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와 함께 오래오래

2007-06-27     관리자

서울 금천구 시흥동, 좁은 골목길과 비슷비슷한 집들 사이에서 임삼수(69세) 할머니 댁을 어렵게 찾아 방문을 열고 들어섰다. 할머니가 빛도 들어오지 않는 반지하 방에서 웅크리고 앉아 있다.
물이라도 한 잔 내와야 한다며, 힘겹게 일어서려는 것을 간신히 만류했다. 한눈에 보기에도 병색이 완연한 할머니는 몸에 성한 곳이 거의 없을 정도다. 심장병을 앓아 숨이 쉽게 차올라 말이 자주 끊긴다. 천천히 띄엄띄엄 말씀하시는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살아온 세월이 예사롭지 않다.
고향인 강원도 영월에서 결혼하여, 남편을 따라 서울로 왔다. 이후로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고생길에 접어들었다. 남편은 일이나 돈벌이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저 하루하루 아무 일 없이 태평하게 지냈다.
“남편은 원래 그런 사람이니, 입에 풀칠이라도 하려면 내가 나가 벌어야 했어요. 다방 주방에서 커피도 끓이고, 호프집 서빙, 식당 종업원, 보험판매원 등 참으로 다양한 일들을 많이 했어요.
나이 들어서는 파출부 일을 가장 많이 했는데, 하루 2집씩 일하다보니 그때 골병이 든 것 같아요.”
할머니는 그 동안 견딜 수 없는 허리통증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척추관이 좁아져 신경을 압박하는 질환인 척추관협착증이었다. 아마도 하루종일 허리를 구부린 채 파출부 일을 무리하게 하다보니 생겨난 병일 것이다. 척추가 신경을 누르니 다리에까지 마비가 와서, 외부활동은 전혀 못하고 집에서도 기어다니다시피 했다. 지난 4월 인조뼈 2개를 요추 4~5번 사이에 넣어 척추를 고정하는 수술을 받고, 얼마 전 퇴원하여 안정을 취하고 있다.
할머니는 현재 손자 태빈(18세)이와 단 둘이 살고 있다. 남편은 8년 전, 중풍과 당뇨병을 앓다가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하나뿐인 자식이었던 아들은 술을 많이 마셔 건강이 악화된 상황에서, 3년 전 혈액이 세균에 감염되는 패혈증까지 앓게 되어 갑작스럽게 숨을 거두었다.
태빈이가 2살 되던 해, 아들과 사이가 원활하지 못하던 며느리가 집을 나갔다. 그 이후로 연락이 두절되었으니, 태빈이는 엄마 얼굴도 모른 채 자랐다. 아들은 재혼하여 태빈이를 할머니에게 맡기고 분가하였으며, 아들 둘(9세, 12세)을 낳고 잘 사는 듯하였다. 그러나 3년 전에 두 번째 며느리도 집을 나가는 일이 발생하였고, 그 9개월 후에 아들은 저 세상 사람이 되었다.
“아픈 몸으로 도저히 손자 셋을 키울 수 없었어요. 그래서 태빈이만 곁에 두고 두 아이는 복지시설에 맡겨두었지요. 이후로 하루도 편안하게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마음이 놓이지 않아 시설에 연락해보니 며늘애가 데리고 갔다고 하더군요. 부디 그 애들만이라도 제 어미 품에서 잘 자라기를 바랍니다.”
태빈이는 사춘기 시절, 아버지의 죽음과 이복동생들과의 헤어짐을 겪으며 심리적으로 큰 혼란을 겪었다. 하지만 할머니가 걱정할까봐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고 한다. 현재 정보고등학교 2학년인 태빈이는 성적은 반에서 중간 정도이나, 운동신경이 뛰어나 태권도 3단의 유단자다. 원래 축구를 하였으나 돈이 많이 들어 태권도로 전향하였다.
“태빈이는 심성이 고운 아이에요. 집에 오면 저는 꼼짝도 못하게 하고, 알아서 밥, 빨래, 청소를 척척 해냅니다. 태권도장에 가서도 잘 하는지, 사범님이 무료로 운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태빈이가 장가 갈 때까지는 살아줘야 하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으니 하루하루가 다르네요.”

임삼수 할머니는 10년째 심장병을 앓아 그 동안 2번의 수술을 받았으며, 신부전증으로 피로감, 소화불량, 수면장애 등을 겪고 있습니다. 또한 시력이 안 좋아 사물을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얼마 전 척추 고정술을 받아 허리에 요대를 한 채 간간히 고통스런 신음소리를 내지만, 손자 태빈이 이야기를 하면 표정이 금세 밝아집니다.
어버이날이 한참 지났지만, 태빈이가 선물한 꽃을 벽에 걸어놓고 바라보는 할머니의 모습이 더없이 행복해보입니다. 태빈이는 늘 입버릇처럼 “할머니, 학교 졸업하고 빨리 자리 잡아 호강시켜줄께요.”라고 한답니다. 할머니가 건강을 회복해 태빈이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불자 여러분의 작은 정성과 관심을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