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를 만나다] 유식唯識을 시작하면서

내가 하는 모든 행위는 그냥 사라지지 않는다

2016-09-01     김사업

유식唯識을 시작하면서

 
김사업
우선 두 편의 이야기부터 들어 보자.
 
이야기 1. 섣달 그믐날 밤 11시. 어느 주부가 목욕재계하고 집을 나섰다. 엄동설한의 매서운 바람을 맞으며 그녀가 찾아간 곳은 인근의 가난한 절 법당이었다. 실내였지만 외풍은 왜 그리 세던지. 문틈으로 찬 바람이 사정없이 새어 들고 있었다. 정성껏 준비한 초와 향에 불을 댕기고 부처님 전에 절을 올리면서 이렇게 발원했다.
 
“올 한 해 알게 모르게 지었던 모든 잘못을 참회합니다. 새해에는 티 없는 마음으로 가족에게 정성을 다하고, 어렵고 힘든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겠습니다. 지금의 이 마음에서 아득히 멀어질 때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비록 그럴 때라도 문득 정신을 차려 다시 맑은 마음과 행을 이어 나가겠습니다.”
 
이날 밤 그녀의 기도 모습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잡념 없이 온 정성을 다해 절하면서 이렇게 발원한 그녀는 그해 가족을 따뜻하게 보살피고 어려운 사람들을 소리 소문 없이 도왔다. 이웃의 독거노인 집을 틈틈이 찾아가 청소해 주고, 아들의 친구 중에 결식하고 있는 애가 있다는 말을 듣고는 몰래 그 애의 급식비를 대주었다. 그녀는 이렇게 한 해를 보냈다. 그러나 이 주부의 온정 어린 행동을 아는 사람은 당사자 몇 명에 불과했다. 나머지 어느 누구도 그녀의 선행을 알아주지 않았다. 
 
이야기 2. 온 천지가 잠든 한밤, 한 청년이 아무도 없는 밤길을 걷고 있었다. 길에 뭔가 떨어져 있어 주워 보니 5만원권 돈뭉치였다. 주위를 한 번 쓰윽 돌아보고는 얼른 돈뭉치를 주워 자신의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필요한 것 사고, 친구랑 해외여행 가야지. 횡재 만났다.”
 
돈뭉치를 슬쩍 주워 넣는 그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는 대단한 행운이라고 좋아하면서 그 돈으로 새로 출시된 고가의 물건도 사고 해외여행도 다녀왔다. 누구도 그 돈의 출처를 몰랐다. 돈이 궁한 또래 친구들은 이렇게 맘껏 돈을 쓰는 그가 부러웠다. 남들 눈에 그는 행복한 사람이었다.
 
남모르게 기도하고 온정을 베푼 주부, 그리고 남모르게 슬쩍한 돈으로 욕구를 채우는 청년. 과연 이들이 행한 남모르는 기도와 온정, 그리고 부당한 습득은 앞으로 자신에게 아무런 영향력을 미치지 않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영향력을 미친다.”이다. 
 
남이 알든 모르든, 자신이 의식하든 못 하든 내가 하는 모든 행위는 그냥 사라지는 법이 없다. 향 싼 종이에는 향내가 배고 생선 싼 종이에는 비린내가 배듯이, 모든 행위는 일어나는 순간과 동시에 당사자에게 그 행위의 영향력을 남긴다. 착한 행위는 또다시 착한 행위를 할 수 있는 영향력과 좋은 과보를 가져오는 영향력을 남기고, 악한 행위는 이후에 다시 악한 행위를 할 수 있는 영향력과 괴로운 과보를 초래하는 영향력을 남긴다.
 
어떤 구조를 통해 이러한 과정들이 일어날까? 이에 대해 세밀히 밝히고 있는 것이 대승불교의 유식唯識사상이다. 물론 이 부분은 유식사상의 일부에 불과하지만, 이 부분에서 유식을 능가할 사상은 없을 것 같다. 유식사상은 공空사상과 함께 대승불교의 양대 핵심 교리이다. 화엄, 천태, 밀교 등 다양한 대승불교 사상은 공과 유식을 두 기둥으로 삼아 꽃을 피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식은 인도를 넘어 아시아 전체의 정신문화에 실로 크나큰 영향을 미쳤다. 신라 시대의 유명한 원효(617~686) 대사가 두 번에 걸쳐 중국으로 유학 가려 했던 것도 바로 이 유식을 배우기 위해서였다. 
 
