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緣起, 만월滿月, 수행자

박경귀 작가

2016-09-01     유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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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있으니 네가 있고, 네가 있으니 내가 있다  _   상념에 잠긴 부처님은 모포를 두르고 있다. 모포에는 그들에게 보내는 편지가 빼곡하게 적혀 있다. 잊지 않겠다는, 그들의 부모가 그들에게 보내는 편지. 화폭을 가득 채운 만월은 높은 곳에서 부처님을 비춘다. 2014년 4월 일어난 ‘집단적 상처’를 위로하고자 그린 작품 ‘링크 붓다Link Buddha-잊지 않으마’이다. 대칭구도라는 불화의 전통 맥락을 이어가면서 현재 일어난 이야기를 담아 세상의 아픔을 함께 보듬는다. 비통한 편지를 촘촘히 엮어 장엄한 문양으로 승화시킨 특유의 조형언어가 인상 깊다. 
 
박 작가의 작품에서는 만물이 서로 인연되어 상호 의존하고 있다는 화엄의 중심사상인 법계무진연기에 대해 깊이 골몰한 흔적이 엿보인다. 그는 관계에서 형성되는 연기緣起 세계를 표현한다. 또한 만월滿月은 작가가 가장 좋아하는 소재다. 작가는 작은 형상에서 시작해 점점 가득 채워지는 달이 수행과 닮아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만월은 우리가 지향하는 이상향, 자성을 찾은 깨달음의 상태를 상징한다. 연기, 만월, 수행자는 그의 작품을 이루는 키워드다. 
 
“학창시절 ‘나’와 ‘너’의 관계, 주체와 객체에 대해 많이 고민했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사찰 주련에 적힌 ‘자타일시성불도自他一時成佛道’라는 글귀를 보고 고민이 많이 해소됐어요. 열세 살에 불화를 시작해 전통불화의 색상, 선 등 기법에 심취한 시절도 있었지만, 점차 불교를 깊이 공부하면서 내용을 잘 담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중무진重重無盡한 법계연기法界緣起 속에서 서로를 함께 잘 이어주는 것이 수행자로서 큰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는 윤회라는 시간적 연기와, 공기의 순환이라는 공간적 연기를 작품으로 풀어내보고 싶습니다.”
 
그래서 박경귀 작가의 작품은 나와 너, 작가와 감상자를 소통하게 한다. 살펴보라. 그의 작품으로 발견하게 될 당신 옆의 ‘나’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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