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에 만족하지 말고, 공들여 수행하라

2016-10-05     불광출판사

깨달음에 만족하지 말고, 공들여 수행하라

 
효봉은 한평생 조주趙州의 ‘無 자 화두’를 참구하였던 선사禪師였다. ‘내가 말한 모든 법, 그거 다 군더더기’라는 열반 때의 말처럼 언어도단言語道斷 ・심행처멸心行處滅의 경지인 선禪의 세계는 체험의 세계이지 말로서 설명하거나 규정지을 수 없는 경지이다. 

| 진정한 간화선 수행자, 효봉
효봉의 행적과 법설을 살펴볼 때, 다음의 몇 가지의 특징을 살필 수 있다. 

첫째, 효봉은 화두를 타파하고도 열반에 드는 순간까지 ‘무 자 화두’를 놓지 않았다. 즉 그에게 있어서 ‘화두’를 드는 것은 깨닫기 위한 도구일 뿐만 아니라, 깨달음 이후에도 마음을 성성惺惺하게 하는 수행법이라 할 수 있다. 이는 깨침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간화선 수행이 필요함을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둘째, 정혜쌍수定慧雙修를 강조하였다. 일반적으로 정혜를 쌍수하는 것과 간화선의 방법이 다른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런데 효봉에게 있어서는 정혜를 쌍수하는 것과 간화선 수행이 다르지 않음을 말하는 것이다. 즉 간화선과 돈오점수, 간화선과 정혜쌍수 사이에 아무런 모순이 없다고 효봉은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간화선은 남송대 대혜종고(大慧宗杲, 1089~1163)에 의하여 주창된 수행법으로 ‘화두’를 드는 선수행법을 말한다. 우리나라에는 고려시대 보조지눌에 의하여 수용되어 현재 조계종의 주된 수행법으로 정착되어 있다. 간화선 수행자는 발심 이후 스승에게 화두를 받는다. 이후 화두를 참구參究하게 된다. 의정疑情이 쌓여 의단疑團이 형성되어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된다. 화두를 의심해 들어가는 것이 의정이며, 간절히 의심해 들어가다 보면 의정이 하나의 덩어리가 되어 뭉치는데 이것을 의단이라 한다. 나중에 의단만이 홀로 드러나 화두와 내가 하나가 되어 서로 나누어지지 않고 한 몸을 이루게 된다. 의심 덩어리가 불덩어리가 되어 다른 것이 끼어들 틈이 없는 상태를 타성일편이라 한다. 화두가 뚜렷한 한 조각을 이루는 것이다. 

이렇게 화두 참구의 과정은 화두와 내가 하나가 되는 삼매의 경지에 들어간다. 화두 삼매는 그 철저함의 정도에 따라 동정일여動靜一如, 몽중일여夢中一如, 오매일여寤寐一如의 단계로 나눌 수 있다. 화두가 움직일 때나 가만히 있을 때나 한결같이 들리는 것을 동정일여라 하고, 화두가 깨어 있을 때나 꿈꿀 때나 한결같이 들리는 것이 몽중일여이며, 화두가 깨어 있을 때나 깊은 잠을 잘 때나 똑같이 들리는 것이 오매일여의 경지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어느 순간 깨달음이 있게 된다. 간화선 수행의 과정에서 눈 밝은 선지식을 찾아 때때로 점검받고 또 깨달음 이후에는 인가印可를 받아야 한다. 그 이후 보임保任의 과정에 있게 된다. 

효봉이 진정한 간화선 수행자임을 알 수 있는 것은 그의 삶을 통하여 이러한 간화선 수행의 과정을 확실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화두일념話頭一念의 정진, 장좌불와長坐不臥, 용맹정진, 선정삼매禪定三昧, 오도, 그리고 보임 등으로 이어지는 그의 수행 정신은 이를 드러낸다. 

| 효봉, 보조지눌을 섬기다
효봉 또한 깨달음 이후 일그러진 한국불교를 재건하려는 의지를 갖게 된다. 그것은 보조지눌의 목우자 가풍의 계승을 통하여 이루겠다는 의지로 압축된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경허의 제자인 만공과 한암의 영향이 매우 크다고 생각한다. 특히 한암은 보조지눌의 선풍을 크게 중흥시켰는데, 『한암집』 속에는 지눌의 글이 수행자의 귀감이 되는 표징으로 표현된 곳이 많이 발견된다. 