인도의 고승들은 깊은 삼매의 체험을 바탕으로 연기緣起와 공空을 새로운 각도에서 고찰하여, 사상과 실천 양면을 아우르는 뛰어난 대승적 체계를 완성했다. 이 체계가 바로 유식이며, 그것을 구성하는 주요 뼈대는 식전변識轉變·유식무경唯識無境·삼성설三性說·대승 유가행大乘 瑜伽行의 수행체계 등이라 할 수 있다. 유식은 어떻게 하면 우리를 걸림 없는 대자유의 세계, 열반·해탈의 세계로 인도해 나갈까를 시종일관 염두에 두고 그 교리와 수행도를 펼쳐 나간다.
 
| 누구도 행위가 남기는 영향력을 막을 수 없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하는 매순간의 행위들이 어떤 식으로 그 영향력을 남기는지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어느 유명한 명필가가 문하생 시절에 겪은 이야기다. 열심히 서예 연습을 했지만 글씨가 늘지 않았다. 소질이 없다고 한탄하며 스승에게 서예를 그만두겠다고 하직 인사를 했다. 스승은 말했다. “내가 자네라면 이렇게 생각하겠네. 한 번 글을 쓰면 한 번 쓴 만큼 필력이 남고, 두 번 쓰면 두 번 쓴 만큼 필력이 남는다.” 스승의 말을 듣고 이 서예가는 더 한층 서예 연습에 매진한 결과, 마침내 후세까지 이름을 남기는 명필이 되었다.
서툴던 붓글씨도 자꾸 쓰다 보면 늘게 마련이다. 왜 그럴까? 쓴다는 행위가 행위자에게 그 영향력을 남겼기 때문이다. 매일 아침 조깅을 하면 뛰는 속력이 빨라진다. 그 이유를 의학적으로 설명하면 심폐기능과 근력이 향상되었다고 할 수 있다. 심폐기능과 근력의 향상, 이것이 바로 뛴다는 행위가 뛰는 사람에게 남긴 영향력이다.
 
행위가 아무런 영향력도 남기지 않고 사라진다면, 아무리 조깅해도 속력의 향상은 없고 아무리 노력해도 붓글씨는 늘지 않을 것이다. 한석봉의 명필, 그 어머니의 떡 써는 솜씨도 볼 수 없는 세상이 되어 있을 것이다.
서예 연습이나 조깅뿐만 아니라 몸으로 하는 우리들의 모든 행위는 본인이 원하든 원치 않든 그 영향력을 행위자에게 정확히 남긴다. 마치 그림자가 그 주인을 따르듯이, 영향력은 행위의 뒤를 따른다. 한 번의 행위는 한 번만큼의 영향력을, 두 번의 행위는 그만큼의 영향력을 행위자 본인에게 남긴다. 노력은 내가 하는데 실력 향상은 엉뚱한 사람에게 일어나는 일은 없다. 누구도 행위가 남기는 영향력을 막을 수는 없다. 그래서 누가 뭐라고 하든 올바른 훈련을 거듭할수록 높이뛰기 선수는 더 높이 뛸 수 있고, 권투 선수의 펀치력은 더 강해진다.
 
콩나물을 키우는 시루의 밑바닥에는 구멍이 많이 나 있어 물을 부으면 금방 물이 다 새 버린다. 물 한 바가지를 부어도 금세 새 버려 물은 흔적을 찾기 힘들다. 하지만 그렇게 잽싸게 새고 마는 물이지만 그 영향력으로 콩나물은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란다. 한 번 물을 주면 한 번 준 만큼, 두 번 물을 주면 두 번 준 만큼 콩나물은 자란다.
 
어느 며느리의 이야기이다. 지금은 조신하지만 여고 시절에는 불량기가 좀 있었다. 학창 시절 친구들과 어울려 욕 섞인 말을 더러 했었는데 시집 와서부터는 욕이라고는 일절 입에 담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시어머니와 단둘이 앉아 마늘을 까고 있었는데 시어머니가 은근히 친정 흉을 보는 것이 아닌가. 며느리는 못 들은 척하고 참다가 화장실에 간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장실로 들어서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입에서 욕 한마디가 튀어나왔다. 10년 전 여고 시절 친구들과 깔깔대며 했던 바로 그 욕이었다.
 
