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수행각雲水行脚, 멋지다

2016-07-11     윤구병

스님들이 발길 닿는 대로 정처 없이 떠도는 것을 운수행각이라 한다. 구름처럼 떠다니다 물처럼 흐르는 발걸음, 얼마나 멋진가. 구름은 떠다니다 빗방울로 후득거려 가뭄에 목 타는 곡식이나 남새에 생기를 북돋아 주기도 하고, 바람 타고 재를 넘어 눈발로 흩날리기도 한다. 물은 땅에 몸 붙이고 아래로 아래로 흐르면서 흙을 적셔 온갖 풀과 나무 살리기도 하고, 사람 목을 타고 흘러들어 몸 안 구석구석을 씻어내기도 하고, 실핏줄 끝까지 핏톨을 나르기도 한다. 그러니 운수행각은 그 자체로 보살행이다.

운수행각을 하는 스님들은 한자리에 이틀 머물지 말라는 말을 되새기며 낯선 길을 걷는다. 길들지 않으려는 뜻이다. 길든다. 길에 든다. 남이 닦아 놓은 길을 힘들이지 않고 걷는다. 그러는 사이에 의식은 잠이 들고 손놀림, 발놀림은 자동화된다. 낯익은 길은 새 길이 아니다. 그 길을 걷다보면 허수아비가 된다. 득도得道, 길을 얻는다. 이것이 목적인 이들은 수도修道, 길을 닦아야 한다. 제 발로 새 길을 내야 한다. 그 길은 눈 덮인 설산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드디어 바다에 아로새겨진 달맞이 하산 길에 이르기도 한다. 따지고 보면 한 길인데, 살 길 찾아 죽을 길로 들어서기도 한다. 그 길은 혜초가 걸었던 왕오천축, 가도 가도 끝이 없고, 빛바랜 낙타와 사람 뼈가 하얗게 흩어진 사막 길이기도 하고, 독재의 어둠을 제 몸 불살라 밝힌 베트남 승려들의 소신공양 빛길이기도 하다.

머리 깎은 이들만 발길 닿는 대로 낯선 길 걷는 게 아니다. 머리 검은 어중이떠중이들도 이리저리 떠돌기는 마찬가지. 내 나이 서른 가까울 무렵 울진 불영사를 찾아간 적이 있다. 같은 학교 종교학과를 나온 선배 한 분이 나한테 연락해 불영사로 오라고 해서 기차 타고 버스 타고 그 먼 길을 걷고 걸어 찾았던 기억이 난다. 함께 대불련 활동도 하고, 조그마한 몸집으로 자기보다 덩치가 두 배도 넘는 씨름꾼을 뒷배지기로 보기 좋게 넘기는 솜씨에 반하기도 해서 마음속으로 좋아하던 선배였다. 가보니 불영사는 조그맣지만 깨끗한 절이었다. 불영계곡을 감돌아 흐르는 물빛도 고왔다. 쭈뼛쭈뼛 절집 마당에서 서성거리는 나를 어느 비구니스님이 맞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일휴 스님이었다. 선배는 그 절에서 몸 추스르며 여러 달 머물고 있는 참이었다.

