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 스님의 선담禪談] 가라, 좋은 벗 있으면 ...

가라, 좋은 벗 있으면 함께 가라

2016-06-08     금강

 

         아침 일찍 국제전화가 왔다. 
 
“스님과 같이 이 법문을 들어야 하는데 나 혼자 와서 미안해서 전화를 합니다.” 
 
남인도에서 10일 동안 달라이라마 람림법회에 참석한 여수 석천사 진옥 스님의 전화였다. 한국 절의 아침 공양시간이니 인도는 새벽시간일 터였다. 수행 이력이 10년이나 선배인 존경하는 스님이 먼 곳에서 잊지 않고 전화를 주시니 기쁜 마음이 들고 고맙고도 좋았다. 진옥 스님은 달라이 라마 존자님을 20년 가까이 모시면서 한국인 법회를 이끄는 분이다. 그럼에도 한국에 달라이 라마 방한을 추진하는 일에는 나를 앞장세운다. 
 
“나는 어차피 도울 테니 중도적인 스님이 앞장서주면 더 좋지 않습니까.” 
 
그 따뜻한 마음에 감동하여 어려워도 함께 가는 마음을 기꺼이 낼 수 있다. 
 
 
         거꾸로 내가 좋아서 도반스님에게 함께하기를 권한 적도 있다. 오래전 백양사 운문선원에서 동안거를 지낼 때의 일이다. 그해 선원에서 참선을 하는데 큰 기쁨의 진척이 있었다. 문득 오랫동안 인연 있는 법인 스님과 함께 선원에서 공부하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다. 만나면 늘 공부 이야기로 날밤을 세우던 도반을 놓아두고 혼자서 깊이 침잠된 공부를 위해 선방에 앉아 있는 것이 미안하기도 하고, 선원의 정진이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에 함께하고 싶었다. 해제가 되자마자 마음을 털어 놓았다. 
“공부하는 동안 스님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다음 철에는 선원에 가서 함께 정진합시다.”
스님은 제안에 기꺼이 동의해주었다. 물론 다음 동안거 때에는 함께 정진을 하면서 포행도 같이하고, 공부에 관한 깊은 이야기도 함께 나눌 수 있었다. 지금도 좋은 책을 읽으면 권하고, 좋은 글 쓰면 서로 보내주며 칭찬하고 경책하며 지낸다.
 
         8일 동안의 참선집중수행 프로그램을 10년 넘게 진행하다 보니 여러 가지 새로운 모습들이 나타난다. 부인이 남편을 데려오고, 아버지가 아들과 함께 수행하러 온다. 친구나 직장동료가 함께 오기도 한다. 이렇듯이 먼저 참가한 이들이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 찾아오는 모습이 종종 있다. 
 
수행면담을 하는 도중에도, 
 
“우리 엄마가 오면 좋겠어요.” 
 
“다음에는 남편과 꼭 오고 싶어요.” 하며 함께 수행할 도반을 삶의 길에 가까이에서 찾는 마음이 행복해 보인다. 함께 찾아오는 모습에 성공하면 왠지 더 당당해 보이고, 공부도 더 열심히 하는 모습이다. 세상의 모든 이들이 경제력과 직위로 대하는 대신 이렇듯 수행의 도반으로 만났으면 좋겠다.
 
 
         강진에는 210년 전 다산 선생과 혜장 선사가 만났던 백련사에서 다산초당까지 걷는 유명한 길이 있다. 다산 선생이 신유년(1801)에 천주교 박해로 옥사를 당해 형은 흑산도로 자신은 강진으로 유배를 오게 되었다. 처음 4년 동안의 삶은 원망과 분한 마음을 가누지 못하여 주막집에서 술로 세월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1805년 가을) 백련사 아암혜장兒庵惠藏 선사와 대면을 하게 되었다. 다산 선생을 강진읍 뒤에 있는 고성사高聲寺로 옮겨 살게 해주었다. 그리고 술 대신 차를 권하였다. 혜장 선사에게 다산 선생이 차를 보내달라는 편지글에 이렇게 썼다.
 
