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음식기행] 청한 하늘 달콤한 옥수수

적문 스님과 함께 초당옥수수 찾아 떠난 여행길

2016-09-01     박찬일
 
 
 
날 옥수수는 처음이지?
 
평택은 짧은 시간 동안 변화가 많았다. 본디 천혜의 농사짓는 땅이었으나 해군이 들어오고 항만이 개발됐다. 서해안고속도로로 대변되는 도로망의 확충은 물론이다. 그러니, 평택에서 도심으로 오가는 사람이 많아지고, 서울의 배후 도시 같은 느낌마저 들 정도다.
“전 지역이 대부분 낮고 평평한 충적지와 침식평탄지로 구성되어 있다.”(두산백과)
아닌 게 아니라 평할 평平, 윤택할 택擇이어서 평택이다. 사학자 신정일은 이런 얘기도 보탰다.
 
“(전략) 노숙동이 ‘기름진 들 멀리 손 모양 평평한데 농부들 도롱이삿갓 쓴 채 구름 헤치며 밭을 간다.’라고 하였던 것처럼 평택은 들이 넓어서 쌀의 본고장, 즉 경기미의 본고장이다. 조선 초기의 학자 하륜은 ‘길이 남과 북으로 통한다.’ 하였고, 서거정 또한 ‘삼도의 요충이 되는 지점에 있다.’ 하였다. 이처럼 평택은 서울에서 삼남으로 내려가는 길목에 자리했다.(『신정일의 새로 쓰는 택리지 4』에서)”
 
군데군데 아파트가 솟아 있지만, 너른 들이 역시 평택의 들판의 힘을 보여준다. 산이 낮아서 토지 효율이 뛰어나 보인다. 그곳에 바로 박건화 대표의 옥수수 밭이 있다. 5월부터 시설을 써서 이미 옥수수를 출하했지만, 아무래도 노지의 제철은 지금이다. 옥수수가 단단하고 야물게 익었다. 얇지만 거친 껍질을 벗기어내니 구수하고 독특한 향의 수염이 옥수수를 감싸고 있다. 박건화 대표가 옥수수를 내민다. 알이 이쁜 청춘의 그것처럼 고르고 싱싱하다. 대표가 먹어보란다. 삶은 게 아닌데, 뭐 이런 생각을 할 틈도 없이 “날로 먹어도 맛있어요.” 한다.
 
이건 무슨 느낌일까, 날 옥수수라니. 먹어본 경험도 없고 맛도 예측이 안 된다. 한 입 물었다. 놀랍게도 즙이 물씬 나온다. 아삭하다. 냉장고에 넣어둔 과일처럼 시원하다. 아닌 게 아니라 눈을 감으면 과일을 먹는 줄 알겠다. 대표가 웃는다. 눈가가 선하되 장난기가 있어 보이는 분이다. ‘날 옥수수는 처음이지?’ 뭐 이런 표정이다.
오랜만에 모신 적문 스님이다. 농사짓는 분이라 손이 거칠다.
 
“옥수수는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란다. 이렇게들 알고 있잖아요. 그래서 내가 절에서 꽤 많이 심었어요. 아 이게 말이요, 잘 안 자라는 거예요. 농사가 어려워요.”
옥수수는 본디 척박한 산간 땅에서도 자라는 작물이다. 그러하더라도 시비施肥를 해줘야 고품질로 나온다. 당연한 일이겠다. 기름진 거름 싫어하는 작물이 어디 흔하겠는가.
“저희야 친환경으로 길러보려고 하니까 축산 부산물을 액비(액체비료) 상태로 만들어서 밑거름해요. 이것저것 잘 자랄 수 있는 비료는 거진 다 해봅니다. 옥수수도 준 만큼 여물어요.”
날 옥수수에 향이 있다. 고소하고 여릿한 풀 냄새, 비린 맛은 전혀 없다. 많이 먹어도 배가 불편하지 않다고 한다.
 
 
 
2.png
 
 
| 들판에서 열을 지어 옥수수가 키가 솟았다
 
“옥수수 종류가 많습니다. 종자로 보면 훨씬 더 많을 거고. 이건 초당옥수수라고 불러요. 초당超糖이라는 뜻입니다.”
물론 없던 낱말이다. 초超란 본디 있던 것을 뛰어넘는다는 뜻이니, 엄청나다는 뜻으로 보면 된다. 그러니 매우 단 옥수수 정도가 되리라.
 
