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으면 알게 되는 것들

불자들에게 도움 되는 책읽기 방법

2016-09-07     불광출판사

책을 읽으면 알게 되는 것들

불자들에게 도움 되는 책읽기 방법
 

책을 많이 읽으면 좋다고 합니다. 더 현명해지고, 더 박식해지고, 이해력도 높아지고, 위기대처능력도 향상된다고 하지요. 요즘은 돈도 더 잘 벌 수 있다고들 합니다. 책이라는 게 엄청나게 비싼 물건도 아니고 책을 읽기 위해 고급 기술을 익혀야 하는 것도 아닌데다 책을 읽는데 인생의 시간을 몽땅 걸어야 하는 것도 아닌데 읽기만 하면 저 많은 것이 이루어진다니, 정말 좋네요. 하지만 신기하게도 책 읽는 사람의 숫자는 점점 더 줄어듭니다. 저 많은 장점이 선물세트처럼 담겨있다는데 왜 그럴까요? 


|           책은 고통에 돋보기를 들이댄다

한동안 책의 수많은 기능 중 ‘힐링’이 돋보였던 적이 있습니다.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는 책이 불티나게 팔렸죠. 읽고 눈물 쏟고 나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눈앞의 고통은 한발 물러섭니다. 하지만 위안을 주는 것이 책의 진짜 기능일까요? 『왜 책을 읽는가』를 쓴 샤를 단치는 한 인터뷰에서 “(위안을) 목적으로 쓴 책이 있고, 만약 그 책을 읽어서 고통이 사라진다면 그건 진짜 고통이 아닙니다. 책으로 위안을 주겠다는 의도 자체가 인생의 고통을 얕잡아 본 겁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했죠. 인생의 고통은 너무나 단단하고 커다랗습니다. 책 한 권 읽어 소멸할 고통이라면 부처님께서 떨쳐 일어나셨겠어요?

오히려 책은 고통을 더욱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읽는 이를 고통스럽게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고통이라는 것이 어떤 실체를 가지는지 명료하게 보여준다는 뜻이죠. 고통의 실체를 굳이 응시할 필요가 있을까요? 네. 필요합니다. 그저 외면만 한다고 고통이 작아지는 것은 아니거든요. 오히려 뭉게뭉게 커집니다. 외면했다는 그 이유 만으로요.

고통에 돋보기를 들이대면서, 책은 연민을 이끌어냅니다. 연민은 소중한 감정입니다. 나와 함께 인연으로 엮인 사람들의 고통을 이해하고, 그를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생각하게 하는 감정이죠. 고통을 해결하려면 고통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동병상련’이라는 말이 의미하듯, 다른 사람의 고통은 내 고통이라는 렌즈를 통해 더더욱 실감나게 보이죠. 하지만 인류가 겪고 있는 모든 고통을 한 사람이 실제로 겪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 고통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대리체험이 필요하죠. 그것은 책을 통해서 가능합니다.

프랑스 혁명은 착취로 고통 받는 민중들이 더 이상 못 참았기 때문에 일어났다는 것이 정설이지요. 역사학자들은 그 이면에 책이 큰 몫을 했다는 걸 밝혀냈어요. 그 사람들이 어떤 책을 읽었기에 현재의 제도가 모순되어 있으며 사람을 억압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까요? 인권의 필요성과 정치적 자유를 부르짖던 위대한 계몽사상가의 책일까요? 뜻밖에도 그 책들은 어렵고 딱딱한 이론서가 아니라 포르노그래피와 연애소설이었답니다. 

장 자크 루소는 당대의 베스트셀러작가였지요. 하지만 그의 대표작 『사회계약론』은 그다지 인기가 없었어요. 그를 베스트셀러작가로 만든 것은 연애소설이었습니다. 그가 쓴 작품인 『신 엘로이즈』는 40년 동안 무려 115쇄를 찍었다고 합니다. 비극적인 이 소설 속 가난한 평민인 가정교사와 귀족 외동딸인 학생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았죠. 결국 소설은 여주인공인 쥘리의 죽음으로 끝이 납니다. 

금서목록에 오른 이 책의 인기는 대단했지요. 그 영향력은 엄청났습니다. 신분제 사회에 묶여 이루어지지 못한 남녀의 사랑은, 사람들에게 출신에 따른 특권이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줍니다. 신분차이만 없었다면 행복했을 이 남녀를 끝끝내 파멸로 몰아간 것이 바로 불합리한 사회제도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죠. 연애소설이 ‘인권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일깨웠습니다.


|           불경이 내게 말해주는 것

당시의 사람들이 얼굴 붉어지는 연애소설을 찾아 읽었던 것이 지식을 쌓고 지평을 넓히겠다는 의도는 아니었을 겁니다. 그저 재미가 있어서였겠죠. 그리고 사실, 책의 모든 효능은 ‘재미’가 있을 때 발생합니다. 재미없지만 읽고 나면 지식이 쌓이는 일은 없습니다. 재미없는 책은 금방 잊히죠. ‘재미’는 독자와 책 사이에 화학작용이 일어나는 순간 발생합니다. 이러한 화학작용이 없다면, 책은 그저 독자의 눈을 스쳐 지나갈 뿐입니다.

