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정신치료] 세상이 움직이는 원리2

2016-10-05     전현수

세상이 움직이는 원리 2

사실과 진실에 바탕을 두고 다른 사람에게 진정으로 도움이 되는 길을 모색하는 것이 불교적 인간관계의 근본입니다. 다른 사람한테 도움이 되면 나한테도 도움이 됩니다. 다른 사람한테 피해를 주면 나한테도 피해가 옵니다. 우리가 어떤 사실을 말할 때 갖춰야 될 다섯 가지 요소가 있어요. 우리는 그냥 막 말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디가니까야』 29번째 경인 「정신경淨信經」에 그에 대한 내용이 있습니다. 말할 때 갖추어야 할 다섯 가지 요소는 다음과 같습니다. 말하고자 하는 것이 사실이어야 하고, 가치 있는 것이고, 상대방에게 도움이 되어야 하고, 적절한 때에 적절한 표현을 갖추어 말하는 것입니다.

남에 대해서 정확하게 파악하는 게 중요합니다. 우리가 우리 마음에 따라 움직이듯이 남도 그 사람 마음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그 사람 마음속에 뭐가 있나, 이것을 알아야 되는데, 바로 그 마음을 아는 것이 공감입니다.

심리치료나 정신치료, 상담에서 가장 중요한 게 공감입니다. 훌륭한 치료자가 되려면 공감 능력을 배양하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남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도와주고 같이 공존하기 위해서 공감을 해야 됩니다. 공감이 어느 정도 돼 있냐에 따라서 인격이 어느 정도 성숙한지, 또는 인간관계를 어느 정도 잘 할 수 있는지 결정됩니다. 공감 능력은 공감 훈련을 통해 배양됩니다. 내 생각만으로 저 사람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 그 사람 속에서 일어나는 걸 알려고 노력하는 게 공감이에요. 공감이 완전히 된 거는 타심통他心通입니다. 타심통 있기 전엔 완전한 공감은 안 됩니다.

제가 1990년에 개업했는데, 환자가 오면 항상 하는 게 있습니다. 나를 딱 스톱하고 환자 마음에 들어가려고 엄청 노력했습니다. 나를 스톱하고 환자하고 같이 움직이는 거예요. 환자하고 같이 움직이는데, 이때 저에게 뭔가 감지가 되어 환자에게 말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때 환자는 자기 마음인데, 그 마음을 바로 보지 못한 경우에, 그 감지된 말이 환자에게 도움이 됩니다. 환자는 정작 자기 마음이면서 그건 생각 못해봤던 거예요. 환자와 공감하면서 이렇게 할 때 치료에 상당히 효과가 있습니다.

환자들이 이런 이야기를 가끔 해요. 이상하게 밖에서는 남이 뭘 말해도 잘 안 듣게 되는데, 여기서 치료자가 말하면 듣게 된대요. 제가 그걸 가만히 생각해보았습니다. 그 사람 마음에서, 그 사람이 돼서, 그 사람 속의 내면의 소리를 들려주니까, 듣게 되는 거지요.

평소에 사람을 많이 관찰하면 어떤 사람을 볼 때 그 사람이 빨리 파악됩니다. 애기도 관찰하고, 어른도 관찰하고, 잘 사는 사람은 왜 잘 사는지, 못 사는 사람은 왜 못 사는지, 누가 이혼을 했으면 왜 했는지, 행복하게 잘 살면 왜 잘사는지, 동료 치료자를 볼 때는 저 사람이 내가 없는 걸 어떻게 가지고 있는지, 가지고 있는 경우 어떻게 그게 가능했는지, 그것을 자꾸자꾸 보다 보면 끊임없이 나의 능력이 커집니다. 내가 공감을 했나 안 했나 하는 확인은 그 사람이 해주는 겁니다. 그 사람 마음이 어떤가는 그 사람만이 아는 거예요. ‘저 사람 마음이 과연 어떨까?’ 할 때 그 사람이 말 안 하고 가만히 있으면 정말 알기 힘듭니다. 그런데 뭐라도 말해주면 그 말을 따라 그 사람의 마음으로 가면 그래도 좀 알 수 있거든요. 그래서 누가 말해주면 나한테 욕을 하더라도 좋은 거죠. 그 사람 마음을 알게 해주니까.

