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문] 모두 놓아버려라 / 환성 스님

2016-12-30     환성 스님

모두 놓아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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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란 무엇일까요? 그 행복은 얻을 수 있는 것인가요?
이 문제는 아마도 인류시원人類始原 이래 끊임없이 제기되어온 그러나 명쾌한 해답을 찾지 못한 문제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그 해답을 찾기 위하여 사람들은 많은 일을 꾀해왔고 그 결과물이 우리가 맞이한 오늘의 현실이라고 말한다면 부정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 삶에 대한 욕망과 환상
 
자세히 살펴보면 오늘보다 밝은 내일을 욕망하는 것은 비단 인간뿐만이 아닙니다.
 
이웃집 강아지도 그러하고 밀림의 맹수도, 개천의 물벌레도 마찬가지지요.
 
그뿐 아니라 한 알의 씨알을 떨어뜨리기 위하여 긴 가뭄과 장마를 견뎌내는 이름 모를 작은 풀(오만스런 인간들에 의하여 억울하게도 잡초라고 치부되지만) 한 포기에서도 행복에로의 욕구는 발견됩니다.
 
만물의 본능이랄 수 있는 행복에로의 욕구가 없었다면 이 우주에 남아 있을 게 아무것도 없다고 말한다면 너무 지나친 비약이 될까요?
 
아무튼 만물은 행복하고자 욕망하며 그 욕망이 지금의 그 존재 그 모습을 있게 했다고 보는 것은 과히 어긋나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문제는 대다수의 인간들은 만 년 전에도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없었고 눈부신 과학의 발달을 이룩한 오늘날의 인류도 만족할 만한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는 데 있습니다.
 
그러니 다음날 이 욕구가 충족된다는 믿음을 가질 수 없음도 자명한 일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많은 원인이 있겠지만 인류가 추구해온 행복이라는 가치관이 제대로 설정되지 못했다는 것이 가장 큰 요인일 것입니다. 너무 외향적이고 말초적인 물량충족에 치우쳐 있었다는 말이죠. 이제까지의 가치관 자체가 인류가 지향하는 행복을 방해하는 큰 병입니다. 
 
이 병을 치료하고자 한다면 이 병을 만들기까지 걸린 시간과 인간 지능이 쌓아올린 금자탑이라고 하는 물질문명을 이룩하기까지 쏟은 그 이상의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하지만 진정한 행복을 위해서는 이 병은 반드시 치유되어야 합니다.
 
이제까지 욕망하고 추구해온 가치관들이 수정되지 않는 한 인류의 최대 염원인 행복과 평화는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법조계에 출세해야만 행복할 줄로 착각한 사람을 한 예로 생각해봅시다.
 
원하는 법학대학에 갔고, 단잠 한번 자보지 못하고 친구들과 여유로이 자연과 어우러져 보지도 못 한 채 공부하여 법관의 자리를 얻었습니다. 그 기쁨은 형언할 수 없겠죠. 그러나 그 성취감, 행복감은 오래 가지 못할 것입니다. 그 자리만 얻으면 행복하리라고 기대했는데 현실은 너무나 다른 고통의 연속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욕망이라는 것의 속성은 현재에 늘 부족한 것이니 더 올라가야 하고 더 올라가자니 동료를 무자비하게 밟아야지, 상사 비위 맞추어야지, 청탁이 들어오니 그 유혹을 뿌리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지, 상사의 부당한 지시를 거부할 수도 없으니 자기 의지대로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니 늘 불안하고 초조하고 부족하게 느낍니다. 청운의 꿈이었던 사회정의와 봉사 따위를 떠올려 보지만 그 속의 풍토와 자신의 허황된 욕망은 갈등과 불안만 조장합니다. 이것은 한마디로 불행입니다. 이 세상에 가장 불쌍한 사람은 자기 의지대로 살지 못하고 피동적으로 사는 사람일 것입니다. 많은 인간들의 삶이 위에서 살펴본 예의범주에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니 세상이 온통 불행하다는 신음소리입니다. 그럼에도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고 그칠 줄도 모르고 가던 방향으로 계속 달려가니 가련한 일이죠.
 
| 행복의 길
 
이제 방향을 전환해야 합니다. 삶의 질에 대하여, 가치관에 대하여 의식의 대전환을 시도해야 할 때도 되었습니다. 
 
