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 스님의 선담禪談] 눈 밝은 스승

시대의 아픔을 아는 눈 밝은 스승이 그립다

2016-09-01     금강

 

         여름이 오면 일거리가 많아지고 점점 바빠진다. 욕심이 많아서인지도 모르겠다. 삼 개월 동안 8일 이상인 수행 프로그램만 일곱 번 정도 된다. 한 산중에서 다 수용할 수가 없어서 여기저기 이동해가면서 진행한다. 미황사에서 한문학당과 참선 수행, 홍천에서 무문관 수행, 서산에서 구참자 수행을 운영한다.
 
지난해 자살예방센터에 근무하는 직원이 오랫동안 상담했던 내담자가 자살한 것을 목격하고 심한 혼란을 겪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프로그램에 참석한 일이 있었다. 대화를 나누다가 우리나라에 자살하는 사람이 30분에 한 명씩 있다는 말에 깜짝 놀랐던 적이 있었다. OECD 국가 중에서 자살률 1위라는 말은 자주 듣고도 실감이 나지 않았는데, 막상 관련자의 이야기를 듣고 그 심각함을 알았다. 
 
요즘 들어서 자살에 대한 통계기사가 자주 눈에 들어온다. 최근 한국에서 하루에 살인 범죄로 1명, 산재사고로 5명, 교통사고로 13명, 자살로 38명이 사망한다는 신문기사를 읽었다. 이라크 전쟁 5년 동안 사망한 숫자보다 한국에서 5년간 자살한 사람이 2배 많고, 아프가니스탄 전쟁 5년 사망자보다 한국에서 5년간 자살한 사람이 5배나 된다는 통계 기사도 접했다. 한국은 지금 이라크 전쟁보다 더 심각한 전쟁 상황에 놓여 있다. 다만 사람과 사람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총성 없는 전쟁일 뿐이다.
 
이런 현상들은 사회가 사람들에게 경쟁과 대립을 조장하는 데서 온다. 임제 선사는 범부나 성인, 부처나 조사, 미혹함이나 깨달음, 불·보살의 지위나 위치는 물론 모든 존재의 이름과 모양에 대한 고정관념이나 차별을 초월한 무위진인無位眞人의 모습이 필요하다고 했다. 자타自他, 주객主客, 상하上下, 선악善惡, 미추美醜, 민족, 인종, 시공時空과 같은 분열이 없는 본위의 세계에서만 경쟁과 대립이 해결된다는 것이다. 
 
 
 
         1998년 새해 벽두부터 IMF 외환위기로 나라가 들썩일 때였다. 장성 백양사에서 살았는데 총림의 큰 어른이신 서옹 스님께서 아침 공양 후 방장실로 부르셨다.
 
“내가 신문을 보니까 나라가 망할 지경에 이르렀다. 소위 우리가 정신적 지도자인데 가만있어서는 안 된다. 이 시점에서 우리가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찾아보기를 바란다.”
 
고령인 88세의 연세에 신문을 꼼꼼히 보시고 나라 걱정이 많으셨던 모양이다. 방문을 나와 바쁘게 하루가 지나고 다음 날 아침이 되었다. 또다시 시자를 통해 방장실에 들어오라는 전갈이다. 아차 싶었다. 어제 스님께서 숙제를 내주었는데 생각도 못 하고 하루를 보낸 것이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절을 올리기도 전에 물으셨다.
 
“어때! 생각해 봤는가.”
“아니요, 아직.”
머뭇거리는 순간 
“나가.” 
 
깜짝 놀랐다. 모시는 동안 언짢은 소리나 큰소리를 한 번도 하신 적이 없으셨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당장 IMF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무엇이 문제이고, 사회적으로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지 찾느라 하루를 보냈다. 
 
다음 날 아침이 되어 또다시 찾으셨다. 이제 소가 도살장 끌려가는 심정이다. 또다시 머뭇거리다 쫓겨났다. 정부에서 하는 일과 종단에서 하는 일, 이웃 종교에서 대책을 세우는 것들을 파악하느라 또 하루를 보냈다. 기자들과 전문가들에게 종교가 해야 할 역할이 무엇인지 묻고 파악한 뒤 결국 내가 제일 잘하는 일로 결론을 내렸다. 외환위기는 대량 실직사태를 만들어내고 그 상태가 장기화되면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지는 것은 자명한 일일 터였다. 그래서 만든 프로그램이 ‘실직자 단기출가 수련회’였다. 스님께 허락을 맡아 5개월 동안 진행했다.
 