그러니까 공감하는 마음이 되면 세 가지 이익이 생겨요. 첫째는 남의 마음은 내가 알기 어렵다는 걸 알게 됩니다. 다른 사람 마음은 내가 들어가기 어려운 거대한 세계라는 걸 알 수 있게 돼요. 그 다음은 그 사람의 마음을 알려주는 건 결국 그 사람이 하는 말인데, 그 말을 해주면, 설사 나를 비난하는 말이라도 ‘아 저 사람 마음이 그렇구나.’하고 고맙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 이익은, 남 마음을 알려고 하면 남 말을 잘 듣지 않습니까? 그러면 상대방 입장에서는, ‘야 저 사람은 진짜 내 말에 경청하고 잘 듣는구나. 나를 존중하구나.’ 해서 좋은 인상을 받아요. 세상의 이치를 실천하기 위한 기반이 바로 공감입니다.

사람들은 남을 너무 쉽게 생각해요. 국가와 국가 사이에 다른 나라를 볼 때와 사람과 사람 사이에 다른 사람을 볼 때가 너무 달라요. 국가 사이에는 철저하게 정보에 입각해서 저 나라가 뭘 절실히 필요로 하고 뭐를 좋아하는지 파악해요. 우리는 국가처럼 다른 사람을 파악할 필요가 있어요. 우리는 사람을 볼 때 사람이 공간을 얼마 점유하지 않으니까 별 거 아닌 존재로 보는데, 사람은 엄청난 존재입니다. 아는 사람도 많고, 머릿속엔 정보가 무척 많아요. 아무리 우습게 보이는 사람도 쉽게 보시면 안 됩니다.

보통 정신치료에서는 아이가 부모로부터 공감을 못 받아서 병이 난다고 보고 있어요. 이에 대해 실제로 정확히 볼 필요는 있지만, 어쨌든 부모의 반응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치료자는 공감을 통해서 환자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그 이해를 통해서 환자의 문제를 치료하기 때문에 공감은 치료에 있어서 매우 중요해요. 공감을 바탕으로 한 말은 치료적이고 효과가 있습니다.

과학기술과 교통수단이 매우 발전하면서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다보면, 상대방에 대한 정확한 파악 없이는 엄청난 일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어느 때보다도 서로 공존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에 바로 공감이 아주 중요하게 떠오릅니다. 이제 상대방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않고 뭔가 잘못 말을 꺼내면 문제가 되는 시대가 온 거예요. 여러분들도 정확하게 파악 안 되면 차라리 말을 꺼내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공감에 대해서 생물학적으로 많이 밝혀져 있습니다. 거울 뉴런(mirror neuron)이라는 게 바로 공감과 관계된 신경세포입니다. ‘거울 뉴런’이 어떻게 발견됐냐면, 1990년대 후반 무렵에 이탈리아의 지아코모 리졸라티(Giacomo Rizzolatti)와 그의 동료들이 이걸 발견한 겁니다. A원숭이가 바나나를 먹을 때 뇌의 어느 부위가 자극됩니다. 그런데 B원숭이가 바나나를 먹는 걸 A원숭이가 보고 있는데, 보고 있는 것만으로 자기가 먹을 때와 똑같은 부위가 자극이 되는데, 바로 이것을 발견한 거예요. 굉장히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바로 행동할 때 활성화되는 부위가, 보기만 해도 활성화되는 겁니다. ‘이게 뭔가?’ 하고 그때부터 연구에 들어간 거예요. 바로 이 연구 결과 밝혀진 게 ‘거울 뉴런’입니다.

자기가 실제로 했을 때 활성화되는 그 뇌세포가 자기가 보기만 해도 그대로 활성화되는 겁니다. 그 뇌세포가 활성화되면 자기도 그대로 해야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보기만 할 때는 실제로 하는 것을 억제하는 조직이 있어요. 다만, 보기만 하는데 마치 실제로 했을 때처럼 생생하게 경험하는 겁니다. 가상현실에서 시뮬레이션하는 것이죠. 이 ‘거울 뉴런’은 타인의 행동을 모방하는 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그래서 언어 습득도 이 거울 뉴런을 통해서 일어난다고 봐요. 언어 발달과 문화 또 어떤 문명을 이루는 것, 바로 여기에 거울 뉴런이 작용한다고 봅니다. 자폐증은 거울 뉴런이 발달이 안 돼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학자들은 공감하려고 노력하면 거울 뉴런이 발달한다고 합니다. 우리가 남을 잘 이해하려고 하면 그것이 우리 뇌에 변화를 줍니다. 공감을 하려고 노력하면 뉴런이 활성화됩니다.