간단합니다.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과감하게 놓아버리면 가능합니다.
 
원망, 슬픔, 사랑, 미움, 호오미추好惡美醜 선악시비善惡是非 따위를 다 놓아버려야 합니다.
 
최고의 가치로 착각한 나머지 만난萬難의 고통을 감수하면서 쟁취한 재물, 명예, 지위 따위도 다 버려야 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새롭고 올바른 길, 진정한 행복이 열립니다.
 
이보다 더 간단한 방법이 또 있을까요?  
 
귀중한 공양물을 세존께 드리고자 두 손으로 공양물을 받들고 오는 제자에게 부처님께서는 “내려놓아라!” 하셨습니다. 제자는 공손히 부처님 앞에 공양물을 올렸습니다. 그러한 제자에게 부처님은 또다시 “내려놓아라!” 하시니 제자는 “저의 손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무엇을 또 내려놓으라는 말씀입니까?” 하고 여쭙자 부처님은 또 재삼 “내려놓아라!”라고만 말씀하셨습니다. 그 찰나 제자는 놓아버리라는 진정한 의미를 깨달아 아라한과를 얻었습니다.
 
또 선사들께서도 도를 묻는 제자에게 “놓아버려라, 놓아버려라!” 할 뿐 일체 다른 가르침을 주지 않음으로써 제자의 안목을 열어주기도 합니다. 
 
혹자는 세간에서 어떻게 출세간의 고준한 수행자처럼 살 수 있겠느냐고 반문할 것입니다.
 
대답은 “놓아버려라!” 이것뿐 다른 답은 없습니다.
 
 “놓아버려라!” 그러면 행복이 보이리니, 그대로 행복하리니!  
 
너무 어렵습니까? 
 
그렇다면 또 한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욕망의 방향 전환입니다.
 
욕망은 생존의 씨알이니 욕망 자체를 탓하는 것은 불우이웃을 조장하는 어리석음이 됩니다. 
 
“욕망하라! 치열하게 욕망하라. 다만 욕망이 자기중심이 되면 탐욕이 되고 탐욕은 반드시 고통을 불러오니 욕망의 방향전환을 꾀하라.” 
 
이웃중심의 욕망, 바로 원력입니다. 
 
자기중심적인 욕망인 탐욕은 크면 클수록 고통도 커지고 이웃중심의 욕망인 원력은 크면 클수록 행복이 늘어납니다.
 
존재계의 행복을 향한 자비원력이야말로 진정한 ‘놓아버림’입니다. 
 
자! 이제 숨을 고르고 지나온 삶을 깊이 되돌아봅시다.
 
불행과 행복의 길이 훤히 보이시죠?
 
‘놓아버려라!’ 
 
‘완전히 놓아버려라!’
 
‘원력하라!’ 
 
‘치열하게 원력하라!’       
 
                         
 
법문 환성 스님
1968년 수덕사에서 벽초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수지하고, 1972년 법주사에서 석암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1987년 영평사를 창건했다. 공주시 사암연합회 회장(1,2,5대)을 역임했으며, 청소년 선도활동, 공주교도소 재소자 교화, 군불교 후원 등으로 대한민국 국민포장과 국무총리 표창 2회, 법무부장관 표창 2회 등을 받았다. 현재 세종시 사암연합회 회장, (사)금강청소년문화진흥원 이사장, 공주교도소 종교위원, 세종영평불교대학 학장, 세종시 경찰서 경승, 세종시 종촌종합복지관 운영사찰인 영평사 주지 소임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