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인터뷰] 봉화 농선도량 관음사 최병호 법사

농촌 포교요? 먼저 농사꾼이 돼야죠!

2016-09-01     김성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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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에서 사찰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 농사짓는 터가 넓은데 혼자서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농기계가 있어서 적지 않게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많은 것을 마을 사람들과 함께 합니다. 저도 마을 분들 농사도 도와주고, 서로 품앗이합니다.” 
 
- 농선도량이라는데, 왜 이름을 이렇게 지었죠?
“농사를 하는 곳이니까요. 지역 사람들하고 함께 밭 갈고, 씨 뿌리고, 농사를 가르칩니다. 물론 부처님을 모시고 있으니까 예불도 올리고 기도도 합니다.”
 
- 법회는 어떻게 하고 계시죠?
“지금은 열지 않습니다. 2년 전까지는 법회를 열었는데요. 지금은 봉화 지역의 공동체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뭐, 그것이 저에게는 부처님 일입니다. 하하. 앞으로 2년 정도는 더 지역 공동체 운동에 집중하려고 합니다. 법회는 그 후에 하려고 합니다.”
 
- 법회를 열지 않으면 절 운영은 어떻게 하나요? 
“농사를 지으니까요. 마을 분들하고 함께 농사짓고, 또 지역에 품앗이도 하고, 또 지역사업도 하고, 강의도 하고, 아주 바쁩니다.”
 
- 전원생활학교를 운영하는데 어떤 곳인가요?
“도시 사람들이 농촌으로 귀농할 때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곳입니다. 느림, 비움, 공동체 가치. 이런 것을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어제 52기가 졸업했습니다. 1년에 8회, 2박 3일 동안 진행하는데 현재까지 1,300여 명이 졸업했습니다. 이 중에 약 450가구가 이곳 봉화로 귀농했습니다.”
 
- 많은 분들이 귀농했군요.
“귀농 귀촌은 단순히 장소를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삶의 방향을 바꾸는 것이라고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교육 프로그램도 지역의 공동체에 희망의 메시지를 줄 수 있는 내용으로 마련했습니다. 아마도 그런 교육 방향이 영향을 준 것 같습니다.”
 
- 삶의 방향을 바꾼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그동안 우리가 살아왔던 과정은 자기중심적이었습니다. 자기가 먹고 사는 데 중심이 있었죠. 귀농 교육 속에서 이런 가치를 바꾸려고 합니다. 불교로 표현하면 중도적이며 연기적인 가치를 공유하는 것이죠. 이것을 지속시키려면 커뮤니티 비즈니스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지역민들이 함께 할 수 있는 사업 모델을 만들고, 공동체의 가치를 갖고 시스템화시키는 것입니다. 이전에는 주민들이 일 없이 있었는데, 지금은 함께 사업 모델을 만들고, 함께 일합니다.” 
 
짧은 순간에 간단한 질문을 던져도 곧바로 답변이 막힘없이 쏟아져 나온다. 몸으로 직접 경험한 사람에게 나올 수 있는 자신감이다. 20여 년간 지역 주민들과 직접 몸과 마음을 함께 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20대 초반 대학 때부터 농촌활동을 꿈꾸었다. 부모님 반대에도 농과대학에 진학해 일찍부터 농사를 접했지만, 농촌에서 체험한 현실과 대학에서 이론으로 배웠던 농사는 달랐다. 농촌에서 필요한 일을 직접 다 경험해봤다. 농장에서 직접 양돈, 과수, 축산을 배웠다. 그를 지탱해 주었던 가치는 불교다. 고등학교부터 대학, 청년회까지 불교 신행활동을 꾸준히 해왔고, 경전 공부도 게으르지 않았다. 부산 공파 스님께 10여 년간 경전을 배웠고, 대한불교법사회를 이끌던 목정배 전 동국대 교수는 그에게 ‘농선農禪’이란 법명을 주며, 불교와 일, 포교와 농사가 둘이 아님을 일깨워주었다. 어린 시절 놀이터였고, 외조부 동명 스님이 창건한 도량 관음사를 재정비하면서 본격적인 농촌 포교를 준비해갔다. 이때부터 오랫동안 간직했던 생각을 이어갔다. 
‘행복한 지역을 만들기 위하여 나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나?’
‘지역사회에서 사찰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나?’
‘지역을 구성하고 있는 지역주민들은 사찰에서 어떤 역할을 해주기를 바라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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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사꾼으로, 마을 주민으로
 
- 왜 농촌 지역인가요?
“80년대에는 세상을 바꾸려는 일이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랬습니다. 어느 때인가 정치가 세상을 바꾸기 어렵다고 생각하고 지역운동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세상을 바꾸려면 지역을 바꾸어야 한다. 지역을 바꾸는 것은 결국 지역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이다.’ 이렇게 말이죠.
 