10년 전 무심코 했던 욕 한마디가 없어지지 않고 남아 있다가 자기도 모르게 튀어나왔던 것이다. 몸으로 하는 행동뿐 아니라 우리가 하는 말도 의식하든 하지 않든 본인에게 영향력을 남긴다. 말이 남긴 영향력은 이렇게 10년이 지나도 없어지지 않고 남아 있다가 때가 되면 형체를 갖추어 나타난다.
 
한 번 욕하면 한 번 욕한 만큼의 영향력이, 두 번 욕하면 두 번 욕한 만큼의 영향력이 고스란히 남는다. 부드러운 말 한마디는 그 부드러운 만큼의 영향력을, 입에 담지 못할 험담은 그 험한 만큼의 영향력을 남긴다. 그리고 이 영향력은 봄이 되면 씨앗에서 싹이 돋아나듯이 때가 되면 형체를 갖추어 다시 그 모습을 드러낸다.
 
영어 단어 외울 때를 생각해 보자. 한 번 외울 때가 더 잘 외워지던가? 열 번 외울 때가 더 잘 외워지던가? 물론 열 번 외울 때이다. 외운다는 것은 생각을 하는 것이다. 생각이 자신의 영향력을 남기지 않는다면 아무리 외워도 외워지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외국어를 익히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하고, 늘 타는 버스가 몇 번인지 기억할 수 없어 집으로 돌아갈 수도 없을 것이다.
 
초등학교 때 친했던 친구의 이름을 지금도 기억한다. 생각이 남긴 영향력도 신체적 행위나 말이 남기는 영향력처럼 쉽사리 없어지지 않는다. 남아 있다가 조건이 갖추어지면 다시 생각으로 떠오른다. 생각도 한 만큼 그 영향력이 남는다. 때문에 욕심을 낼수록 만족이 아니라 욕심만 커져 있으며, 미워하기 시작하면 증오는 어느새 눈덩이처럼 불어나 있게 된다. 신체적 행위와 말뿐만 아니라, 무심코 하는 생각도 자신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친다는 것에 주의해야 한다.
 
| 아뢰야식과 종자
 
불교에서는 우리가 하는 모든 행위를 셋으로 나눈다. 첫 번째가 신체적 행위로 이것을 신업身業이라고 부른다. 업(業, karman)은 행위를 뜻하는 불교 용어인데, 행위의 결과로 남게 되는 영향력도 그 의미 속에 포함하고 있다. 두 번째는 말(언어)이다. 이것을 구업口業이라고 한다. 세 번째가 생각(정신 작용)으로 의업意業이라고 한다. 이 셋을 모두 합쳐 3업三業이라고 부른다. 우리가 하는 모든 행위는 3업 가운데 어느 하나이다.
 
앞에서 살펴본 세 가지 예, 즉 서예 연습과 욕설, 영어 단어 외우기는 신·구·의 3업 각각의 예였다. 이미 확인한 대로 신·구·의 3업, 다시 말해 내가 하는 모든 행위는 그냥 사라지는 법이 없다. 아무리 거부해도 반드시 그 영향력을 남기고 사라진다. 그리고 그 영향력은 쉽사리 없어지지 않고 남아 있다가 때가 되면 그에 상응한 결과를 가져온다.
 
욕 한마디가 남긴 영향력은 10년이 지나도 없어지지 않고 있다가 때가 되면 또다시 욕으로 나온다. 이렇게 악행이 남긴 영향력은 또다시 악행을 낳는다. 한편 욕 한마디 한 결과로 자신이 괴로움을 겪기도 한다. 욕을 들은 상대가 자신에게 앙갚음할 때 본인이 겪는 괴로움은 바로 욕의 영향력이 가져온 과보이다.
 
따라서 욕을 포함한 악행이 남긴 영향력은 두 가지 결과를 가져온다고 할 수 있다. 하나는 새로운 악행이고, 또 하나는 악행으로 인한 괴로운 과보이다. 마찬가지로 선행이 남긴 영향력은 새로운 선행을 낳고 좋은 과보를 가져온다.
 