남의 마음을 아는 데 가장 장애는 바로 ‘나’입니다. ‘나’의 ‘오랜 습관’입니다. 공감하려면 남 속에 들어가야 되는데 바쁜 세상에 어떻게 그렇게 합니까? 그러니까 자동으로 처리하는 시스템을 우리는 오랫동안 발달시켜 왔어요. 이래서는 치료자는 될 수 없습니다. 이제 그 습관을 바꿔야 됩니다. 치료자가 되려는 사람은 자신이 해온 습관을 스톱하고, 실제를 보는 훈련을 해야 됩니다. 그러니까 항상 무아無我 훈련을 해야 합니다. 나를 스톱하고 나는 없는 거죠.

사람의 말이나 행동, 표정을 따라 가면 마음에 도달합니다. 말, 행동, 표정을 내 식으로 판단하지 않고, 상대방의 마음을 따라가서 그 마음에 도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내가 상대방의 마음을 제대로 아는지 어떤지는 항상 결과가 말해주는 겁니다. 이제는 결과를 유심히 봐야 합니다. 결과를 지켜보는 게 공감에서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인간의 행복과 불행, 성공과 실패는 IQ하고 무관합니다. 오히려 EQ(감성지수, emotional quotient)가 높은 사람이 행복하고 성공합니다. EQ는 두 가지가 높으면 높습니다. 첫 번째는 자신을 다스리는 능력입니다. 화가 나거나 욕심이 나거나 자기한테 도움 안 되는 것을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합니다. 두 번째는 공감 능력입니다. 공감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무기 중의 하납니다. 이 세상은 호락호락한 곳이 아닙니다. 여기서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걸 우리는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모든 것의 바탕은 다 인간관계입니다. 치료자와 환자도 인간관계가 먼저 돼야 그 다음 작업이 시작됩니다. 인간관계가 안 되면 아무것도 안돼요. 남이라는 것이 비교 대상이나 경쟁 대상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 혼자서 존재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남은 나의 존재를 도와주는 존재이고, 같이 잘 살아가야 하는 그런 존재이지, 비교 대상이나 경쟁 대상이 아닙니다. 나와 같이 남도 나의 행복이나 성공을 만들어가는 동반자입니다. 나도 좋고 또 남도 좋은 길을 모색하니 모두 성공하고 행복한 길입니다. 서로 힘을 합쳐야 합니다. 더 나아가서 남과 마음이 하나가 된다면, 마음이 둘이었을 때 오는 갈등과 힘든 것이 없어집니다. 몸이 하나 되기는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마음이 하나 되기는 노력한다면 될 수 있습니다. 그 예가 불교 경전(『맛지마니까야』 31번째 경)에 있습니다.

우리는 편하고 쉽게 살아야 되는데, 자꾸 어렵게 살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힘들게 사는 것으로부터 편하게 사는 것으로 옮겨가야 됩니다. 사무량심四無量心의 마음이 되면 정말 세상 살아가는 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무량심을 개발하는 게 세상을 사는 데 굉장히 중요합니다. 사무량심의 마음이라는 것은 큰마음입니다. 우리는 좁은 마음이기 때문에 자꾸 부딪히는 거예요. 우리의 마음이 좁아도 생존하기 위해서는 남하고 접촉해야 됩니다. 그럴 때 괴로운 겁니다. 마음이 넓으면 누구를 접촉해도 하나도 어렵지 않아요. 그래서 우리는 큰마음, 넓은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바로 이 가장 넓고 큰마음이 사무량심입니다.

이 사무량심도 사마타 수행에서 삼매를 닦는 주제 40가지 중에 들어가요. 이걸 닦을 때, 정말 거침이 없습니다. 누구를 봐도 자애, 연민, 같이 기뻐함, 평온, 이 사무량심의 마음을 가질 때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어요. 먼저 공감을 바탕으로 자애, 연민, 같이 기뻐함 등을 닦습니다. 그 다음에 자애, 연민, 같이 기뻐함의 토대 위에 평온의 마음을 닦습니다.

