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구보리 하화중생 – 좋은 말이지

2015-05-27     불광출판사

중학교 3학년 겨울에 첫 출가를 시도했다. 공주 갑사를 찾아갔다. 누굴 만나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대웅전에 들렀다가 부처님이 등 떠미는 것 같은 느낌에 속절없이 내려왔다. 고등학교 2학년 때는 일엽 스님의 『청춘을 불사르고』라는 책을 읽고 예산 수덕사를 찾았다. 

머리 깎겠다고 하는 내 말을 듣고 노장스님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주지스님 찾아가 보라고 이르신다. 주지스님은 단칼에 내리쳤다. 부모 승낙을 받고, 고등학교 졸업하고 나서 와야 받아들일지 말지 결정하시겠단다. 하릴없이 터벅터벅 걸어 내려왔다. 마지막으로 다시 마음을 냈다. 이미 한 아낙과 짝을 맺고 딸 하나를 낳았다. 둘째 애는 아내의 뱃속에서 자라고 있었다. 송광사에 들어가 아내에게 편지를 썼다. 미안하다고, 더는 부부 인연을 이어갈 힘이 없으니 죗값은 부처님에게 치르겠다고 했다. 내가 어디에서 이 편지를 보내는지 봉투에 부친 곳을 쓰지 않았으니 찾을 수 없으리라 믿었다. 월간 잡지 「뿌리 깊은 나무」 초대 편집장을 맡았던 때였다. 마당도 쓸고, 부엌일도 돕고, 노장스님 방도 닦고 요강도 비우고, 구산 스님 따라 텃밭에 나가 돗벌레도 잡고, 법정 스님이 계시는 불일암에 공양도 날라드리고…. 

오늘 내일 머리 깎을 날만 기다리고 있는데, 어느 날 불쑥 「뿌리 깊은 나무」 대표 한창기 사장님이 내 앞에 나타났다. 주지스님께는 양해를 구했으니 잠깐 산문 밖에 나가 이야기를 나누자고 하신다. 아내가 어린 딸 손을 잡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잠깐 기다리라고, 짐 챙겨 나오겠다고 돌아서는데 한 선생님과 같이 온 회사 동료가 팔을 잡아당기더니 옆에 세워둔 차에 억지로 밀어 넣고 출발시킨다. 세 번째도 실패. (무심코 다른 사람 시켜 편지를 부쳤는데 봉투에 송광사 우체국 소인이 찍혀 있어 찾을 수 있었다는 말을 뒤늦게 들었다.)

업장이 두텁구나, 머리 깎을 팔자 못 되는구나. 중생으로 사는 수밖에 없겠구나. 이렇게 상구보리 하화중생의 꿈은 물거품이 되고 출가는 가출로 앞뒤가 바뀌었다. 햇수로 따지면 이래저래 출판쟁이 열다섯 해, 대학 선생 노릇 열다섯 해, 얼치기 농사꾼 열다섯 해, 어느덧 마흔다섯 해가 흘러가고 나는 예나 마찬가지로 중생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제 늙어 꼬부라져 저승이 코앞이다.

가끔 시간을 내서 『반야심경』(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을 웅얼거리는 때가 있다. 지난해 이맘때부터 몸이 무너지기 시작해서 오늘내일 하는데 아직도 깨달음에 대한 집착이 남았는가.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첫 글자에서부터 턱 걸린다. ‘관觀’-본다. 관자재보살은 관세음보살의 다른 이름이다. ‘천수천안관세음보살’. 중생인 윤아무개의 살눈과 깨달은이(보살)의 얼눈은 어떻게 다른가? 나한테는 눈이 둘뿐이지만 관세음보살은 눈이 천 개나 된다. 내 눈은 살눈이지만 관세음보살의 눈은 얼눈이다. 내 눈은 빛이 없으면 깜깜이지만, 관세음보살은 빛에 기대지 않아도 세상에 떠도는 온갖 소리(세음)까지 본다.