“옥수수가 달다는 건 품종에서 오는 겁니다. 찰옥수수, 메옥수수 같은 전통적인 옥수수와 다른 것이지요.”
옥수수는 품종별로 쓰임새가 다르다. 폭립종이라고 하여 팝콘을 튀기는 것, 한국에서 유행하는 찰옥수수, 이것은 실제로 아밀로펙틴이 많이 들어 있어서 찰기 있고 쭐깃하다. 사료용도 있다. 우리는 아무래도 직접 식사대용으로 쓰는 옥수수가 대세였다.
 
“단옥수수를 아직 잘 모르십니다. 간단히 설명하면 미국 통조림 옥수수 있잖아요. 그게 바로 단옥수수 계열이에요.”
이 종자가 돌고 돌아 우리나라에도 들어왔고 개량하여 재배가 늘고 있다. 마루농장에서 쓰는 종자는 대표가 직접 육종하여 개발한 것이다. 반딧불이 초당(품종보호 제 5008호)이라고 이름 붙였다.
 
“아이들이 참 좋아하겠네. 제가 절에서 아이들 데리고 교육도 많이 합니다. 음식이 어디서 오는지 알려면 농사를 지어봐야 하거든요. 애들 다 힘들다 하지요. 그래도 땅을 만져보고 작물을 길러보는 게 아주 중요해요. 절 음식의 기본은 땅의 기초를 아이들에게 가르쳐 주는 것도 포함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스님의 말씀에 대표가 고개를 끄덕인다.
 
“초당옥수수는 아이들도 참 좋아합니다. 가공하지 않아도 맛이 있으니까요. 이런 걸 먹으면서 하나씩 바뀌어가야지요.”
들판에서 열을 지어 옥수수가 키가 솟았다. 보통 옥수수보다 키가 좀 작은 듯도 하다. 여름에 수확을 하고, 가을 수확도 하는데 불은 때지 않고 시설 안에서 키운다. 10월, 11월이 마지막 수확이 된다. 가을 수확은 시설에서 이루어지지만 재배 기간 동안 가온(불을 때는 것)은 하지 않는다. 나머지 시간에는 땅심을 돋우고 농사 준비를 하는 시간이다.
 
적문 스님이 묻기를 “종자 문제가 큰일 아닙니까. GMO도 그렇고.”
대표의 얼굴이 어두워진다. 그는 본디 농협과 국가에서 종자를 기르고 보존하는 관청에서 육종 일을 했다. 그러니 이런 문제에선 아주 밝다.
“전통적으로도 육종을 해서 전혀 새로운 종을 만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아버지와 어머니를 다 알 수 있는 것이지요. 계통 안에서 나온다는 말입니다. 육종이 원래 힘든 게 육종을 해도 길러서 수확을 해봐야 결과를 알 수 있거든요. 그래서 몇 년씩 걸리는 건 기본입니다. GMO는 유전자 자체를 인위적으로 변화시키는, 전혀 다른 계통의 종자 생산법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알 수 없는 부분이 아직 너무 많아요. 검증되지 않은 건 물론이지요.”
우리가 GMO 식품을 먹고 충분한 시간이 흐르지 않았으니, 아직 검증이 안 된 셈이다. 여기에 위험성이 있다.
 
 
 
 
2.png
 
 
 
 
 
|          시골, 청한 하늘, 할머니, 찜솥, 구수한 맛
 
박건화 대표는 꿈이 있다. 종자를 만드는 사람 같은 과학자들이 거의 그렇겠지만, 자신의 이름을 단 품종을 국가에 하나 남겨 놓고 싶은 것이다. 그의 꿈이 이루어지기를 응원한다. 달콤한 옥수수로 신기원을 연 놀라운 인류처럼 말이다.
옥수수는 본디 토종이라는 개념이 없다. 원래 외래종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사람의 심리는 옥수수에 토종을 부여하고 있는 듯하다. 시골, 청한 하늘, 할머니, 찜솥, 구수한 맛 같은 요소들이 우리들의 정서를 감싸 안는 까닭이다.
반딧불이 초당옥수수는 꽤 값이 비싸다. 수확 후 포장하는 곳에서는 두 대의 저온창고가 가동 중이다. 그래도 대개는 보관기간이 짧다. 빨리 팔리기 때문이다. 스무 자루에 3만 원이다. 들인 노고와 종자의 가치에 비하면 비싸다 할 수 없지만, 일반 옥수수에 비하면 어지간히 높은 값이다.
“농사에서 부가가치 있는 걸 해야지요. 저희들은 젊으니까 아무래도 새로운 플랫폼에서 농사 결과를 팔고 이익을 얻는 방법에 익숙한 편입니다.”
 
