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안의 최순실들

2016-12-01     불광출판사

우리 안의 최순실들


언제나 그렇듯이 진짜는 감춰져 있다. 최순실들이 만들어가는 각종 인물들과 사건들 중에 우리 불교인들이 가장 기억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대통령을 둘러싼 국정농단도 그러하지만, 그 수많은 인물과 사건들 속에서 불교인으로서 반드시 꺼내야 할 장면들이 있다.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킨다. 무엇을 봐야 하는가? 손가락을 본다. 세간의 눈이다. 달을 봐야 한다고 말한다. 출세간의 눈이다. 세간 없는 출세간은 없다. 달과 손가락 사이에 연결된 수많은 인연들이 있다. 인因과 연緣은 서로서로 원인과 결과로 엮어진다. 그 인연들의 엮임에 나와 우리가 있는 것이다. 손가락과 달을 치울 때 진짜가 보인다. 
 
연못에 잠긴 돌을 두고 ‘돌아, 떠올라라. 돌아, 떠올라라.’ 하면 떠오를 수 있는가. 없다.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없다고. 그런데 최순실들은 돌이 떠오를 수 있다고 말한다. 돌이 떠오른다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돌이 떠오를 것이라고 믿었다. 그 머리 좋다는, 대통령 주변의 엘리트들도 그렇다. 그들이 수십 년간 쌓아온 지식들도 소용없게 된다. 허망한 일이다. 인간의 어리석음은 이렇게 한순간에 드러날 수 있다. 최순실들 중에는 돌이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이들도 있다. 그들이 또 다른 최순실들이 된 것은 최순실들을 통해 얻는 돈과 권력 때문이다. 처음에는 불편했고 마음이 흔들렸겠지만, 중심을 잃은 마음의 변덕은 탐욕으로 기울기 마련이다. 잃어버릴 것보다 얻을 것에 더 마음이 간다. 탐심貪心이다.     


어처구니가 없지만, 최순실들도 분노한다. 황당하게도 그 분노의 대상은 국민이다. 국민을 혐오하는 것이다. 국민을 개와 돼지로 보는 이들이다. 이 분노는 탐심과 치심癡心이 합쳐지면서 미치광이처럼 일어난다. 물론 그들은 모른다. 삼독심三毒心은 이를 알아차릴 때 이미 삼독심이 아니다. 알아차리지 못하기 때문에 삼독심인 것이다. 며칠 뒤에 드러날 거짓말을 거들먹거리면서 거리낌 없이 말한다. 스스로를 옥죄는 일들을 하면서 점점 수렁으로 빠져들어 간다. 답이 없는 막다른 길과 마주하게 된다. 이렇게 분노와 혐오는 삶을 퇴행시킨다. 그들의 국민에 대한 분노와 혐오는 오랫동안 인과 연의 행위로 이어진 것이다. 이 인연의 엮임을 들여다봐야 한다.
 

우리 불교 교단을 보자. 우리 안에 최순실들은 없는가. ‘돌아, 떠올라라.’ 하면서 불자들의 퇴행을 부추기는 지도자들은 없는가. 돌이 떠오를 수 없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 돌이 떠오를 수 있다고 허망한 논리를 들이대며 수군거리는 불교 지식인들은 없는가. 외피에 정교하게 ‘불교’라고 쓴 채 모습만 같고 행위는 바라문이나 세속의 그들과 다를 바 없지는 않는가. 붓다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돈과 권력의 길을 두리번두리번 좇아가지는 않는가. 최순실들이 국민들과 연결하고 소통하지 않은 채 그들만의 공간을 만들어갔듯이, 불자들과 연결하고 소통하지 않은 채 그들만의 돈과 권력의 공간을 만들어가는 교단 내에 최순실들은 없는가. 
 

스님, 가장 다급한 일이 무엇입니까. 선사가 답한다. 오줌 좀 눠야겠네. 이런 작은 일도 이 늙은 중이 스스로 해야 되지 않겠나. 선禪의 경책이다. 그런 것이다. 누구도 해줄 수 없는 것이다. 돌은 떠오르지 않는다. 최순실들을 만들어낸 수많은 인과 연은 어떻게 엮여져 있는가. 삿된 인과 연은 끊어내고, 바른 인과 연은 늘려나갈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 지혜롭고 자비로운 우리 불교인들이 풀어야 할 숙제다. 오래된 숙제. 꺼내고 싶지 않아 미뤄둔 숙제다. 버릴 수 없는 숙업宿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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