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세계

2016-11-07     임채욱

화엄세계

 
해인사에는 해마다 두 번 연꽃이 핀다.  
해인사 장경판전의 수다라장에 피는 이 연꽃은 
일 년 중 춘분과 추분에만 잠시 피었다가 홀연히 사라진다. 
빛과 시간 그리고 수다라장의 조화가 빚어내는 연꽃이다.
이 연꽃을 만나기 위해 
올해 추분에 맞춰 해인사로 달려갔다. 
하지만 날씨가 흐려 하늘만 원망한 채 하루를 보냈다.
그 다음날도 마찬가지였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 춘분까지 6개월을 기다려야 한다.
셋째 날도 아침부터 구름이 하늘을 잔뜩 가리고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카메라를 메고 수다라장으로 향했다. 
오후 3시가 되자 구름 사이로 햇살이 잠시 비추는 듯하더니
다시 해가 구름 속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순간 한숨이 나왔다. 
  
잠시 침묵의 시간이 흘렀다. 
그런데 갑자기 밝은 햇살이 수다라장을 환하게 다시 비추기 시작했다. 
그 순간, 그토록 기다리던 연꽃이 어둠속에서 신비롭게 피어나는 게 아닌가!
셔터 소리는 심장이 두근거리는 속도로 점점 빨라졌다.
그렇게 찰나의 시간이 잠시 흐르고
때마침 스님 한 분이 나타나셨다.
그러고는 정중히 합장을 하셨다.
모든 것이 하나가 되는 순간 
수다라장과 빛과 스님이 삼위일체가 되어 
세상에서 가장 장엄한 연꽃을 피웠다.
화엄세계가 피어난 것이다.
 
 
1.png
 
2.png
 
3.png
 
4.png
 
5.png
 
6.png
 
 
 
 
 
 
임채욱 
서울대학교 동양화과를 졸업한 후에 작품 활동을 사진으로 시작했다. 2016년 인터뷰 설악산전을 비롯해서 국내외 총 14차례의 개인전을 열었다. 주요 그룹전으로는 환기미술관의 ‘1970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이후(2015)’외 50회 이상 국내외 그룹전에 참여하였다. 특히, 2014년에는 영국의 사치갤러리와 Prudential이 공동주최한 제1회 The Prudential Eye Awards(싱가포르)에서 아시아 20인의 작가에 선정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한국의 산을 주제로 한민족의 정체성을 어떻게 드러낼 것인가를 화두로 삼고 사진작업을 하고 있으며 평면 사진에서부터 한지에 프린트한 사진을 구겨서 만든 입체 및 설치 영상까지 실험적이고 융합적인 조형세계를 선보이고 있다.
 
 
 
ⓒ월간 불광 -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