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화가와 같아서

2016-10-05     불광출판사

마음은 화가와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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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 속의 ‘마음은 화가와 같아서’라는 구절은 매일 그림을 그리는 내게 ‘이렇게 마음 가는대로 그려도 되는 걸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하루에도 수천수만 번 다른 그림을 그리는 마음은 사실 화가인 나의 가장 큰 밑천이기도 하다. 어쩌면 예술과 종교는 정 반대의 길일지도 모른다. ‘빈센트 반 고흐’가 목사가 되려고 신학교를 다녔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바다. 하지만 그의 예술적 영혼은 예술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세월이 갈수록 세상의 품은 넉넉해졌다. 신부가 화가가 되기도 하고 스님이 시인이 되기도 하는 세상이다. 아니 화가나 시인이 신부나 스님이 될 순 없을까? 그 그림이 진짠지 가짠지 그 믿음이 진짠지 가짠지 하는 걸 가리는 건 시간이 오래 걸린다. 한 백년, 아니 그것도 우리가 정한 분별의 시간이리라. 오늘 텔레비전에서 오래 전에 본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La Vita E Bella)>를 다시 보았다. 다시 보니 그야말로 마음이 전쟁을 이긴다는 이야기였다. 아들과 아내와 함께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끌려간 주인공은 아들에게 이것은 그저 게임이라고 말해준다. 공포로 가득 찬 죽음의 게임이 아니라, 결국 우리가 이기고 말 희망의 게임이라고. 고통스러운 수용소 생활 속에서도 그는 매일 아들에게 이게 꿈이라고 말해준다. 이건 악몽이라고, 꿈을 깨고 나면 우리는 소중한지도 모르고 지나친, 아침에 눈 뜨면 엄마가 차려주는 따뜻한 우유와 빵 한 조각 같은 소중한 일상의 풍경 속에 놓여 있을 거라고. 이왕 마음이 화가와 같다면, 나는 추억의 명화 <인생은 아름다워> 속의 주인공이 그린, 희망을 그리는 화가가 되고 싶다. 지금 이 순간 생을 끝내려는 사람에게 “내 그림 어때요?” 하고 보여주면 처음부터 소중한 삶을 다시 살고 싶게 만드는 그런 그림을.                                                             

황주리
작가는 평단과 미술시장에서 인정받는 몇 안 되는 화가이며, 유려한 문체로 『날씨가 너무 좋아요』, 『세월』,  『땅을 밟고 하는 사랑은 언제나 흙이 묻었다』 등의 산문집과 그림 소설 『그리고 사랑은』 등을 펴냈습니다. 기발한 상상력과 눈부신 색채로 가득 찬 그의 그림은 관람자에게 강렬한 기억을 남깁니다. 그것은 한 번 뿐인,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우리들의 삶의 순간들에 관한 고독한 일기인 동시에 다정한 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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