‘여시아문如是我聞’. ‘나는 이렇게 들었다.’ 『금강경』에서 가장 귀담아 들을 말을 나한테 고르라면 이 말을 들겠다. 나는 (며칠 지내면서 허물이 없어진 일휴 스님에게서) 이렇게 들었다. 비구니스님이 사는 절이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으되 가끔 중 옷차림을 한 머리 깎은 사내들이 절집 찾아와 이리 기웃 저리 기웃하는데, 그이들이 다녀간 뒤로 어떤 때는 대웅전 벽에 걸린 탱화가 사라지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관음전이나 산신각의 목각 인형이 없어지기도 한다는 이야기. 추사 글씨를 새겼다는 저 현판도 언제 떼어갈 지 모르겠다는 푸념 끝에 춘성 스님 이야기가 나왔다. 예산 수덕사에서 비구니스님 살해 사건이 일어나 세상이 떠들썩한 적이 있었단다. 바로 그 일이 있기 얼마 앞서서 수덕사에 들른 춘성 노장이 이 절에서 심상찮은 일이 생길 듯한데, 누가 찾아와 무얼 내놓으라 하면 그것이 무엇이든 아낄 생각 말고 다 내주어라 한마디 이르고 훌쩍 떠난 적이 있는데, 얼마 뒤에 그런 일이 일어났으니, 가만있을 수 없다 해서 일휴 스님을 비롯해 여러 비구니 스님들이 떼 지어 도봉산 자락에 있는 망월사로 찾아가 “스님은 미리 알고 계셨으면서 왜 일러주지 않아 이런 참변을 겪게 하셨단 말입니까.” 하고 원망을 늘어놓았더니, 춘성 가라사대, “이년들아, 그러게 내가 다 주어버리라고 했잖아. 죽으면 썩을 몸인데, 살보시도 보시인데, 그게 아까워서 몸 사리다 죽은 년, 날더러 어쩌라고!” 춘성다운 말이었다. 또 왜놈 순사에게 끌려가 취조 받을 때 “본적이 어디야?” “울 아부지 자지.” “아니, 이 중놈 농담 따먹기 하나. 다시 말해.” “그래도 못 알아들었으면, 울 엄마 보지.”라고 대거리했다는 말이 아직까지 전설이 되어 떠돈다. 그때 일휴 스님 세속 나이가 쉰이 넘었을 테니, 아직 살아 계시면 백 살이 넘었거나 가깝겠지. 춘성 노장은 걸림이 없어서 승복 입고 머리 기른 ‘중노미’ 노릇도 하고, 머리 깎은 ‘하이카라’ 양복쟁이로 종로거리에서 운수행각을 하기도 했는데, 언젠가 한겨울에 홀랑 벗고 속옷 바람으로 망월사까지 뛰어와 그 꼴 망측하게 여긴 어느 보살, “아니, 스님, 옷 어쩌셨어요?”, “언년이 애 데리고 떨고 있어서 벗어주고 왔다.”

어느 갸륵한 일본 스님 운수행각을 하면서 손에 빗자루를 들고 나섰단다. 무심히 발에 밟혀 목숨을 잃을 버러지들 안쓰러워서 길 쓸고 나서 걸음 옮겼다는 그 자비행을 기리는 시러배아들놈이 있어 나도 한마디. “아, 빗자루질에 몸 다치고 뒈지는 것들 더 많이 생겨. 그게 무슨 자비고 보살행이야. 얼이 썩은 놈들이나 하는 짓이지.” 햇살이 이명박근혜, 소선진숙 보살 등 가려 쪼이더냐. 바람이 부처님 마구니 콧구멍 가려 드나들더냐. 사발에 담긴 물 네 목구멍 내 목구멍 따로 가려 넘어가더냐. 네가 내딛는 발걸음 고마워하고 네 원수가 내딛는 발걸음 내치는 땅 따로 있더냐. 구름처럼 빈 하늘 떠돌고 물처럼 아래로 아래로 내닫는 발끝에 무엇이 어떻게 닿더냐. 『유리구슬놀이(Glasperlenspiel)』를 쓴 헤르만 헤세(Herman Hesse)는 아주 젊었을 때 구름을 나만큼 사랑한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했지만, 그건 헛소리다. 이 사람이 ‘방랑’(운수행각을 그 사람들은 그렇게 부른다.), 반더룽Wanderung을 할 적에 구름은 그이의 삶에 바로 잇대인 게 없었다. 그저 보고 즐겼을 뿐이다.

