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광佛光, 찬란한 부처님의 빛

사진으로 보는 월간 「불광」 500호

2016-06-13     불광출판사


“그때는 사무실도 없고, 대각사에 두 평 반 되는 골방에서 책상 하나, 전화기 한 대 놓고 시작했었습니다. 그 방에서 광덕 스님께서 원고도 쓰고, 그 전화로 원고 청탁도 하고, 독자들의 이야기도 듣고 하면서 처음 「불광」이 세상에 나왔습니다.”
-  2016년 5월 3일  「불광」 500호 기자간담회 중 지홍 스님曰
1974년 11월, 대각사 작은 골방에서 순수불교를 창간이념으로 삼아 발간한 월간 「불광」이 2016년 6월, 500호가 되었다. 한 호의 결호 없이 스스로 타오르는 횃불이 되어 무명을 밝혀온 월간 「불광」 500호. 그 찬란한 역사를 돌아보다.


순수불교선언과 함께 창간한 월간 「불광」
“깨를 한 줌 쥐어서 확 뿌리면 곳곳에 퍼지듯이 전국에 전법거점을 만들어야 한다.(2014. 11. 481호. 지홍 스님, 원택 스님 대담 중)”고 말씀하시던 광덕 스님. 스님은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게, 법회를 넘어서 보다 광범위하고 파급력 있는 방법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바르게 전할 방법을 모색했다. 무속적, 기복적인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던 당시 불교계에서 불교의 참모습을 찾고자 했다. 그리하여 1974년 11월, ‘순수불교선언’과 함께 월간 「불광」이 세간에 등장했다. 74쪽의 창간호를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가득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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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학·신학·실천의 삼박자를 갖춘 「불광」
참신한 기획과 깊이 있는 사색으로 교학·신학·실천의 삼박자를 갖춘 「불광」은 고승대덕 스님들은 물론, 한국불교역사에 획을 그은 학자와 문인들의 옥고를 독자에게 선사했다. 초기 「불광」의 지면 80퍼센트를 채운 광덕 스님의 글을 비롯해 성철 스님, 경봉 스님, 서옹 스님, 고암 스님, 석주 스님, 일타 스님 등의 글은 지금 보아도 정문일침으로 핵심을 꿰고 있다. 서돈각, 양주동, 이항녕, 원의범, 황수영, 이병주, 조명기, 홍정식, 이종익, 목정배, 이영자, 고익진, 이기영, 문명대 등 한국 불교계를 이끌던 학자들의 글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대표적 불교교양서로서 당연한 일이었다. 당대의 문인 미당 서정주는 창간 직후 1975년 1월 신년송을 기고했으며, 칼럼 ‘자하문’을 연재했다. 김동리, 고은, 조정래, 정채봉, 송수권, 류시화, 한승원, 남지심, 김춘수, 천양희 등 유려한 문체를 뽐내는 작가들의 글도 「불광」에 교양을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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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광」을 보냅시다’, 월간 「불광」 보내기 운동
“우리의 이웃에는 아직도 부처님의 빛을 받지 못하고 애타게 자비하신 법문을 기다리는 분이 많습니다. 이들 형제에게 따뜻한 부처님 빛을 보냅시다. 우선 국토방위의 최선에서 몸 바치고 있는 국군장병과 영오의 몸이 되어 빛을 찾는 재소자에게 「불광」을 보냅시다.”
문서포교활동이 미미했던 1970년대, 「불광」은 전법의 흐름을 선도했다. 1976년 1월, 불광 캠페인 ‘월간 「불광」 보내기 운동’을 시작했다. 


잡지를 너머 함께 호흡하다
「불광」은 단순한 전법지를 넘어서 불자들을 한데 잇는 연결고리가 되었다. 불교의 대중화, 현대화를 위해 고심했던 흔적들은 잡지에 고스란히 남았다. 「불광」은 ‘전통사상의 현재’를 주제로 창간 1주년 기념 한국사상 강연회(1975. 10. 13.)를 개최해 불자들에게 함께 생각할 거리들을 제시했으며, 꾸준히 강연회와 대담들을 이끌어냈다. 이러한 강연들은 500호를 맞는 오늘, 2016년 6월 11일 ‘붓다 빅퀘스천’으로 이어진다. 
그 밖에도 새싹불자들은 미래불교의 주역이라는 생각으로 1995년 어린이 날, ‘제1회 부처님 그림 그리기 대회(목아박물관)’를  「불광」 주최로 개최했다. ‘부처님 그림 그리기 대회’는 2006년까지 12년간 꾸준히 이어나갔다. 문화예술에도 힘써, 「불광」에 게재한 창작국악교성곡 ‘부모은중송’과 ‘보현행원송’을 무대에 올렸다. 