- 봉화에 정착은 잘했나요? 
“여기서 처음 한 일이 어른들 집에 보일러 고쳐드린 겁니다. 두 번째로 한 일이 트랙터를 구입해서 온 동네 밭 다 갈아드렸고, 세 번째 한 일이 초상나면 염을 해드렸습니다. 이렇게 생활하면서 지역 농민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농사도 직접 같이 했습니다. ‘농민들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이런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또 농사일 하면서 ‘나다, 내 것이다, 내가 옳다.’ 이런 것을 다 같이 풀어내는 일도 했죠. 이런 것들이 지역 농촌 생활 속에서 안 되면 포교를 할 수가 없습니다. 좋은 글귀나 좋은 말로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런 말들은 곳곳에 많습니다만, 삶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부족합니다.” 
 
- 농촌 포교를 위해 우선 필요한 것이 뭘까요?
“농사꾼이 돼야죠. 마을 주민으로 살고.”
 
- 마을 사람들과 어울리려면 많은 준비를 했겠습니다.
“중생의 삶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한번은 마을에 소 한 마리가 새끼를 낳는데 무척 힘들어 했습니다. 마침 늦은 밤이라서 수의사도 없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나와서 어미 소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습니다. 누군가, ‘법사님께 가 봐라’라고 했나 봅니다. 부리나케 갔더니 새끼가 머리만 나온 채 움직이지 않는 겁니다. 제가 소를 키운 경험이 있습니다. 자세히 보니 자궁에 앞다리가 걸렸더군요. 머리를 다시 자궁 속으로 다시 넣고 앞다리를 모아서 꺼냈습니다. 그러자 거기에 몰려 있던 마을 사람들이 ‘와~’ 하고 박수를 치는 겁니다. 그 후로 마을 사람들에게 마을의 일원으로 확실히 인정받았습니다.(웃음)”   
 
- 마을 아이들을 위해 여름불교학교도 운영했다고 들었습니다. 
“2002년도에 초등학교 교사 몇 분이 큰 딸에게 스트레스를 많이 주었습니다. 집이 절이라고, 지옥 간다고. 고민 끝에 여름불교학교를 열기로 했습니다. 매년 전통놀이, 과학놀이, 인형극, 생태학교 등으로 프로그램을 운영했습니다. 여름성경학교가 방학 시작 때 열지만, 여름불교학교는 방학이 끝날 즈음에 시작합니다. 100여 명씩 아이들이 참석했습니다. 아이들이 방학이 끝난 후에 여름불교학교에서 만들었던 것을 방학숙제로 제출하기도 했죠. 또 개학 후 학교에서 설문조사를 하는데, 설문 문항에 ‘나는 커서 무엇이 될까요?’가 있었습니다. 이 질문에 세 녀석이 ‘법사가 되고 싶다’고 대답했다고 학교 선생님이 전화 주셨습니다. 농촌 지역의 사찰은 여름불교학교를 매년 꼭 열어야 합니다.”
 
그가 풀어 놓은 이야기는 차고 넘쳤다. 20여 년간 그가 이곳 봉화지역에서 얼마나 밀도 있게 결합했는지 알 수 있다. 1996년도 작목반을 조직해 마을에 처음으로 비닐하우스 3천 평을 지으며 마을에서 인정받는 농사꾼이 되었다. 봉화군 농업기술센터에서 진행하는 농사 교육에 참여하고, 안동대학교 농업개발원 최고경영자과정, 봉화군 환경농업대학, 경북벤처농업대학, 친환경농업교육, 한국관광농업대학, 농촌체험서비스과정교육 등 그는 많은 시간을 교육 받는 곳에 쏟아 부었다. 그러면서 지역 농촌에서 관계망을 넓혀갔다. 이후에는 교육받는 사람에서 교육하는 사람으로 변화했다. 마을 단위 정부지원사업인 녹색농촌체험마을, 아름마을사업 등 지역주민과 사업 참여자들의 교육에 초대되어 강의도 했다. 이러한 활동은 효과적인 농촌포교를 위해 영농조합법인 농선원 설립 운영,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 유치 등 커뮤니티 비즈니스로 진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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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자 아닌 사람에게 불교이야기 하는 법
 