그렇다면 행위의 영향력은 어디에 보존되어 있다가 때가 되면 다시 새로운 행위나 과보를 초래할까? 유식은 이에 대해 매우 설득력 있고 세밀하게 밝히고 있다. 그 영향력이 남아서 보존되는 곳은 바로 아뢰야식阿賴耶識이라 불리는 마음이다. 아뢰야식은 무의식처럼 심층에서 미세하게 작용하는 마음이다. 아뢰야식을 산스크리트 원어 그대로 알라야ālaya식이라고도 부른다. 불교에서 식識은 마음을 뜻한다. 유식에 의하면 우리 마음은 8가지 마음, 즉 8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가운데 가장 근본을 이루는 마음이 아뢰야식이다. 8식은 안식·이식·비식·설식·신식·의식·말나식·아뢰야식을 가리킨다.
 
나무에 비유하자면 아뢰야식은 뿌리에 해당한다. 잎이나 가지는 없더라도 뿌리는 늘 살아 있어야 나무가 산다. 마찬가지로 아뢰야식은 다른 마음이 작용하지 않더라도 단 1초도 멈추는 일 없이 언제나 작용하면서 생명을 유지시킨다. 숙면 중일 때도, 기절하거나 식물인간인 상태에서도 여전히 깨어 있으면서 활동한다. 나의 존재까지도 완전히 잊어버린 무념무상의 깊은 선정의 상태에서도 당연히 작용한다.
 
땅속에 있는 뿌리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듯이, 아뢰야식은 그것이 있다는 것을 전혀 인식할 수 없을 정도로 마음 깊은 곳에서 미세하게 작용한다. 때문에 서양 심리학에서 말하는 무의식과 같은 것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하지만 양자 사이에는 공통점뿐만 아니라 차이점도 있어 꼭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바로 이 아뢰야식에 우리들 행위가 남긴 영향력이 하나도 빠짐없이 그대로 보존된다. 행위가 남기는 영향력을 유식에서는 종자種子라고 부른다. 식물의 씨앗을 가리키는 종자라는 말을 어째서 행위의 영향력을 나타내는 용어로 채택하게 되었을까? 그 둘의 성격이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점에서 서로 유사하기 때문이다.
 
밭에 오이 종자를 심으면 적당한 때에 오이가 열린다. 호박 종자를 심었다면 호박이 열린다. 오이 종자에서 호박이 열릴 리 없고, 호박 종자에서 오이가 열릴 리도 없다. 마찬가지로 선행이 남긴 영향력에서는 때가 되면 새로운 선행과 좋은 과보가 생겨나고, 악행이 남긴 영향력에서는 매한가지로 새로운 악행과 괴로운 과보가 생겨난다. 선행을 해서 남겨진 영향력에서 악행이나 괴로운 과보가 초래되는 일은 결코 없다. 물론 악행이 남긴 영향력에서 반대의 결과가 생기는 경우도 없다. 이와 같이 식물의 종자와 행위의 영향력은 자신과 동일한 성격의 결과를 가져온다는 점에서 우선 서로 유사하다.
 
또한 오이 종자는 오이가 될 수 있는 가능성으로서 존재한다. 아직 오이가 되기 전이다. 물이나 양분, 기온 등 조건이 갖추어져야 종자에서 오이가 열린다. 이와 똑같이 욕 한마디가 남긴 영향력도 욕이 될 가능성으로서 존재한다. 욕 한마디가 남긴 영향력 또한 시어머니가 친정을 흉보는 등의 조건이 갖추어져야 욕으로 튀어나온다. 요컨대 식물의 종자든 행위의 영향력이든 어느 것이나 모두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으로서 존재한다는 점에서 양자의 공통성을 발견할 수 있다.둘은 이처럼 서로 유사한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행위가 남기는 영향력을 종자라고 부른다.
 
선행을 선업, 악행을 악업이라 한다. 그리고 선행도 악행도 아닌 중성적인 행위를 무기업無記業이라 한다. 업을 선악을 기준으로 나누면 이렇게 셋으로 구분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가 하는 모든 행위는 신업·구업·의업 가운데 어느 하나인 동시에 선업·악업·무기업 중의 어느 하나이다. 가령 노약자의 짐을 대신 들어 주었다면 그것은 신업인 동시에 선업이다.
 