효봉은 목우자의 가풍을 계승하여 한국불교를 재건해야겠다는 원願을 세운다. ‘學訥’이란 법명은 ‘지눌 스님을 배운다.’는 의미이고, ‘曉峰’이란 법호는 ‘고봉 화상을 잇고 있음’을 상징하는 것이다. 즉 고봉을 계승하여 수선사修禪社 목우가풍을 다시 일으키는 새벽 봉우리임을 자처하고 있는 것이니, 그의 수선사 계승의식이 얼마나 강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이름이라 할 수 있다.

효봉의 법어집에는 돈오점수를 배격하는 말은 찾아볼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하여 깨침 이후의 점수과정에 대하여 특별히 강조하고 있지도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조의 가풍을 계승함에 대하여는 분명히 밝히고 있다. 1949년 9월 1일의 가야총림의 상당법어에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보인다.

“과거 여러 스님들은 문정門庭의 시설은 제각기 다르지만 학인學人을 지도하는 방법에 있어서는 모두 친절했다. 그 중에서 가장 친절한 이가 상세上世에는 육조六祖 스님이요, 중세中世에는 조주趙州 스님이요, 하세下世에는 보조普照 스님이니 이상 삼가三家의 친절한 어구를 말해보리라. 육조 스님의 열반에 어떤 제자가 물었다. ‘화상께서 지금 가시면 언제 돌아오시겠습니까?’ 스님은 답하기를 ‘잎이 떨어져 뿌리로 돌아갔으니 올 때는 말이 없으리라.’고 하셨다. 조주 스님은 어떤 중이 그에게 ‘개에게도 불성佛性이 있습니까?’ 하였을 때 스님은 ‘무無!’라고 대답하였다. 또 보조 스님은 어떤 중이 그에게 ‘부처란 무엇입니까?’라고 물었을 때 ‘환불幻佛 말이냐 진불眞佛 말이냐.’라고 되물었다. ‘부처에도 환진幻眞이 있습니까?’ ‘있느니라.’ ‘어떤 것이 환불입니까?’ ‘삼세의 모든 부처이니라.’ ‘어떤 것이 진불입니까?’ ‘그대가 바로 진불이니라.’ 이상이 가장 친절한 언구이니, 그러므로 이 산승은 상세로는 육조를 섬기고, 중세로는 조주를 섬기고, 하세로는 보조를 섬긴다.”

| 자기 살림살이는 자기가 달아 보면 알 수 있다
육조혜능과 조주종심 그리고 보조지눌, 이 세분을 효봉은 마음속의 스승으로 항상 섬겼음을 알 수 있다. 위에서 지눌이 말한 ‘삼세의 모든 부처가 환불이고, 그대가 바로 진불’이라는 의미는 바로 ‘마음이 부처’이며, ‘마음을 떠나 부처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부처와 중생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연에 따른 습기와 지혜의 유무에 따라 나뉘게 될 뿐이다. 이에 대하여 효봉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부처란 특별한 것이 아니라 바로 이 마음이다. 마음이 인연을 따라 습관을 이루고, 습관이 성품을 이루기 때문에 선하고 악함과, 지혜롭고 어리석음의 차별이 생기게 된다. 그것은 마치 여울물이 동쪽을 터놓으면 동쪽으로 흐르고 서쪽을 터놓으면 서쪽으로 흐르는 것과 같으며, 또 자벌레가 푸른 빛깔의 먹이를 먹으면 푸르게 되고, 누른 빛깔의 먹이를 먹으면 누르게 되는 것과 같은 도리이다. 이런 견해는 작은 비유로써 큰 것을 보인 것이니, 왜냐하면 무명無明의 힘은 크기가 불가사의하기 때문에 물들지 않으면서 물들어 범부凡夫가 되며, 반야般若의 힘은 크기가 불가사의하기 때문에 물들면서 물들지 않아 성인聖人이 되기 때문이다.” 