- 지역에서 많은 일을 하게 되면 정작 농촌 포교는 어떻게 하죠?
“94년에 이곳에 와서, 4~5년은 농사에 집중했습니다. 10여 년간 봉화 지역에서 공동체 운동을 했고, 또 전국에 지역 공동체 운동을 주제로 강의하러 다녔습니다. 공동체 운동이 불교이야기 같지 않지만 결국 불교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불자들에게는 불교이야기를 하는 것은 쉽지만, 불자가 아닌 분들께는 불교이야기를 하기 어렵습니다. 불교를 직접 이야기하면 안 됩니다. 지역사회에서 함께 어울리고 아파하고 기뻐하고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지역의 불자들이 기대하는 것도 있을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지금은 지역 커뮤니티 비즈니스에 집중하려고 합니다. 신도회가 몇 년 전까지는 아주 활발하게 움직였습니다. 거사 불자들의 수행과 전법 모임인 유마회, 여성 불자들의 수행과 봉사모임인 승만회, 청년회, 근본교리강좌 등을 했습니다. 2년 정도 후에 다시 시작하려고 합니다. 지금은 지역 활동이 중요하고, 여기에 역량을 쏟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신도님들께도 양해를 구하고 사찰의 아주 기본적인 것만 합니다.”
 
옆에서 가만히 인터뷰를 지켜보던 관음사 신도인 이강갑(68) 씨는 “법사님이 빨리 사찰로 돌아와 절 일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봉화군청에서 퇴직한 그에게 관음사 활동을 멈추고 지역 활동에 몰입하는 법사님의 발걸음이 꼭 반갑지는 않은 것 같다. 불과 3년 전까지 관음사의 신행 활동은 눈부셨다. 정초 7일 산림기도 동안 부처님 일대기, 근본교리강좌, 경전강좌를 이어갔다. 뿐만 아니라 사찰은 동안거 백일 정진, 경전 독송, 법요집 발간, 방생 법회, 군법당 법회로 바쁘게 돌아갔고, 신도들과 법사님은 지역청소년을 위한 선재교육원 운영, 무료한방진료사업 지원, 조기축구회 운영, 봉화불교법우회 창립 운영, 타종교와의 교류, 풍물패 운영, 교도소 법회 지원, 불교대학 강의 등으로 활발하게 움직였다. 이 때를 생각하면 관음사 활동이 그리울 듯하다.   
 
- 농촌에서 불교는 어떻게 접목될 수 있을까요?    
“농촌에서는 불교만 따로 떼어서 이야기할 수는 없습니다. 예를 들면 저 위쪽에 단호박을 심었습니다.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심어서 돈을 좀 벌었습니다. 그러자 동네 어른들이 모두 단호박을 심었고, 단가가 내려가자 인건비도 못 건지게 생겼습니다. 그때 생각한 것이 아이들과 함께 하는 ‘단호박 따기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프로그램은 주제식 접근법으로 철저한 관찰이 필요합니다. 이 프로그램을 위해 동화 한 편을 썼습니다.” 
 
- 법사님이 동화도 쓰나요? 
“(웃음) 예. 아이들과 함께 하려면 다 합니다. 단호박 옆에 장미, 튜울립, 백합 이런 것을 같이 심어 놓습니다. 봄이 되면 아름다운 꽃들이 올라옵니다. 이 꽃들은 단호박에게 뚱뚱하다, 못생겼다고 놀립니다. 단호박은 정말 스스로 그렇게 생각합니다. 여름이 되자 꽃들은 시들고 단호박은 예쁜 꽃을 피웁니다. 단호박은 알게 됩니다. 자신이 얼마나 이쁘고 귀한 존재인지. 우리 아이들은 단호박처럼 많은 상처를 받고 살아갑니다. 아이들에게 스스로 존귀하고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아함경』에 나오는 내용을 비유해서 설명합니다. 이런 것이 불교죠.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단호박을 따는 방법을 알려 줍니다. 아이들이 아주 조심스럽게 단호박을 따고, 아주 즐거워합니다.”
 
| 연기의 공동체, 커뮤니티 비즈니스로
 
- 법사님은 이곳 봉화 지역에서 어떤 분인가요? 
“제가 지금 봉화지역 어디를 가도 다 ‘법사님’이지만, 역할에 따라 저를 부르는 호칭이 달라집니다. 어제는 로컬푸드센터에 갔는데요. 저하고 술 친구하는 이는 ‘병호야’라고 합니다. 봉화군청 계장은 저를 ‘법사님’이라고 합니다. 그 계장은 술 친구에게 ‘야, 너, 법사님을 그렇게 부르면 어떻게 하냐?’고 합니다. 저는 괜찮죠. 자기들끼리 불편해합니다. (웃음) 또 제가 지역 위원회 위원장이니까 어떤 이는 ‘위원장님’ 이렇게 부릅니다.”
 