생각이 생각을 낳고 알음알이(분별지)가 꼬리를 문다. ‘빛이 있어야 살눈은 제 몫을 할 수 있다. 이것저것을 가려 볼 수 있다.’ 다시 중얼중얼. ‘스스로 있음을 있는 그대로 보는 깨달은이’(관자재보살)가 저 언덕 건너는 일에 깊이 몸담을 적(행심반야바라밀다시). ‘본다’는 말이 또 나오는구나. ‘모든 게 비어 있음을 두루 비추어 보고’(조견오온개공). 무엇을 본다고? 다섯 쌓임이 다 비어 있음을 보지. 것(색), 받이(수), 생각(상), 몸놀림(행), 알이(식). 가리면, 갈라 세우면 이것저것이 나타나고 그것들을 눈으로, 귀로, 코로, 혀로, 몸으로 받아들이면 마음에 이 꼴 저 꼴로 나타나고, 거기 따라 몸 놀리면 알음알이가 생기는데 이 모든 게 비어 있음을 본다? 어허, 이게 무슨 말이야? 저 눈에 우리네 중생 배가 비어 있음도 보일까? 거기에서 비롯은 몸살도 가슴앓이도 보일까?

다 죽어가는 내 눈에 보이는 건 관세음보살도 아니고 박근혜보살도 아니다. 내가 우러르는 보살은 소선보살(제 몸을 불태운 전태일의 어머니 이소선)이고 진숙보살(한진중공업 까마득하게 높은 쇠해오라기-타워크레인에 309일이나 매달려 있던 소금꽃나무 김진숙)이다. 나는 이분들 눈으로 이 분들이 보았던 것들을 보고 싶다. 알다시피 소선보살은 ‘근로기준법을 지켜라.’고 외치면서 제 몸에 불 싸지른 아들을 가슴에 묻고 길거리로 나섰다. 그 가슴으로 길을 닦았다.(수도) 헐벗고 굶주리는 젊은이들을 낡고 때 절은 치마폭에 감쌌다. 그이가 열반에 들 적에 어느덧 그이는 이 땅 모든 노동자의 어머니가 되어 있었다. 너나 없이 어머니, 어머니 부르면서 목 놓아 울었다.

진숙보살이 쇠해오라기(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 목을 타고 40미터를 기어오른 때는 2011년 1월 6일이었고 ‘고공농성’을 마치고 다시 내려온 때는 그해 11월 10일이었다. 칼바람 부는 쇳덩이 위에서 겨울을 났다. 부처의 ‘설산수행’도 이보다 더하지는 않았으리라. 얼어붙은 강철 벽에 손이 닿으면 뭉턱뭉턱 살점이 떨어져 나간다. 한여름에 가마솥처럼 달구어진 쇳바닥에 어쩌다 살이 닿으면 익어서 노린내가 난다. 진숙보살은 이 ‘고행’을 견뎌냈다. 잠들면 마구니들이 그 틈을 타서 끌어내릴까 걱정되어 하루에 10분 넘게 잠들어 본 적이 없었던 ‘장좌불와’(눕지 않고 앉아 버티기) 그이가 ‘조견照見’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상구보리 하화중생(위로는 깨달음을 얻기 바라고 아래로는 중생들을 보듬어 안는다.) 처음에 나는 이것이 둘인 줄로만 알았다. 따로따로인 줄 알았다. 깨달음이 없으면 뭇산이(중생)를 살리는 일은 물 건너 간 일로 여겼다. 그러나 소선보살과 진숙보살의 ‘보살행’을 보면서 안 그럴 수도 있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둘이 아니라(不二)는 생각이 떠올랐다. (소선보살의 삶은 꽤 널리 알려져 있으므로 여기서는 이야기하지 않겠다.) 진숙보살의 뜻은 깨달음을 얻는 데 있지 않았다. 쇠해오라기 목에 매달린 까닭은 오로지 일터에서 등 떠밀려 쫓겨나는 힘없는 이웃을 지키려는 뜻이었다. 다른 생각이 없었다. 함께 일했던 400명이 넘는 사람들의 밥줄이 끊어지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어서였다. 굳이 때의 앞뒤를 따지자면 하화중생이 먼저고 상구보리는 나중이었다.