그런데 앞서 책을 읽는 이유는 고통을 똑바로 보기 위해서라고 했잖아요. 남의 고통을 보면서 재미를 느끼다니, 사디스트나 할 법한 짓 아닌가요? 하지만 책은 다른 이의 고통을 보고 가슴이 저리면서도 동시에 재미를 느끼는 아이러니를 아무렇지도 않게 펼쳐 보여줍니다. 아이들은 주인공이 물거품이 되는 『인어공주』를 읽고 매번 울면서도 또 찾아보죠. 셰익스피어의 비극인 『로미오와 줄리엣』은 시대가 바뀌어도 거듭거듭 읽히고 변주됩니다. 이것이야말로 책의 신묘한 매력이라고 할 수 있어요. 책이 주는 ‘재미’는 정말 광대하고 다채롭거든요. 

다른 사람의 고통을 내 것처럼 느끼게 해주는 것이 책의 큰 역할 중의 하나라 해도, 사실 독서는 가장 이기적인 행위입니다. 오직 나를 위해, 나만을 위해 하는 행위죠. 책을 읽고 깨달은 바가 있어 다른 이를 돕고 사회를 바꾸려고 고군분투한다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인생이 더 가치 있게 되는 과정, 책은 그것을 북돋아주는 것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되는 것은 남의 인생이나 의견이 아닙니다. 뜻밖에도,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아주 잘 알게 되죠. 내가 좋아하는 책, 내가 즐겨 읽는 책, 밑줄 긋게 되는 문장, 좋아하는 작가, 좋아하는 장르…. 헤아리다 보면 나에 대해서 좀 더 깊이 알게 됩니다. 같은 책을 읽더라도 인상 깊은 구절이 다 다른데, 마침 나와 같은 문장에 밑줄 긋는 사람을 만난다면 참 반갑겠죠. 서로 잘 통할 테니까요. 한 권의 책을 읽는 사람은 천 명 만 명이지만, 나와 책의 일대일 면담을 통해 책은 나만의 것이 됩니다. 몇 천 년 동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정리되고 공유된 불경도 마찬가지예요. 불경이 내게 말해주는 것은 오직 내게만 말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을 만난다면 그분은 오직 내게 필요한 말씀을 해주시겠지요. 책도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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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 길러주는 근육의 힘

그 외에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책의 장점들을 굳이 또 이야기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집어 들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독서근육’이 아직 없기 때문이겠죠. 책을 읽기 위해서는 생각하는 힘이 필요하고, 생각하는 힘을 기르기 위해서는 독서가 가장 좋아요. 운동과 마찬가지죠. 힘이 없어서 운동을 못하지만, 운동을 해야만 힘이 길러지는 법. 인생의 아이러니죠.

독서근육을 기르는 첫걸음을 떼기 위해서 사람들이 제시하는 방법은 다양합니다. 쉽고 잘 읽히는 책부터 읽어라, 하루에 정해진 시간에는 꼭 책을 읽어라, 사람들과 독서모임을 만들어라, 블로그에 독서기록을 남겨라…. 사람마다 성향이 다르니 절대적인 방법이 있을 리는 없지만 내게 맞는 방법이 어딘가는 있을 겁니다. 하나씩 시도해보시는 것을 권합니다. 한 가지 더 보탠다면, 낭독을 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겁니다. 옛 선현들이 했듯이 소리 내어 읽다보면 책을 몸이 기억하게 되거든요. 낭독을 하거나 낭독하는 것을 들으며 오감을 자극해보세요. 책과 한 걸음 더 친해지는 유용한 방법이죠. 

책이 길러주는 근육의 힘은 여러모로 유용합니다. 우리는 대부분 단편적인 지식의 세계를 떠다니고 있거든요. 짧고 자극적인 비유, 앞뒤 맥락이 잘린 선현의 한마디, 출처를 알 수 없는 입소문…. 그중에서 옥석을 가려내고 맥락을 찾기 위해서는 넓고 멀리 보는 시각이 꼭 필요합니다. 깊고 유장하게 생각하는 법을 익혀야 합니다. 책은 지름길을 가르쳐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멀리 돌아가죠. 그 덕분에, 우리는 인생의 지도를 파악하게 됩니다. 책은 답을 주지 않아요. 하지만 답을 찾는 방법을 알려줍니다. 그보다 더 좋은 것이 어디 있겠어요? 

책의 놀라운 점 중의 하나는 한 권보다는 두 권, 두 권보다는 세 권, 세 권보다는 백 권을 읽을 때 효과가 더 증폭된다는 점이에요. 가야 할 길이 까마득하죠? 하지만 그렇게 쌓아올리고 직조된 세계의 한복판에 서 보면 그때에야 내가 무엇을 했는지, 어떤 세계를 만들었는지 알게 될 거예요. 책은 세계를 요약하지 않습니다. 펼쳐서 보여주죠. 한 줄의 진리를 알기 위해 책 한 권 분량의 설명이 필요합니다. 책 백 권이라면 더 풍부한 설명을 해주겠죠. 오직 한 줄의 진리는 명료하지만 앙상합니다. 헐빈하고 엉성한 곳을 채워주는 책읽기 이후에는, 같은 문장을 보더라도 전혀 다르게 느껴질 거예요. 그것을 우리는 보통 ‘깨달음’이라고 하지요.                                    


박사
북칼럼니스트. 경향신문, 조선일보 등의 일간지를 비롯, 각종 월간지와 주간지에 책과 문화에 관련하여 기고했다. KBS TV 책 읽는 밤, KBS, SBS, MBC, 교통방송 등에 출연했으며 현재 SBS 라디오 ‘책하고 놀자’, 경북교통방송의 ‘스튜디오1035’에서 책 소개 중이다. 저서로는 『지도는 지구보다 크다』, 『도시수집가』, 『나에게 여행을』, 『여행자의 로망백서』, 『고양이라서 다행이야』, 『나의 빈칸책』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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