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이 라마를 맞이하기 위해 준비해야 할 것들

2016-09-01     조성택

달라이 라마를 맞이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요. 2016년 6월 2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달라이라마방한추진회의 주최 및 주관으로 한국불교와 달라이 라마 국제포럼 ‘달라이 라마, 평화와 공존을 말하다’가 개최됐습니다. 이 국제포럼에서 조성택 교수는 ‘달라이 라마를 맞이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를 주제로 발표했습니다. 한국 불자들에게 많은 생각을 던져주는 내용이기에 독자들과 함께 들어봅니다. 편집자 주.

 

| 왜 달라이 라마를 초청하려고 하는가

‘달라이 라마를 맞이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답은 굉장히 쉽다고 생각합니다. 비자입니다. 한국 정부가 달라이 라마의 입국 비자를 발급하는가, 발급하지 않는가. 이것은 정치적인 문제입니다. 우리는 정치적 문제를 외면할 수 없습니다. 그게 첫 번째 문제일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번 달라이 라마의 방한은 성사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치적 문제를 떠나서 우리는 지금부터 1,300년 전 티베트에 크게 신세를 진 적이 있습니다. 삼국통일입니다. 그 당시는 티베트를 토번이라 했습니다. 토번이 없었으면 삼국통일은 불가능했습니다. 역사를 이야기해보자면 나당연합군이 백제, 고구려를 무너뜨리고 난 후 다시 신라와 당이 대결을 벌이게 되었을 때, 그 당시 신라의 국력으로는 당나라를 이길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마침 그때 당나라 배후에 있던 토번이 당나라를 공격했습니다. 그 가운데 우리가 통일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은 삼국통일은 국내전이 아니라 국제전이었습니다. 이처럼 어쩌면 달라이 라마의 방한 문제도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중 문제를 놓고 중국의 「글로벌 타임스」(환구시보)와 바티칸이 벌이는 움직임처럼 ‘국제적인 정치’ 문제로 해결하는 것이 나을지 모릅니다. ‘국내’ 정치적 문제로만 가져갈 경우, 더 좁게는 불교계의 한恨처럼 가져갈 경우에는, 성사되기도 어렵고 불교계의 입지만 좁아지고 옹색해지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따라서 저는 이 문제를 전체를 바라보는 국제적인 안목 그리고 정치외교를 넘어서는 근본적인 가치에 대한 문제 제기를 통해 해결해나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달라이라마방한추진위원회가 불교계를 넘어선 범종교위원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웃 종교에도 좋은 분들이 있고 이 일에 함께할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또 종교 바깥에 있는 분들도 동참해 달라이 라마 방한 추진이 우리 사회에 어떤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토번의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가 신세 진 것을 갚는다고 말한 부분은 의도적인 이야기입니다. 저는 달라이 라마를 모신다고 해서 우리가 안고 있는 많은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습니다.

그 분은 구원자도 아니고 만병통치의 약을 가지고 오는 분도 아닙니다. 저는 우리가 ‘왜 달라이 라마를 한국에 초청하려고 하는가.’라는 문제에 대해 조금 더 주체적인 생각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저는 달라이 라마를 모셔오는 일은 그분이 하고자 하는 일에 동참하는 일이고 연대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일어난 여러 가지 문제들은 우리가 풀어야 합니다. 우리가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를 그분이 해결해주지 못합니다. 우리만이 해결의 주체입니다. 그분을 한국에 초청하려는 이유는 우리가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를 어떤 외부의 영웅적인 인물이나 그 힘을 빌려서 해결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그분이 하고자 하는 일에 공감하고 그분이 하고자 하는 일에 동참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불교를 넘어서 종교를 넘어서 세계인들에게 희망을 주고, 희망의 빛을 만들어가는 달라이 라마에게 동참하고 연대하는 데 함께 하겠다.’는 주체적 의식을 갖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은 분명합니다. 제가 어릴 때 외부에서 손님이 오시면, 특히 큰 손님이 오시면 어머니께서는 일주일 전부터 집 청소를 했습니다. 우리도 청소해야 합니다. 청소는 우리가 이야기하는 한국불교의 개혁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디를 어떻게 청소할 것이냐. 그것은 달라이 라마는 어떤 불교를 제기하고 있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달라이 라마의 불교를 요약하자면 ‘탈전통, 탈종교’입니다. 달라이 라마가 책에서 직접 말씀한 내용을 읽어드리겠습니다.

“종교는 과거 수없이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처럼 다양화된 세계화 시대에는 종교가 인간의 모든 고민과 문제들의 해답을 줄 수 없습니다. 이제 종교를 초월한 삶의 방식과 행복을 찾아야 할 때입니다.”