진행에 앞서 전국 24개 본사 포교국장 회의에서 제안했더니, “실직자들이 수행도량에 오면 절이 어수선해진다.”는 등의 이유로 검토하지도 못한 채 백양사만 단독으로 하게 되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아쉽다. 식민지 시대와 한국전쟁 이후 종단은 내부의 정체성 회복과 전쟁으로 파괴된 전각을 복구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한국사회가 7~80년대에 민주화의 물결로 일렁일 때 불교계는 뒷짐을 지고 있는 일이었다. 이제 절집의 전각은 어엿한 모습을 갖추었으니, 그곳에 사람들을 머물게 하여 부처님의 지혜와 스님들의 수행법으로 고단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아쉬움이 컸다. 이후 사람들 사이의 갈등과 번뇌는 깊어졌고, 그에 반하여 갖가지 상품으로 개발된 명상법들이 들어와 도움을 주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고급 유희로 변질되기도 했다.
 
 
 
 
         아무튼, 나는 ‘실직자 단기출가 수련회’로 인생의 큰 가치와 원력을 찾는 계기가 되었다. 실직상태에서 사회 낙오자, 무능한 가장으로 낙인찍힌 사람들. 동료에 대한 배신감과 원망의 굴레 속에서 자살을 생각했던 이들. 그들에게 불교가 희망과 존재의 가치를 심어주었기 때문이다. 의사만 사람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나도 사람을 살리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자부심도 컸다. 
 
몇 해 전 ‘마음의 근육을 만들다’라는 MBC 방송에 출연한 뒤 미황사 수행 프로그램에 갑자기 많은 신청자가 몰려왔다. 20여 명의 청년들이 찾아왔는데 상담을 해보니 정신질환과 약물치료를 받고 있는 이들이 7명이나 되었고, 직접적으로 자살을 생각하고 있는 이들이 4명이나 있었다. 활기차고 씩씩해야 할 청춘들의 아픈 속내를 들여다보는 건 고통이었다. 온 정성을 기울여 수행으로 도움을 주어야 할 목표가 확실해졌다. 그 결과 더 적극적이고 깊은 수행의 체험을 하고 돌아가는 그들의 모습을 볼 수 있어 뿌듯했다. 
 
지금 한국사회는 고도성장사회에서 이제 저성장사회로 바뀌는 대전환의 시대에 놓여 있다. 이제 모든 사회정책과 개개인의 인식들까지 저성장 모드로 바뀌어야 한다. 그 인식의 전환 속에 단순하고 검박한 생활, 공동체 가치를 회복해야 한다. 그럼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무한경쟁과 욕망을 분출하는 사회로 내몰리고 있다.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다. 최근에는 고고도 미사일방어 체계인 사드 배치로 나라가 혼란스럽다. 욕망의 바탕 위에 이룩한 과학 문명은 인류 멸망의 길이라는 경고의 징후들이 곳곳에서 나타남에도 권력을 가진 이들은 수많은 사람들을 멸망의 길로 끌고 간다. 우리나라는 세계 여러 국가 중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며 전쟁의 위험을 안고 있는 곳이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과 우리나라의 사드 배치는 한반도를 극한의 대립과 절대적 이율배반의 상태로 몰아가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국민 개개인의 삶까지도 무한경쟁과 대립의 틀 속으로 빠뜨리게 한다. 마음으로는 평화와 행복을 추구하는 삶의 길을 누구나 원하지만, 행동은 절체절명의 멸망으로 가고 있다. 이 나라에 갈등의 첨단인 사드 배치는 안 된다.
 
이러한 일촉즉발의 위기는 IMF 때와는 전혀 다른 양상이다. 점점 미망으로 가는 꿈에서 깨어나게 할 방법은 없는 것인가. 시대의 아픔을 아는 스승이 그립다. 자비의 해답을 찾기 전에는 문 안으로 들어오지도 못하게 한 큰 스승 서옹 스님이 그립다.                                                                                      
           
 
금강 스님
미황사 주지. 조계종 교육아사리. 서옹 스님을 모시고 ‘참사람 결사운동’, 무차선회를 진행하였다. 홍천 무문관 프로그램을 개발하였고, 참선집중수행 ‘참사람의 향기’를 진행하며 일반인들과 학인스님들의 참선수행을 지도하고 있다. 저서로 『땅끝마을 아름다운 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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