- 무아無我네요.
“예. 그렇죠. 무유정법無有定法이죠. 이런 것이 재미있습니다.(웃음)”
 
- 마을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이 중요하겠습니다. 
“몇 년 전 마을에 밭 300평 농사짓는 할매 한 분이 있었습니다. 이 분이 날만 새면 ‘아이고, 언제 밭 갈고 비료 주노.’ 하고 걱정합니다. 제가 농기계로 한낮이면 다 할 수 있거든요. 할머니 고민을 단번에 덜어드립니다. 그런 것입니다. 그 할머니께서 돌아가신 후 49재를 지내면서 가족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눕니다. 가족들이 모르는 일을 제가 알고 있으니까, 그 이야기를 가족들에게 들려줍니다. 아주 감동적입니다.”
최병호 법사. 그의 머릿속에는 이곳 봉화 지역 전체를 다시 디자인하는 계획으로 가득하다. 20여 년 전 부산 생활을 접고, 봉화로 와서 가장 먼저 세웠던 원력이 그것이다. 그 중심에 농선도량 관음사가 자리한다. 일 수행 도량, 염불하며 일하는 도량, 즐거운 도량, 행복한 도량, 공부하는 도량을 목표로 절을 재창건했다. 절의 외형을 키우겠다는 생각은 없다. 오히려 사람과 농촌, 인류를 살리는 길이 무엇인가를 화두 삼아 살아간다. “파종할 씨앗에 부처님의 대자비를 심고, 수확한 농산물에 대자연의 감사함을 담아내는 도량, 밭을 갈고 김을 매면서 풀 한 포기마다 불보살의 명호를 새기며, 이 농산물이 쓰이는 곳마다 부처님의 공덕을 전하는 도량.” 이것이 그가 만들고자 하는 도량이다. 
 
- 2년 후에 다시 사찰을 중심으로 활동하겠다고 했습니다. 앞으로 2년간 무엇을 중심으로 활동할 계획인가요?
“커뮤니티 비즈니스입니다. 지금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 한누리권역을 기획, 운영하고, 봉화전원생활학교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것이죠. 결국 나도 좋고 남도 좋은 일이 될 수 있는 사회적 경제, 연기적 커뮤니티 비즈니스, 공유 경제 영역까지 확대할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 개발을 주민 공동체와 함께 해나갈 겁니다. 또 하나는 여기 사찰 주변에 서른여섯 가구가 있는데, 이 사람들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공간에서 살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그는 이곳 봉화지역에서 실행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사찰이 농촌 지역에서 어떤 일을 해야 할지 몇 가지 제안을 했다. 
 
첫째, 개인의 포교 역량이 아닌 조직화와 일을 나누는 역할 분담으로 공동체의 역량을 키우고, 공동체의 역량이 지역에 미치도록 한다. 
둘째, 도시 사찰과 적극적인 유대를 만들어서, 농촌 지역 사찰이 갖지 못한 것과, 도시 지역 사찰이 갖지 못한 것을 서로 나눌 수 있는 신행 공동체를 만든다. 
셋째, 지역의 역사와 문화, 인문, 자연 자원과 연계하고, 지역 주민과 함께 하는 것이다. 
넷째, 교구본사별 포교 전략 수립에 관한 전문가 그룹이 있어, 지역의 커뮤니티와 함께 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다섯째, 관광지와 연계된 사찰과 지역 주민이 함께 만드는 문화관광형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한다. 
여섯째, 불교청년회와 함께 연계하여 청년 창업 아이디어를 공모하고 청년과 함께 포교와 비즈니스의 장을 만들어야 한다. 
일곱째, 농업의 6차 산업과 연계한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한다. 
여덟째, 사찰의 휴양림을 기초로 한 자연치유 명상센터 건립 등을 통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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