‘자애 명상’을 할 때 네 가지 부류의 사람에 대해서 명상합니다. 우선 자기 자신에 대해서 합니다. 두 번째는 좋아하는 사람 또는 존경하는 사람, 세 번째는 중립적인 사람, 네 번째는 싫어하는 사람을 합니다. 자애 명상은 네 가지 부류의 사람에 대하여 다음의 네 가지 문구를 가지고 합니다. ‘위험에서 벗어나기를’, ‘정신적 고통이 없어지기를’, ‘신체적 고통이 없어지기를’, ‘평온하고 행복하기를’. 다만, 죽은 사람을 대상으로는 자애 명상은 하지 않습니다. 죽은 사람은 자애를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 자애 명상을 할 때 맨 처음에는 이성에 대해서 하지 않아야 합니다. 모든 존재에 대해서 평등한 마음이 될 때 비로소 이성에 대해 자애 명상을 합니다. 자애 명상을 통해 선정에 도달할 수도 있고, 선정에는 도달하지 못하지만 자애가 우리 마음에 많이 생길 수 있습니다.

‘연민 수행’은 ‘고통이 없어지기를’이라는 하나의 문구를 가지고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그 사람에게 어떤 고통이 있는지를 알아야 됩니다. 고통이 없는 사람은 절대로 없습니다. 그래서 고통이 없어지기를 나한테 먼저 하고, 좋아하는 사람, 중립적인 사람, 싫어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합니다.

‘같이 기뻐함’은 ‘그 사람이 얻은 것을 잃지 않기를’ 가지고 합니다. 그 사람이 참 소중히 여기는 것, 뭔가 얻은 것, 이것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바랍니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그 사람이 얻은 걸 찾아내야 합니다. 다음에 자기 자신, 좋아하는 사람, 중립적인 사람, 싫어하는 사람 등에 대해서 수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렇게 자애, 연민, 같이 기뻐함 등의 수행이 다 되면, 이제는 내가 어떤 대상에 대해서 자애의 마음도 가지고, 연민의 마음도 가지고, 같이 기뻐함의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이런 마음이 되어 ‘평온’을 수행할 때는, 내가 이렇게 상대방에 대해서 좋은 마음을 바라지만, ‘상대방은 업의 주인이다. 업에 따라서 살 수밖에 없다.’ 하는 그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는 잘 되기를 바라지만, 이제는 잘 되는 마음의 바탕 위에서 상대방을 담담하게 보는 겁니다. 선정 수행 측면에서 사무량심을 보면 자애, 연민, 같이 기뻐함 수행을 통해 삼선정三禪定까지 도달할 수 있고, 평온 수행을 통해서는 사선정四禪定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제가 볼 때는 사실 우리가 누구를 미워하면 우리한테 도움이 안 됩니다. 또 고통 가진 사람 많으면 우리한테 도움 안 됩니다. 남이 잘 될 때 기뻐하는 것이 가장 순리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살 때 우리가 어디든 걸리지 않습니다. 처음엔 다른 마음으로 살았기 때문에 사무량심의 마음이 익숙하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자꾸 자애의 네 가지 문구로, 연민의 한 가지 문구, 같이 기뻐함의 한 문구, 평온의 한 가지 문구, 바로 이것을 자꾸자꾸 하면 그 자체도 굉장히 집중되고, 나중에는 마음 자체가 달라져서 미워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게 됩니다. 누가 박해해도 절대로 미워하지 않게 됩니다. 이렇듯 사무량심은 우리에게 크게 도움이 되고, 항상 유익한 마음이기 때문에 정신인식과정의 속행에서 마음(따)과 마음부수(쩨따시까)를 좋은 것으로 채울 수 있습니다.

 

 

전현수
1956년 부산에서 태어나 한양대학교 의대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2003년 미얀마에서의 위빠사나 수행을 비롯한 수개월의 집중수행을 통해 몸과 마음의 작동 원리를 탐구하고 그 결과를 치료에 적용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사마타와 위빠사나』, 『생각 사용 설명서』, 『마음 치료 이야기』, 『울고 싶을 때 울어라』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