 수준의 이익이 나고 생존이 무난하다.

승가는 수천 년 장수한 공동체의 전형이다. 불법이 뛰어나고 수행자들의 원력이 커서 원형을 지켜왔다. 불법에 맞게 살림을 살아서 수행·전법을 경제적으로 뒷받침했다. 승가의 관점과 대처 방식을 적용해서 기업의 오류를 바로잡아야 한다. 기업은 행복 증진에 매진하면서 이익을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한다. 경영자가 보상에서 양보를 해야 도덕적으로 존경을 받는다. 구성원은 헌신·희생에 동참하고 화합으로 성과를 배분해야 한다. 이익에 대한 강박증을 버리면 행복해지고 역설적으로 실적이 좋아진다. 비워서 채우고, 내려놓아 성취하는 이치이다.

 

| 불교가 중심에 서는 행복공동체의 동심원

틱낫한 스님은 “다음에 출현할 부처는 공동체의 모습일 것이다.”라 말했다. 공동체가 변화를 주도하리라는 예측,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바램이다. 이익 추구 조직인 기업이 너무 왕성해서 그 폐해가 크다. 행복을 지향하는 공동체들이 많아지고 제대로 역할 해야 세상이 조화를 회복한다. 최소한은 승가가 공동체 본분을 다하는 것, 최대한은 기업들이 공동체로 변신하는 것이다. 승가를 중심으로 불교기업과 일반기업이 동심원을 이루어야 한다. 불법의 부드러운 파장이 퍼져나가 세속 고통의 딱딱한 입자들을 통섭하기를 기대해 본다.

승가는 수행·전법을 통해 행복을 발신해야 한다. 약육강식 바다에 떠있는 고고한 섬으로서 소임을 다해야겠다. 진리의 힘으로 청빈 생활을 해서 모범을 보여야 한다. 무소유여서 비용이 제로이고 세속이 받는 감화는 대단히 크다. 물질을 비우고 도력으로 흡인하면 보시가 자연스럽게 흘러들어온다. 보시의 전제는 출가자와 사찰 공간이 재가자를 조건 없이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다. 신심으로 불사를 일으키고 집행해야 한다. 외형에 치중하거나 잿밥과 유루복有漏福에 기대서는 곤란하다.

불교기업은 행복이 목적이고 이익은 수단이다. 일반기업 기준으로 거꾸로 경영을 한다. 이익을 매개로 고통 속에서 행복을 지향하는 기업보살이라 하겠다. 착한 경영으로 이익을 내므로 어려우면서 보람이 있다.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마을기업 등에서 성공 경험들이 쌓이고 있다. 사찰·단체가 경영체로 변신하는 사례도 생겨나는 중이다. 중국의 소림사는 쿵푸를 브랜드화하고 관광, 교육, 미디어로 사업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불교기업의 시범사업으로 간병서비스를 추진하면 어떨까. 재가자가 직원 및 봉사자로 참여하고 유휴시설을 활용한다면 낮은 비용으로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고령의 재가자·출가자가 참여하면서 도움도 받는 서비스이다.

일반기업이 이익보다 행복을 우선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당장 생존이 위협을 받고 주위 공감을 얻기 어렵다. 하지만 고통이 심하거나 생존에 여유가 있는 경우라면 행복경영을 시도해볼 만하다. 부도와 같은 최악 상황에서는 의도적으로 행복하게 처신해야 일이 풀려나간다. 스트레스가 심하면 청소를 하고 일감이 없으면 학습을 장려하는 식이다. 이익의 관성에서 벗어나면 무리와 낭비가 드러나서 기업 체력이 건강해진다.

지금 한국 기업들은 고통의 사면초가 상태이다. 사회는 비우호적이고 구성원은 불신하며 경영자는 어찌할 바를 모른다. 이익만 중시하고 그것도 나쁜 방법으로 추구해서 받는 업보이다. 여건이 어렵고 앞이 안 보일수록 근본을 깨달아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 출발점은 행복을 기업 목적으로 설정하는 것이다. 관점 전환과 행동 지속이 어려운 만큼 자세는 겸손해야겠다. 시도 자체가 의미 있으며 성공하면 감동이 배가된다. 불법과 승가공동체에 이미 행복경영의 해답이 나와 있다.

 

이언오

이언오 소장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KAIST에서 경영학 박사를 받았다. 삼성경제연구소 전무와 부산발전연구원장을 지냈으며, 지금은 바른경영연구소를 이끌고 있다. 대학 때부터 불교를 공부하였으며, 불교와 경영을 오랫동안 연구하면서, 불교와 경영의 접목을 모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