효봉은 수행을 통한 득력得力을 강조한다. 조금 깨달았다고 방심하지 말고 끝없이 공력을 들여야 함을 힘주어 말하고 있다. 효봉의 말을 들어보자.

“득력得力하면 견성見性 못할 것이 없고, 견성하면 성불成佛 못할 것이 없다. 혼침과 산란에 구애되지 않을 때, 모든 선악善惡・시비是非에 흔들리지 않을 때 비로소 공부 길에 들어선 것이다. 공부가 들락날락할 때에는 득력이 없다. 득력하고 못한 것은 각자가 시험하라. 자기 살림살이는 자기가 달아 보면 알 수 있다. 요즘 선풍이 침체되고 흐려져 영리한 사람들이 어떤 공안公案에 조금 소식을 얻으면 견성見性하였다고 자처하고 남들도 덩달아 그렇게 말한다. 여기에 만족하면 스스로 속는 것이니 더욱더 공功을 닦아야 한다. 생사에 자유 없이 무슨 큰 소리냐. 섣달그믐을 당해 견성을 못했으면 앞길이 망망해지리라.”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효봉은 자그마한 깨달음에 만족하지 말고 끊임없이 공을 들여 수행할 것을 강조한다. 득력과 견성과 성불의 과정 중에 ‘득력’의 중요성을 특히 강조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아울러 다음의 구절을 보면 좀 더 구체적으로 이를 알 수 있다.

“쇳덩이를 다루어 금金을 만들기는 오히려 쉽지만 범부가 성인이 되기는 참으로 어렵다. 이 일이 천상천하天上天下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다. 산승山僧이 투신投身 조역祖域하여 이미 30여 년이 지났다. 조주고불趙州古佛은 보임保任을 30년하고, 향엄화상香嚴和尙은 타성일편 40년에 이 일을 성취한 것이다. 우리나라에 선풍禪風이 들어온 지 천여 년에 혜慧에만 치중하고 정定을 소홀히 하였다. 근래 선지식이 종종 출현하였으나 안광낙지시眼光落地時에 앞길이 막막하니 그 까닭은 정혜가 갖추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고서 어떻게 불조의 혜명을 이을 수 있을 것인가. 고인이 말씀하신 ‘건혜乾慧로는 생사를 면할 수 없다.’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이번 여름철에 만약 견성을 못한다면 공안에 득력이라도 해야 한다.” 

범부가 성인이 되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이라고 효봉은 말한다. 조주가 30년을 오후보임을 하였고, 향엄이 40년을 타성일편하였다고 말한다. 즉 ‘마음이 부처라’는 것을 깨달아 아는 것은 쉽지만 그러한 상태로 변화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한순간의 깨달음에 만족하고 방일하는 것을 ‘건혜’라 하고 그러한 건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선정이 뒷받침 되어야 함을 말하고 있다. ‘건혜로는 생사를 면하지 못한다.’는 말은 돈오 후의 점수과정의 중요성을 밝힌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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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뒷간에서 오는 사람, 뒷간에 가는 사람
간화선을 수행하였던 효봉은 이처럼 보임의 과정을 중시하고, 한순간의 깨달음에 만족하지 말고 범부가 변하여 성인되는 순간까지 수행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그가 열반의 순간까지 ‘무無라’ ‘무無라’ 하였던 것은 바로 깨침 이후의 닦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몸으로 보여준 예라 할 수 있다. 

효봉에게 있어서는 화두를 성성惺惺하게 들고 있는 상태가 곧 깨달음의 상태이고 열반의 상태이다. 깨닫기 이전에 화두란 깨달음에 이르는 도구이지만, 깨달음 이후의 화두는 모든 분별망상이 떨어진 진경眞境의 세계 그 자체이다. 효봉의 말을 들어보자.

