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염불 수행 정용식 불자

관세음보살 한번 실컷 불러보세요

2016-11-07     김우진

 

관세음보살 한번 실컷 불러보세요
 
염불 수행 정용식 불자
 
 불교를 대표하는 이미지는 무엇일까. 시각적으로는 불상이나 사찰, 스님들을 떠올릴 것이다. 그렇다면 청각적 이미지는 무엇인가. 바로 염불이다. 힘차게 관세음보살을 염송하는 스님들과 그 뒤를 따르는 대중들의 목소리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생활하면서 늘 관세음보살을 염송하는 정용식(64) 불자. 무엇이 그를 염불로 이끌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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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망 속에서의 발심
“할머니부터 어머니까지 불교를 믿으시고 절에 다니셨지만, 저는 일정을 잡아 절을 찾거나 하지 않았죠. 특별히 뭐 가슴에 와 닿는 게 없어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스스로 남에게 피해를 주고 살지 않았고, 열심히 산다고 살았기에 그러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IMF 경제외환위기가 터지던 전후로 집안에 우환이 생기고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설상가상으로 하던 일이 잘 안되어 빚 독촉과 차압이 들어왔습니다. 경제적으로 심적으로 많은 문제가 생기니까 정말 힘들었죠. 삶에 회의감도 들었습니다. 처음으로 마음을 내서 절을 찾았습니다. 어머니가 다니시던 남양주 봉인사를 무작정 찾아가니 스님이 날마다 ‘관세음보살’을 부르라고 하셨습니다. 일하러 나가면서, 집에 돌아오면서 절을 찾아갔습니다. 삼배도 할 줄 모르는 불자였지만 그렇게 계속 절을 찾아가서 끊임없이 관세음보살만을 불렀습니다.”
 
염불은 예부터 불자들이 가장 쉽게 따라할 수 있는 수행이다. 남녀노소 누구나, 어느 곳이든 장소에 관계없이 가능하다. 스님이 염불을 권한 것도 초보자가 접근하기에 가장 좋기 때문이다. 
 
빚에 허덕이며 살던 어느 봄이었다. 그날도 봉인사를 찾았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스님이 알려준대로 염불하는데 유난히 다른 기분이 들었다. 평소와 똑같은 날이었는데 봉인사 앞에 들어설 때부터 흩날리는 바람, 내리쬐는 햇빛, 옆에 핀 꽃과 나무 그늘까지 너무나 아름다웠다. 그길로 곧장 차를 타고 아내에게 달려갔다. 아내를 데리고 함께 봉인사에 와 툇마루에 앉아 한참을 이야기 했다. ‘우리가 왜 이렇게 힘들게 살았을까. 무엇 때문에 고생을 했는가. 조금 천천히 살아도 되는 것 아닌가.’ 이런 저런 생각을 나누었다.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봉인사에서 염불을 시작하면서 걱정거리가 조금씩 사라졌다. 빚에 대한 압박감과 앞만 보고 달리던 과거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염불을 하기 전에는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하여 복권에 당첨되게 해달라고 부처님께 빌었었다. 빚 독촉으로 쌓인 정신적 압박감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했던 삼천 배는 아무런 변화를 주지 못했다. 일주일간 이만 천 배를 했다. 온몸이 산산조각 날 것 같았지만, 육체적인 고통보다 정신적인 피폐함이 컸다. 복권 당첨으로 일확천금해 이 지난한 상황을 빠져나가고 싶었던 마음뿐이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모두 허망한 바람이었다. 고통의 경험은 스스로 돌이켜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었고, 적게나마 마음을 내려놓는 발판이 되었다. 조금은 안정된 마음으로 부처님을 찾았고, 더욱 염불에 집중할 수 있었다. 염불을 할수록 날카로운 마음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처음 스님이 알려주신 대로 염불을 이어갔다. 
 
