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형제는 꼭 만나야 한다.

빛의 샘/소중한 만남

2007-07-01     관리자
 

 


 이제 막 1990년 새해가 밝았다. 흔히들 말하기를 새해는 희망에 찬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 민족은 올해도 그저 기다림에 찬 새해를 맞았을 뿐이다. 무슨 기다림인가? 통일이라는 위대한 만남에 대한 기다림 말이다. 이렇게 우리 민족이 기다림으로 새해를 맞아온지도 벌써 45년째다. 만일 우리가 통일에 대한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가지고 새해를 맞았다면 그땐 확실히 희망에 찬 새해일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가슴아프게도 우리는 그런 역사적 대프로그램을 갖지 못한 채 또 새해를 맞았다. 지난 마흔 네 번에 걸쳐 맞은 새해가 몽땅 그랬듯이 1982년 여름 TV를 통해 이산가족의 만남을 보고 우리 온 겨레는 얼마나 울었던가. 그 때의 만남은 고작 남쪽 안에서 만의 만남이었다. 진정한 민족적 만남은 남과 북과의 만남이 아니겠는가.

 우리가 큰 길을 가다가 무심결에 발길에 채이는 어느 돌멩이 하나, 바지 가랭이에 스치우는 이름없는 풀잎파리 하나에도 우리는 인연을 느낀다. 많은 돌멩이와 풀잎 중에 하필 내 발길에 채이고 옷자락에 스치우는 그것들과 어찌 인연이 없겠는가. 하물며 인간의 만남에  있어서랴. 더욱이 남북 혈육은 인연이 끊겨서 45년이라니....... 이건 생각만 해도 가슴이 메이고 아프고 찢어진다.

 오늘도 틀림없이 살아 계실 -이 외아들을 만나지 않고는 정녕, 차마 눈을 감을 수 없으니까 -필자의 어머님은 금년으로 꼭 아흔 넷이시다. 불효자식은 일흔 네 살 45년간 줄곧 만나지 못하는 한을 안은 채 오늘에 이르렀다.

 이것이 바로 오늘 남북 일천만 이산가족의 현실이요 실정이다.

 1989년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고 미소정상은 냉전을 걷어차고 동서화해를 선언한 역사적인 해였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후 우리는 지금 38장벽이 무너지기를 얼마나 가슴졸이며 기다리고 있는가.

 어떻게 하면 38장벽이 무너질까.

 어떻게 하면 이북형제들을 만나게 될까.

 지금은, 우리가 남이 어떠니 북이 어떠니 하고 지난 날의 시시비비를 따질 계제도 아니고 시간도 없다. 지금은 과감한 냉전청산과 화해만이 요구되는 시대다. 화해해야 만이 남북에 흩어진 혈육이 만날 수 있지 않겠는가. 이미 죽어간 사람은 무덤에서라도 만나고 산 사람은 주름진 얼굴을 비벼대며 만나야 하지 않겠는가.

 20세기 마지막 10년이 시작되는 이 해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의 첫째 과제도 역시 남북형제의 만남이 아니겠는가.

 최근 우리 불교계에서 북쪽 불교계와 접촉하려는 노력이 활발하다는 것은 참으로 고무적인 일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필자는 지금으로부터 1200여년 전인 7세기 중엽 우리 고승들의 장한 삼국통일 의지를 떠올려 봤다.

 고구려의 보덕, 백제의 관륵, 신라의 원효, 표훈 등의 고승이 금강산 보덕암, 정양사, 표훈사로 자리를 옮겨가며 중생제도의 대원칙에 서서 삼국통일의 도량을 닦았다는 역사적 대교훈 이다.

 머리가 숙연해진다. 참으로 우리는 얼마나 슬기롭고 자랑스러운 조상을 모시고 있는가 얼마나 위대한 조상인가. 분단 45년이라는 슬픈 현실에 고뇌하고 있는 오늘의 우리 후손들에게 인자하면서도 엄한 눈초리를 보내오는 듯하다. 남북통일 이라는 역사적 민족적 책무에 우리들의 두 어깨가 더욱 무거워짐을 느낀다.

 다시 말하거니와, 이제는 탈냉전,화해의 시대다. 민족화합과 통일이라는 대명제 아래 현단계에서는 아니 영원이면 어떠냐. 이념도 주의도 증오도 공포도 이제는 허공중에 날려 보내야 한다. 우리가 역사적 민족적 중생적 민주적 대의 앞에 굳건히 서기만 한다면 너 내가 화해 못할 이유도 근거도 없다. 서로 용서하고 이해하고 양보하고 형제적 자비(사랑)이면 족하고도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