“산승(曉峰)이 요즘 뒷간에서 오는 사람은 종종 보았으나 뒷간에 가는 사람은 좀처럼 보기 드물다. 왜냐하면 공부에 바쁜 생각을 가진 사람이 적기 때문이다. 망상妄想을 피우지 마라. 망상이 원래 생사生死의 근본이니라. 화두話頭를 성성惺惺하게 챙기라. 성성한 것이 원래 열반의 길이니라.”

효봉은 간화선의 입장에서 정혜쌍수를 주장한다. 즉 화두와 하나가 되는 ‘정력定力’을 강조한다. 화두와 하나 되어 있는 삼매의 경지에서 선정은 성성과 적적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이는 남종선의 돈종의 입장에 서 있기 때문이다. 효봉은 이렇게 말한다.

“혼침과 산란이 없어야 정定이다. 성성하고 적적해야 정이 된다. 누차 말한 바이지만, 정력定力이 없는 바는 건혜이다. 건혜로는 생사를 면할 수 없다. 정혜를 쌍수하고 안팎이 명철해야 생사에서 벗어날 수 있다.” 

‘정력’, 즉 선정의 힘이 있어야 바른 지혜를 얻을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선정 가운데서 화두를 참구하는 간화선을 말하는 것이다. 화두를 참구하는 것이 바로 정과 혜를 함께 닦는 것이 된다고 효봉은 말한다.

“계戒가 없이 혜慧만 닦으면 건혜乾慧이므로 생사生死를 벗어나지 못하고, 계・정・혜 삼학은 고불古佛 고조古祖의 출입문이므로 이 길이 아니면 외도법外道法이다. 또 정중定中에 화두를 참구하는 사람은 정과 혜를 함께 닦는 것이고, 정력이 없으면 화두가 자주 끊어진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아난 존자에게 말씀하시기를 “백년 동안 혜를 배우는 것은 하루 동안 정을 익히는 것만 같지 못하다.”고 하였으니 부처님 말씀을 믿지 않고 누구의 말을 믿을 것인가. 정중에 화두를 투철히 깨쳐야만 생사에서 벗어날 수 있는데, 정력이 없는 혜는 공중의 누각과 같다.”

위에서 말하고 있는 바와 같이 효봉은 ‘정定 중에 화두를 참구하는 것이 정과 혜를 함께 닦는 것’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혼침과 산란이 없는 정력이 있어야만 화두를 끊이지 않고 참구할 수 있는 것이며, 그를 통하여 생사를 벗어날 수 있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경허鏡虛와 용성龍城, 그리고 만공滿空과 한암漢岩 및 경봉鏡峰 등 근・현대의 수많은 고승들이 목우자牧牛子 지눌의 선풍을 계승하여 한국불교를 일신하려는 노력을 기울였지만, 송광사에 머물며 목우자 가풍을 되살리려 했던 효봉의 노력에는 미치지 못한다. 비록 10년의 세월밖에 채우지 못하고 해인사 총림의 조실로 위촉되어 떠났지만 한평생 송광사와 목우자 지눌의 정신을 잊지 않았다. 그가 살았던 일제시대와 해방 이후 혼란의 시기는 불교계 또한 많은 혼돈과 격랑을 겪어 왔던 것을 감안할 때, 돈오점수頓悟漸修와 정혜쌍수定慧雙修 그리고 간화선看話禪을 주창하였던 목우자 선풍의 회복을 통하여 한국 불교계를 개혁하려는 효봉의 안목과 의지는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룬 지금의 한국불교의 지남指南이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김방룡
전북대에서 학부와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원광대에서 ‘보조지눌과 태고보우의 선사상 비교’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북경대와 절강대 및 연변대에서 방문학자를 지냈다. 현재 충남대 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충남대 충청문화연구소 소장, 한국불교학회 감사 및 한국선학회 부회장 등을 역임하고 있다. 저서로는 ‘보조지눌의 사상과 전개’를 비롯하여 20여 권이 있으며, 지눌과 효봉 및 구산 스님에 대한 연구물을 비롯하여 80여 편의 국내외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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