보라! 진숙보살이 열 달이 넘게 쇠바닥 빈터에서 얼고 익는 사이에 뭇산이(중생)들의 가슴 가슴에서 희망이라는 이름의 풀씨가 싹 텄다. 온 나라 구석구석에서 ‘희망버스’에 실린 민들레 홀씨들이 날아들었다. 뭇산이가 깨달은이(보살)가 되려면 가슴앓이가 앞서야 한다. 이 몹쓸 세상 밑바닥에서 제 몸을 굴려야 한다. 있는 놈 자리에서 벗어나 없는 놈 자리에 서야 한다. 석가모니가 바로 그러지 않았던가? 지닌 것 모두 버리고 일부러 헐벗고 굶주림을 사서 겪지 않았던가?

육조 혜능이 가난뱅이였다는 사실은 누구나 안다. 글을 익히지 못한 까막눈이었다는 것도 안다. 귀를 눈으로 바꿀 수밖에 없었다. 뭇산이 가운데 밑바닥 뭇산이로 날마다 앓는 소리가 제 목 타고 올라오는지 이웃 목에서 나는지 가릴 겨를이 없이 살다가 어미가 저승으로 떠난 뒤 절집으로 기어들었다. 경전에 코 박고 사느라 일손 놓은 거룩한 스님들 그늘 아래서 디딜방앗간 방아 찧는 일에 내몰렸다. 하도 굶어서 뼛속까지 비어 있던 놈한테 디딜방아를 누를 발바닥 힘이 있을 리 있나. 할 수 없이 등에 돌절구를 짊어지고 방아를 찧었다 해서 처음에 절구진이(부용 거사)라는 이름을 얻었다. 이 모진 아픔을 견디면서 부처님 말씀을 귀로 보았다. ‘몸은 깨닫는 나무고 마음은 거울 받침대니….’ 하는 소리를 듣고 그런 게 어디 있어 코웃음 치다가 싸가지 없다고 쫓겨났다. 아마 한겨울이었을 게다. 오조 홍인이 혜능의 헐벗은 꼴을 보고 가엾게 여겨 지가 입던 옷가지와 동냥할 때 쓰라고 밥그릇을 넌즛이 주어 보냈을 거다.

오조가 끝까지 놓치지 않은 것이 있었다면 바로 이런 마음자리, 곧 가여움이었을 거다. 이 마음자리는 ‘뭇산이가 앓고 있어서 나도 앓고 있다’고 유마힐이 말한 그 자리다. 소선보살도 이 마음으로 남의 밥상에 먹을 것 차리고, 남의 몸뚱이 감쌀 옷 지어 바치는 데도 돌아오는 것이라고는 헐벗음과 굶주림밖에 없는 이들을 보듬었고, 진숙보살도 이 마음으로 한겨울에 철탑 위로 기어올랐다.

그런데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뭇산이들이 ‘한빙지옥’으로, ‘화탕지옥’으로 무더기로 내몰려 ‘헬조선’이 바로 코끝 벼랑인데, 누가 있어 이 중생들을 구제할 것인가?

이 나라 경제를 살리겠다고, 이 땅에 평화가 깃들게 하겠다고 금수저를 문 금배지들이 국회로 꾸역꾸역 밀려들고 있는 꼴을 지켜보는 뭇 비구, 비구니의 ‘관’과 ‘견’이 텅 비어 있다면 그 눈을 ‘깨달은이’의 눈이라고 볼 수 있을까? 엿 먹어!           

윤구병
서울대학교 철학과와 대학원을 나오고 월간 「뿌리깊은나무」 편집장을 거쳐 충북대학교에서 철학과 교수를 지냈다. 1995년 대학 교수직을 그만두고 전북 부안으로 낙향, 농사를 지으면서 대안교육을 하는 ‘변산교육공동체’를 설립해 20여 가구가 함께 생활하고 있으며, 어린이 전문 출판사인 보리출판사를 설립해 많은 어린이 책을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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