벽에 CCTV가 설치되어 돌아가고 있었다. 어느 만취한 사람이 그 앞에서 왔다 갔다 하며 혼자 떠들고 별의별 행동을 다 했다. 이튿날 술에서 깬 그는 전날 밤 자신이 CCTV 앞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CCTV에는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다 기록되어 남아 있다. 그의 행동이 일어남과 동시에 기록된 것이다.
 
어떤 행동이 일어나자마자 CCTV에 기록되듯이, 본인의 아뢰야식에는 자신이 의식하든 못 하든 자신의 행위가 일어나자마자 그 영향력이 종자로 심어진다. ‘행위’와 ‘종자로 심어지는 것’은 동시이다. 한편 CCTV에는 신업만 기록되지만 아뢰야식에는 말과 생각까지, 즉 구업과 의업도 종자로 남는다.
 
혹자는 선업을 행할 때만 그 종자를 남기고 악업을 행할 때는 종자를 남기지 않는 묘수를 찾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아뢰야식은 단 1초도 쉬는 일이 없으니 종자의 누락은 있을 수가 없다.
욕 한마디의 종자를 남기지 않을 수 있을까? 욕을 하기 전에 마음속으로 “욕 종자는 남지 않는다.”를 수없이 외치고 욕을 한들 욕 종자가 남지 않을까? 오히려 마음속으로 외쳤던 그 말의 종자까지도 온전히 남는다. 이 글의 서두에서 이야기했던 남모르게 한 기도와 베풂, 그리고 부당한 돈의 습득도 그 행위가 일어남과 동시에 각각 본인의 아뢰야식에 그 종자는 심어진다. 알아주는 이 아무도 없어도 주부의 온정 어린 행위는 본인의 아뢰야식에 종자로 고스란히 남아 있다.
 
내가 행하는 몸짓 하나, 말 한마디, 생각 한 자락은 결코 그냥 사라지는 법이 없다. 반드시 자신과 성질이 동일한 종자를 나의 아뢰야식에 남기고 사라진다. 그 종자는 없어지지 않고 아뢰야식에 남아 있다가 때가 갖추어지면 그에 맞는 결과를 가져온다. 악담이 남긴 종자로 인해 나는 또다시 악담을 하게 되고 괴로움의 과보도 받게 되는 것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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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를 만나다’는 2016년 6월 500호에 연재를 끝맺었었습니다. 그런데 연재를 마친 이후 수많은 독자로부터 연재 종료에 대한 아쉬움 섞인 전화를 받았습니다. 두 선생님의 꼼꼼한 설명으로 유식을 공부하고 싶다는 요청도 많았습니다. 「불광」 편집부는 고민 끝에 불교 교리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유식에 대해서 조금 더 연재해주시기를 장휘옥·김사업 선생님께 부탁드렸습니다. 추가 연재에 응해주신 김사업 선생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 편집자 주.
 
 
김사업
오곡도 수련원 부원장. 서울대 영문학과 졸업. 동국대 불교학과로 학사 편입한 뒤, 유식 사상을 전공으로 석사ㆍ박사 학위 취득. 일본에 유학하여 교토대학(京都大學) 대학원에서 불교학 박사 과정을 수료하고, 동국대 사회교육원 교수로 재직. 『길을 걷는 자, 너는 누구냐』(공저), 『무문관 참구』(공저), 「유식설에서의 연기 해석」, 「선과 위빠사나의 수행법 비교」 등이 있다. 김사업 부원장은 장휘옥 원장과 함께 전문 수행자의 길을 걷기 위해 2001년 대학 강단을 떠나 남해안의 오곡도로 들어갔다. 두 사람은 이후 세계의 고승들을 찾아다니면서 수행했으며, 2003년부터는 간화선 수행에만 전념하여 일본 임제종 대본산 향악사의 다이호(大峰) 방장 스님 지도로 900여 회에 이르는 독참을 통해 피나는 선문답을 나누며 수행해 왔다. 간화선 수행 전문도량 ‘오곡도 명상수련원’(www.ogokdo.net)을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