 ‘나그네가 요사이 차를 탐식하게 되었고, 겸하여 건강의 약으로도 충당합니다. 독서 중의 묘한 버릇은 육우의 『다경』 세 편을 완전히 통달하여 병중에도 건강한 누에처럼 노동盧同의 일곱 잔 차를 다 마셨습니다. 작은 구슬 같은 눈발이 날릴 때에 산사에서 등불 켜고 자순차의 향기를 맡고저, 활활 타는 불로 새 샘물을 길어다 끓이니 들에서 먹는 상서로운 맛입니다. 내가 듣건데, 고해의 좋은 양식은 시주의 보시가 가장 중하고, 명산의 차는 초단艸端의 으뜸을 가만히 보낸다고 하였으니 마땅히 내가 목마르게 바라는 것을 생각해서 은혜 베풀기를 아끼지 마시오.’ 
 
강진에서 다산 선생은 혜장 선사를 만나 술로 함께한 원망을 차로 치유하고, 이후에 혜장 선사가 살던 인근에 다산초당을 짓고 왕래하며 400여 권의 저작을 한다.
 
 
         부처님께서는 일생에 좋은 도반을 만나는 것은 수행의 전부라고도 했다. 그러나 잘못 만나는 도반의 경우도 있다. 마침 이솝우화 같은 불교우화가 있어 소개한다.
옛날 한 스님이 매일 산에 올라 큰 나무 아래에서 좌선 수행을 하였다. 점심시간에 도시락을 먹고 있는데 가까이 원숭이 한 마리가 다가와서 도시락을 조금 나누어 주었다. 다음날부터 점심 먹을 시간이 되면 원숭이는 어김없이 찾아왔고, 스님은 자신의 도시락을 나누어 주었다.
 
며칠이 지난 후, 원숭이는 스님보다 일찍 와서 옆자리에서 좌선 자세로 앉아 있었다. 스님과 원숭이는 아주 친한 단짝 친구가 되었다. 수개월이 지난 어느 날 스님은 도시락을 깜빡 잊고 수행 길에 나섰다. 산으로 오르는 도중에 생각이 난 스님은 
 
‘상관없지, 뭐… 끼니 한 번 거른다고 죽기야 하겠어?’
 
생각하고 늘 앉는 자리에서 좌선을 시작했다. 원숭이는 옆 자리에서 점심때가 되었는데도 도시락을 꺼내지 않자 스님의 소매를 잡아 당겼다.
 
“원숭이야, 미안하구나. 오늘은 내가 도시락을 두고 와서 점심을 먹을 수가 없단다.”
 
원숭이는 스님이 심술을 부리는 것이라 생각하고 화내기 시작했다. 급기야는 흰 이빨을 드러내고, 날뛰다가 스님의 가사를 벗겨 나무위로 올라가서 가사를 갈기갈기 찢자 스님은 머리끝까지 화가 났다. 
 
“너는 지금까지 내가 베풀어준 친절을 잊고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게냐?”
 
스님이 던진 나무토막에 맞아 원숭이는 죽고 말았다. 원숭이는 좌선을 바란 것이 아니고 점심을 바란 것인데 스님은 결국 살생을 하고 말았다.
 
도반을 생각하다가 문득 범능 스님의 부드러운 음성의 노래가 떠오른다.
 
 
가라, 좋은 벗 있으면 둘이서 함께 가라.
가라, 좋은 벗 없으면 버리고 홀로 가라. 
달빛엔 달처럼, 별빛엔 별처럼, 바람 불면 바람처럼 가라. 
내가 나에게 등불이 되어, 그대 홀로 등불이 되어 
같이 못 가도, 함께 못 가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금강 스님
미황사 주지. 조계종 교육아사리. 서옹 스님을 모시고 ‘참사람 결사운동’, 무차선회를 진행하였다. 홍천 무문관 프로그램을 개발하였고, 참선집중수행 ‘참사람의 향기’를 진행하며 일반인들과 학인스님들의 참선수행을 지도하고 있다. 
저서로 『땅끝마을 아름다운 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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