이것이 바로 달라이 라마가 종교가 아닌 현세적 도덕, 현세적 윤리, 현세주의를 강조하는 배경입니다. 얼핏 봐서는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으므로, 현세주의나 세속주의적 도덕을 강조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또 그것과 어긋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달라이 라마가 강조하는 내용의 문맥을 잘 살펴보면 결국은 이데올로기에 갇힌 종교, 과거에 갇힌 종교에서 벗어나자는 것입니다. 그것을 현세적 도덕이다, 현세적 윤리다, 라는 말로 표현할 뿐입니다. 실제로 달라이 라마가 강조하는 것은 불교전통에서만이 아니라 이웃 종교에서도 수천 년간 강조해왔던 자비심 그리고 다른 사람에 대한 관용입니다.

달라이 라마는 종교라는 외피를 입고 이데올로기가 되고 도그마화 된 교리나 종교적 전통에 의지하지 않고 우리가 원래 가진 본래적인 본성을 발휘하자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불교라는 이름하에, 전통이라는 이름하에 세상의 고통을 외면하고, 승보라는 이름과 권위하에 무시하고 있던 여러 가지 문제를 다시 살펴보는 것. 저는 그것이 달라이 라마가 말하는 탈종교, 탈전통, 탈과거의 진정한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달라이 라마는 그야말로 원래 종교가 해야 할 역할들, 즉 세상이 종교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가 세상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야기합니다. 요즘 불교인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마치 우리의 모든 행위가 불교를 위한 것처럼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는 앞뒤가 전도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부처님께서도 그러셨듯이 세상이 불교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불교가 세상을 위해서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세상을 구제하고 세상을 치유할 수 있다면 불교라는 이름을 버려도 좋다는 것이 불교의 핵심적 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달라이 라마가 말씀하시는 탈종교적인, 현세적 도덕의 강조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저는 우리가 마치 불교를 위해서 세상에 존재하는 것처럼, 불국토를 만들기 위해서 우리가 세상에 존재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한다는 보다 근본적인 사실을 일깨워준 분이 달라이 라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분을 한국으로 초청한다는 것은 달라이 라마의 그러한 제안들을 깊이 함께 고민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무엇을 보여드려야 하는가

저는 우리 사회에 흐르고 있는 종교인들의 가장 큰 문제가 종교 중심주의라고 생각합니다. 근본주의라고 말씀드리지는 않겠습니다. 종교를 중심에 놓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기독교인들에게서 많이 드러납니다만 최근 불교인들도 그런 경향을 띠고 있습니다. 불교 중심주의가 아니라 세상이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에 도움이 된다면 불교란 이름이 없어도 된다는 생각입니다. 『금강경』 구절을 예로 들자면 “불교는 불교가 아니기 때문에 불교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 정신이 내재되어 있는 것이 불교인데 우리는 그것을 잊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세상의 중심이 종교라고 생각하는 종교 중심적 생각의 한 예가 다음과 같은 것입니다. 사실 불교에 성직자라는 개념은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브라마니즘을 비판한 이유의 핵심은 성직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출가스님에 대해 성직이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또 스님들 스스로가 성직이라는 말을 하는 경우까지 있습니다. 어쩌면 가톨릭에서 잘못 배운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불교에는 성직이란 말이 없습니다. 출가자든 재가자든 모두 수행자입니다. 불교는 수행의 종교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어느덧 불교인들끼리 성직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 외에도 일상적 실천에 무관심하고 종교적 의례나 기복에 열심인 오늘날 한국불교의 현실에 대해서도 깊은 고민이 필요합니다. 달라이라마 방한을 준비하면서 이런 부분들에 대해서 좀 더 깊이 생각할 기회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달라이 라마가 한국에 오면 무엇을 보여드려야 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저는 이 문제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보여주고 싶어 하는 것을 보여드릴 것인지, 그분이 보고 싶어 하는 것을 보여드릴 것인지 고민해야 합니다. 제 생각으로는 달라이 라마가 보고 싶어 하는 것을 보여드려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달라이 라마가 보고 싶어 하는 것은 그야말로 가난한 사람들, 고통받는 사람들, 이웃 종교, 한국의 오랜 전통 등 다양할 것 같습니다. 우리가 보여주고 싶은 것을 보여주기보다는 그분이 보고 싶어 하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좋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달라이 라마의 방한을 추진하면서 한국불교 또한 거듭나야 할 것입니다. 한국불교가 분단이라고 하는 역사의 상처 그리고 민주화·산업화 등의 역사적 과정으로 고통받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불교로 거듭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달라이 라마가 항상 강조하는 자비의 실천, 생명체의 연대 등에 한국불교가 동참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조성택
고려대학교 영문학과를 거쳐 동국대학교 인도철학과에서 석사를 마친 후, U.C 버클리대학교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뉴욕주립대학교 비교종교학과 교수를 지냈다. 한국학술진흥재단 인문학단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교육인적자원부 인문한국기획위원회 위원장, 대통령직속 문화융성위 인문정신특별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했다. 현재 고려대학교 철학과 교수이며, 민족문화연구원 원장으로 재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