“살다보니 도저히 내 생각으로는 문제 해결이 안 될 것 같았던 빚을 다 갚게 되었습니다. 주위 사람들의 조언을 듣고 천천히 하나하나 정리하면서, 염불하며 마음을 내려놓고 흘려보낸 시간이 10년이었죠. 만약 부처님께서 삼천 배 한 걸 보시고 복권이 당첨되게 해 주셨으면 아마 이런 기쁨과 행복을 느낄 수 없었을 것이에요. 불자로 잘 살 수도 없었을 것 같고,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며 아름다운 것들을 느낄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 모든 것을 이루는 힘
불교 공부와 수행이 더 필요하다고 느낀 그는 재가 신행단체인 동산반야회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교리 공부도 하면서 염불만일회 단장으로 염불 수행을 더 깊이 이어갔다. 간경, 절, 사경, 참선 등 다른 수행보다 처음 관세음보살 외던 염불 수행이 스스로에게 제일 잘 맞았다. 염불인 줄도 모르고 스님이 말하신 대로 하던 것이 습習이 되어 있었다. 염불을 하니 다른 생각들이 사라지고 마음이 편안했다. 언제든 생각나면 할 수 있었다. 마음속에서 다른 생각이 일어나면 염불을 했다. 운전하면서도 염불하고, 일하면서도 할 수 있었다. 
 
“처가가 진주라서 차를 타고 내려가면 시동 걸 때부터 나무아미타불을 외워, 내릴 때까지 부처님을 부릅니다. 그러면 대통령 경호차량처럼 여래신장이 우리 차 주위에서 보호해준다는 느낌이 들어요.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자기 이름 들리면 돌아보는데 하물며 부처님 명호를 부른다면 부처님께서 가피를 내려주시지 않을까요. 천원이라고 쓴 백지와 일억이라고 쓴 백지를 볼 때 두 백지를 생각하고 대하는 태도가 다르지 않습니까. 나무관세음보살도 소리에 부처님 명호를 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소리라는 것에 가치를 입히니 힘이 생긴 것이죠.” 
 
집에서 염불을 할 때는 목탁을 치거나 요령을 흔들기도 한다. 소리가 크면 이웃에게 혹여나 피해가 갈까 고민이었는데, 마침 목탁 채에 딱 맞는 스펀지를 발견해서 끼웠더니 전혀 소리가 안 났다. 집과 일터를 오가며 혼자 관세음보살 염불은 항상 하지만, 집에서 목탁 치는 것은 매일 하지 못한다. 그래서 일터에서 잠깐 쉬러 집에 올 때나,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목탁을 치며 염불하려고 노력한다. 스펀지가 목탁을 치는 느낌을 살리면서 소리는 줄어들게 도와줘, 홀로 염불하기 좋았다. 창고로 쓰던 방에 부처님을 모시고 방석 하나 깔고 혼자서 부지런히 염불했다. 산란했던 마음이 안정되고 온갖 번뇌는 가라앉는다. 염불을 하면 염불하는 나를 보게 된다. 세상의 모든 인연들에게 감사의 마음이 올라온다. 염불한 이후 번뇌에 가려 보지 못했던 지혜가 종종 나타나기도 한다.
 
과거 그의 원은 빚을 다 갚는 것이었다. 그의 바람은 복권을 통해서가 아니라, 부처님 가피로 성취되었다. 한순간의 운이 아니라 오랜 인연이다. 모든 것이 인연이라는 부처님 말씀처럼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수많은 인연들이 함께 만들어낸 일이다. 힘든 시절에는 밤에 눈을 감고 잠을 청할 때 내일 아침이 오지 않았으면 했다. 지금 생각하니 그렇게 힘든 시련도 모두 그때 인연이다. 그리고 그 인연으로 불법을 새롭게 만났다. 지금은 새로운 원을 세웠다. 염불을 통해 살아서 공덕을 쌓고, 죽어서는 극락에 가기를 발원했다.
 
“염불하는 게 제 인연인가 봐요. 앞으로 염불 열심히 해서 걱정 덜어내며 행복하게 살고 싶습니다. 관세음보살.”
 
정용식 불자의 입에서 ‘관세음보살’이 따라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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