1999년 11월 14일에는 통권300호(1999. 10.) 발행 및 창간 25주년(1999. 11.)을 맞이해 잠실학생체육관에서 대법회를 봉행했다. 2008년 2월호 지령 400호를 발간했을 당시는 ‘월간 「불광」 400호 축하·나눔의 밤’에 불자들이 함께 모여 축하했다. 「불광」은 단순히 정법의 전달자로서의 역할만이 아닌 결집의 주체로서 역할을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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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의 이정표 역할을 도맡은 「불광」
「불광」은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에 앞장서 불교계의 흐름을 주도해나갔다. 1980년 1월에 첫 칼라 지면을 도입하고, 1981년 5월에는 만화 ‘달공 거사’를 지면에 실었다. 1990년대에야 일반사회에 대중화되었던 가로쓰기를 「불광」은 1984년 1월호부터 도입했으며, 그 달부터 지금은 대중화된 ‘사찰음식’을 칼라지면으로 연재하기 시작했다. 

또한 본격적으로 지면을 할애해 선禪을 강의해 선의 대중화를 이끌었다. 광덕 스님의 선 수행 강좌 연재 ‘선이란 무엇인가’는 독자들로 하여금 많은 인기를 끌었다. 2004년에는 1년 특집으로 1인 1수행법 갖기 운동을 이끌었다. 「불광」이 1인 1수행법 갖기를 연재하면서부터 불교계에 수행문화가 활발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해외 불교에 대한 정보도 놓치지 않았다. 「불광」이 ‘달라이 라마 망명수기’를 19회(1984. 5.~1985. 12.)에 걸쳐 연재하면서, 그때만 해도 낯설었던 달라이 라마를 국내에 본격적으로 소개한 것은 너무나도 유명하다. 
정보화 시대에 발맞춰 1999년 9월 1일 개설한 홈페이지는 인터넷이라는 공간으로 전법의 길을 넓혔다. 홈페이지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리뉴얼을 거쳤으며, 지금까지 발간된 전호 1974년 11월 창간호부터(2016. 5. 현재 통권 499호)의 모든 기사를 읽을 수 있게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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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감각, 눈에 띄는 디자인
「불광」이 하면 다르다. 창간호인 1974년 11월호는 한 손에 쏙 들어오는 13×18.7cm 사이즈였다. 어디든 가지고 다니며 읽을 수 있는 크기로 2005년까지 30여 년간 판형을 유지했다. 당시 사용된 ‘佛光’이라는 제호는 한국을 대표하는 서예가 여초 김응현의 작품이다. 

2005년 5월, 「불광」은 새 판형으로 옷으로 갈아입었다. 칼라 지면을 확대하고 15×21cm로 판형을 키웠다. 더불어 한글 제호를 도입했다. 제호는 시각디자이너 안상수 홍익대 교수가 한글폰트 안상수체로 디자인했다. 그리고도 해를 거듭할수록 소소하지만 다이나믹하게 표지변화를 거쳤다. 2012년 1월호부터는 17.1×24.7cm로 크기를 시원하게 키웠다. 동시에 전면 컬러 페이지로 거듭났다. 알찬 내용과 함께 읽고 보는 재미를 동시에 선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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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계는 물론이고 외부에서까지 인정받는 잡지
콘텐츠부터 디자인까지 어느 한 구석 놓치지 않고 끊임없이 발전해가는 「불광」은 교계 내뿐만 아니라 외부에서도 그 전문성을 인정받았다. 1994년 문화체육부 주관 ‘우수잡지’에 선정된 것을 시작으로, 2005년 문화관광부 ‘우수잡지’, 2008년 문화체육관광부 ‘우수전문잡지’, 2011년·2013년·2016년 문화체육관광부 ‘우수콘텐츠 잡지’에 선정되었다. 더불어 2010년 제45회 잡지의 날에는 발행인 및 편집인 지홍 스님이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표창을 받았으며, 2012년 10월 26일에는 제10회 대원상 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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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광」은 창간호부터 지금 500호까지, 한국 불교계의 대표 잡지로서 그 맥을 이어왔다. 그리고 「불광」은 스스로 타오르는 횃불로서 미래를 밝히고, 사바세계를 ‘찬란한 부처님의 빛’으로 가득 채울 것이다. 
불광佛光, 그 찬란한 부처님의 빛. 마하반야바라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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