인터넷으로 주문받아서 택배 발송을 한다. 반딧불이 초당옥수수는 보통 냉장보관 시 2주 이내에 먹어야 한다. 물이 많기 때문이다. 전분질이 많은 일반 옥수수와 달라서 수확 후 시간이 흘러도 맛이 떨어지지 않는다. 더 오래 보관하려면 생것 그대로 밀봉하여 냉동하면 된다. 3개월 정도는 맛을 유지한다. 이 옥수수는 찌면 더 달아 진다. 보통 14브릭스 정도인데, 이는 수박보다 높은 당도다. 상상이 안 되는 단맛이다.
옥수수는 자연의 사이클에 아주 충실한 작물이다. 옥수수만 따고, 남은 대는 그대로 땅에서 저물어서 땅의 일부가 된다. 그 거대한 사이클은 땅을 살린다. 스님의 말씀이 이어진다.
“옥수수도 맛이 있어야지요. 오늘 좋은 옥수수를 공양했습니다. 사찰음식이 저 높은 곳에 있는 게 아니라 채집하고 수확하는 데서 시작하는 것이거든요. 현장을 보니 참 좋습니다.”
 
스님의 팔뚝은 늘 짓는 농사로 검게 그을렸다. 불광을 위한 음식으로는 옥수수를 넣은 장떡을 만드신다. 알알이 옥수수가 살아 있고, 장의 맵싸하고 진한 맛이 잘 어우러진다.
어려서 옥수수도 마음 놓고 못 먹던 시절이 있었다. 도시는 늘 궁핍했다. 당원이라는 브랜드의 사카린을 넣고 할머니가 옥수수를 쪄주는 집이 왜 그리 부럽던지. 내게는 옥수수는 역시 부러움의 음식이 되고 말았다.
저 아메리카 대륙의 인디언들이, 유럽에서 가져온 종자로 농사를 망쳐서 굶어죽게 된 메이플라워호의 사람들에게 옥수수를 나눠 준 것이 오늘날의 미국을 만들었다. 옥수수는 현존하는 가장 강력한 구휼의 역사를 가진 작물인 것이다. 나눠준다는 것, 그것이 보시의 마음이며 부처님 아닌가. 바람에 흔들리는 들판의 옥수수를 보는데, 갑자기 그 생각이 들어 등줄기가 서늘해진다.
촬영협조. 마루농장 010-6339-9872
 
박찬일
‘문학과지성사’가 운영하는 ‘로칸다 몽로夢路’의 헤드셰프이자 작가. 어머니 치맛자락 앞에서 콩나물과 마늘을 다듬으며 요리를 시작했다. 서울에서 몇몇 히트식당을 열었으며, 한국 식재료를 이용한 이탈리아 요리는 그가 최초이다. ‘글쓰는 요리사’로 『뜨거운 한 입』, 『백년식당』,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 『지중해 태양의 요리사』, 『보통날의 파스타』 등 그만의 따뜻한 시선과 감성어린 문장이 돋보이는 책들을 냈다
 
 
 
적문 스님의 
알알이 톡톡 터지는 
옥수수 장떡
 
 
4.png
 
재료
초당옥수수 150g, 애호박 1/4, 풋고추 1개, 된장 1작은술, 고추장 1작은술, 물 1컵, 밀가루 1컵, 
부침유 : 들기름 1큰술, 식용유 1큰술
 
 
 
만드는 법
1. 애호박은 돌려 깎기 한 후 채 썰어 곱게 다진다. 풋고추는 길이로 잘게 썬 후 곱게 다진다.
2. 밀가루 반죽에 물과 된장, 고추장을 넣고 잘 섞어 준다.
3. 2에 애호박, 풋고추, 초당옥수수를 넣어 되직하게 반죽한다.
4. 팬에 부침유를 두르고 두툼하게 장떡을 부친다.
 
 
 
Tip_
초당옥수수를 익혀 먹을 때 설탕이나 소금 등의 첨가물을 넣으면 특유의 맛과 향을 잃게 된다. 오래 보관할 때는 생옥수수를 껍질을 한 겹만 남기고 벗겨 팩에 담아 냉동실에 보관하면 된다.
 
ⓒ월간 불광 -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