그이가 고타마 싯다르타의 삶을 그렸을 때 그이의 머리와 가슴에 출렁이며 흐르던 강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저 생각놀이, 관념의 유희였을 따름이다. 밭머리, 논두렁에서 바장이는 여름지이(농사꾼)들의 ‘구름물따라걷기’는 다르다. 농사꾼들은 밤낮 없이 하늘을 본다. 눈부신 햇살을 사랑해서도 밤이면 촘촘히 돋아다는 별빛이 아름다워서도 아니다. 구름을 살피려고 본다. 그 구름 속에 비로 쏟아질 물이 담겼는지 아닌지, 담겼으면 얼마나 담겼을지, 때 맞춰 내릴지, 너무 때 이르게 또는 때 늦게 내릴지, 궁금해서 때로는 애타는 마음으로, 때로는 걱정스럽게 쳐다본다. 여름지이들에게는 하루 열두 때, 한 달 서른 날, 한 해 열두 달, 365일이 다 다르다. 농사꾼의 삶에서 하루도 같은 날은 없다. ‘네가 머문 그 자리에서 운수행각을 해라.’라는 말을 ‘하루 짓지 않으면 하루 먹지 마라.’라는 말로 보짱(百丈)이 바꾸어 말한 것이라면?

세상살이가 이 모양, 이 꼴이어서는 부처가 꿈꾸던 중생구제, 뭇산이 살림은 없다. 애비 좆대가리, 애미 보지구멍을 떠나서, 어버이들 살기 앞서, ‘부모미생전’에 눈길을 돌려야 한다. 부처가 이르던 말이 그 말 아니었던가? 사대四大, 네 가지 큰 것, 땅, 물, 불(해), 바람은 그저 산 것을 감싸는 버물임이 아니다. 이미 그것대로 살아 있다. 우리 옛 분들은 불을 장작불, 연탄불, 전깃불 같은 물질현상으로만 보지 않았다. 불알, 불두덩, 불꽃(거웃) 같은 말을 눈여겨봐라. ‘불을 뿜는다’는 말도 허투루 듣지 마라. 불은 수컷의 거시기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유식한 말을 입에 올리자면 옛 사람들에게 불은 생식의 원천, 생명의 원천으로 여겨졌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불볕더위는 불을 내뿜는 좆대가리와 둘이 아니었다. 몸이 불타오른다는 말도 빈말이 아니었다. 흙도 바람도, 물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세상은 어떻게 돌아가는가. 이 네 가지 다른 모습으로 드러나는 큰 이들을 죄다 죽여 버렸다. 물질로 바꾸어버렸다. 본받을 게 없는,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바꿔 쳤다. 그리고 요즘 사람들은 심지어 부처를 따르고 부처가 되겠다는 이들도 이 큰 산 이들을 헛것으로 여긴다. 좆도 아닌 물로 본다. 이래서야 사람 탈 쓰고 삼천 대천세계를 누비고 다녀도 제대로 된 운수행각이 아니다. 그야말로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일 뿐이다. 무상정등정각, 더할 나위 없이 바로 고른 이들의 참모습, 진면목을 제대로 보려거든 농사꾼의 눈으로 구름을 봐라. 물을 보고, 바람을 보고, 햇살을, 불을, 사타구니를 봐라. 고루 비추고, ‘동서남북‘ 가리지 않고 불어 꽃가루 날리고, 거기에 자리 잡고 자라는 것들 두루 살리고, 아래로 아래로 흐르면서 닿는 곳마다 움 돋우는, 불과 바람, 땅과 물을 부처님 보듯이 봐라. 불벼락이 되고, 어둠을 휩쓰는 바람이 되고, 저 밑바닥에서 사납게 물결치는 바다가 되고, 이 헐벗고 굶주리는 땅을 불국토로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제대로 된 운수행각이 아니겠는가.

 

 

윤구병

서울대학교 철학과와 대학원을 나오고 월간 「뿌리깊은나무」 편집장을 거쳐 충북대학교에서 철학과 교수를 지냈다. 1995년 대학 교수직을 그만두고 전북 부안으로 낙향, 농사를 지으면서 대안교육을 하는 ‘변산교육공동체’를 설립해 20여 가구가 함께 생활하고 있으며, 어린이 전문 출판사인 보리출판사를 설립해 많은 어린이 책을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